통조림 통조림 / 나호열 인생의 반쯤이 지나가고 있다 반환점이 없는 오르막길을 내처 달리기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통조림 빈 깡통처럼 나는 울고 있었어 그도 그랬을까 제 것을 아낌없이 다 주고 나보다 어린 나이에 인생을 마감하면서 눈을 감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돌팔매를 맞고서도 아프지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10.25
동행 동행 / 나호열 그는 남산을 천천히 걸어 올라 갔고 나는 다시 침침한 지하도를 더듬거리며 내려왔다 앞으로 한동안은 잊어버릴 것이다 먼지처럼 가볍게 모이를 찾아 내려오는 비둘기들이 백지위에 더러운 발자국을 남기고 흩어졌다 휘발되지 않는 상처를 나눠 가지며 우리는 똑같은 무게의 하늘을 쳐..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10.18
닥터 지바고 닥터 지바고 나호열 광활한 대지와 무한한 하늘을 낮밤을 함께 주신다면 작은 오두막집을 짓겠습니다 낮이면 한발자국씩 길을 만들고 밤이면 돌아와 별들의 눈빛을 밝게 하겠습니다 길 하나의 끝은 그리운 사람의 오두막에 닿게 하고 별들의 심지가 다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소망을 제..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10.16
운동 후 기 運動 後 記 운동 후 기 運動 後 記 - *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 몸에서 화약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해 시월 때문이다 놀이와 노동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늘 힘이 모자랐다 낙하하는 포탄의 작열과 가지에서 떨어지는 벚꽃의 아우성이 피와 살의 힘 나는 빗나간 화약으로 태어났던 것이다.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10.01
떠나다 떠나다 사람이 싫어 먼 길을 간다 들길, 산길 에둘러 가는 나에게는 뒷길인 한 번 굽이치고 휘이 내질러 가는 저 길 아득하고 아득하여 개망초 흔들리는 몇 문장 남았다 설익은 사랑 되묻지 않겠다 독 묻은 열매 끝내 삼키고 얼만큼 걸어가야 사람이 그리울까 문득 되돌아 설 때 끝끝내 나를 따라왔을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9.29
노을 시 몇 편 노을 나호열 어둠끼리 살 부딪쳐 돋아나는 이 세상 불빛은 어디서 오나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서해 바다 가득한 노을을 끌고 돌아오는 줄포항 목선 그물 속 살아서 퍼득거 리는 화약냄새 노을 -곰소바다 나호열 이 세상 어둠 밝히는 모든 불빛은 고기대신 서해바다 노을을 끌고 돌아오는 곰소항 목선 그..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9.28
개 같은 날의 오후 개 같은 날의 오후 물끄러미 서로를 쳐다본다 끈끈한 눈빛으로 서로를 핥아준다 개가 되고 싶은 나와 사람이 되고 싶은 그가 쇼파에 등을 기대고 있다 정해진 시간의 용변과 금욕을 강요받는 소량의 식사 공원에 갈 때는 천천히 걸어 적당히 꼬리 칠 줄 알고 두려움을 감추며 위엄 있게 짖는 법은 기본..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9.28
시월을 추억함 시월을 추억함 서러운 나이 그 숨찬 마루턱에서 서서 入寂한 소나무를 바라본다 길 밖에 길이 있어 산비탈을 구르는 노을은 여기저기 몸을 남긴다 生이란 그저 神이 버린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주저 앉은 풀꽃이 었을까 하염없이 고개를 꺾는 죄스런 보습 아니야 아니야 머리 흔들 때마다 우루루 쏟아..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9.27
戀歌 戀歌 - 정형돈· 한유라를 축복하며 나호열 (시인) 한 송이 꽃이 피고 있네요 나그네처럼 지나가는 바람과 바람이 마주치며 일으키는 불꽃 그 순간의 떨림이 촛불로 흔들리네요 두 손을 모두은 듯 미소를 머금은 듯 은은하게 아..은은하게 이 세상의 모든 길은 당신에게 닿아요 사랑이 시작되네요 당신..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9.13
가을 시 몇 편 가을 청문회 / 나호열 조금 더러운 사람이 많이 더러운 사람을 야단칩니다 좀더 깨끗해질 수 없냐고 못생긴 사람이 좀더 못난 사람을 비웃습니다 좀더 아름다워질 수 없냐고, 오글오글 떠드는 모습이 우물 안의 개구리 같습니다 가을 病 / 나호열 그예 불덩이같은 짐승을 산으로 놓아 보냈습니다 허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8.26
[스크랩] 저녁 무렵부터 새벽까지/나호열 저녁 무렵부터 새벽까지 시 : 나호열 그림 : 김성로 그대 외롭다면 저녁 무렵부터 새벽까지 걷고 또 걸을 일이다 희뿌움한 새벽 보다 가까운 곳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그대보다 힘 센 동물의 그림자로 가까이 다가온다면 그대 아직 외로운 것이 아니리라 그대 슬프다면 저녁 무렵부터 새벽까지 걷고 또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8.21
[스크랩] [그림과 詩]눈물 눈물 시 : 나호열 그림 : 김성로 길에도 허방다리가 있고 나락도 있다고 하여 고개 숙이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눈물은 꽃 지고 잎 지고 나서야 익을대로 익는 씨앗처럼 고개를 숙여야 숨을 죽였다 길은 시작도 끝도 없어 우리는 길에서 나서 길에서 죽는다고 꿈에서나 배웠을까 문득 내가 한 자리에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7.04
번개의 죽음 번개의 죽음 울컥, 아기 단풍나무 아래 한 줌 재로 너를 뿌릴 때 눈물이 돋아 올랐다 눈물이 짠 까닭은 내 안에 바다가 있음이나 미처 알지 못한 세월이 너무 길었던 것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너는 눈빛으로 우리의 부질없음을 받아들였나 동공에 가득한 눈물 그대로 맺혀 감지 못한 눈 헤어지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6.02
<눈물> 시 몇 편 눈물나다 손잡을 듯 놓을 듯 산, 산 그리고 산 등 너머 노을이 울컥 쏟아내는 푸른 그림자 어쩌란 말이냐 맴도는 발자국은 먼 하늘 기러기 몇 줄 눈물 예쁜 꽃들 사이에 예쁘지 않은 눈물은 향기가 없으나 향기 속에 눈물을 가득 담은 나무 아래서 하루 종일 기도하는 법을 배웁니다 사랑하게 하소서 눈..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5.30
2009년 오월 야, 이것들아 꽃보다 못한 것들아 난, 너희들과 달라 노는 물이 틀려1 진흙탕 속에서 삐죽삐죽 주등이들이 솟이 오르며 아까운 공기를 축내고 있는 오월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