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2024/09/12 14

1948년 제주 4·3사건

〈제6부〉 해방정국의 3대 비극③1948년 제주 4·3사건(상)지난 4월에 연재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척 긴장했고, 살얼음을 밟는 것 같았다. 틀린 점이나 없는지, 내 글로 말미암아 마음 아파할 사람은 없는지, 사자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일은 없는지….이번 글에서 특별히 그런 넋두리를 하는 것은 제주 4·3사건이야말로 너무 극명하게 좌우가 갈려 대치하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한국의 현대사는 은원(恩怨)이 너무 깊다. 어느 편에 설 수도 없다. 학자의 소신이니 역사가의 정론이니 하는 것이 참으로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제주 4·3사건을 쓰려니 그런 감회가 더욱 새록새록하다.      4·3사건 당시 학교 운동장에 모인 제주 주민들. 공산 게릴라들에 부역한 혐의가 있으면 즉각 처형됐다..

카테고리 없음 2024.09.12

[10] 밥을 짓는 시간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0] 밥을 짓는 시간 정수윤 작가·번역가입력 2024.04.24. 23:56업데이트 2024.04.29. 10:18   나라의 차밥기다리는 동안에등꽃을 보네 奈良茶飯[ならちゃめし]出来[でき]るに間[ま]ある藤[ふぢ]の花[はな] 배가 고프다. 밥솥을 열어보니 비어 있다. 밥해야겠네. 밥 짓는 시간은 15분에서 30분 사이.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배가 고플수록 시간은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딱딱한 쌀이 물기를 가득 머금은 찰진 밥으로 변신하는 마법 같은 시간. 귀찮아 라면이나 빵으로 때우려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사람이란 그 사람이 먹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도 그런 말을 남겼다지. 빨리 해치우는 식사는 바람처럼 가벼운 인간을 낳는지도 모른다. 정성을 들이자. 이런 ..

[196] 순인자시(詢人者是)

[정민의 세설신어] [196] 순인자시(詢人者是)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2.06. 03:06   제나라 왕이 활쏘기를 좋아했다. 왕은 신하들이 강궁을 잘 쏜다고 말해주면 아주 흡족해했다. 실제 그가 쏜 활은 3석(石)에 불과했지만, 좌우에서 아첨하느라 굉장히 센 9석짜리 강궁이라고 칭찬했다. 윗사람이 칭찬만 원하는지라 신하들은 거짓말로 칭찬해 주었다. 그것이 끝내 거짓인 줄 모르니 허물을 고칠 기회가 없고, 종내 남의 비웃음만 사고 만다.안동 사람 이시선(李時善)이 멀리 남쪽 바닷가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날은 저물고 비까지 내려 왔던 길을 놓치고 말았다. 길 가던 이에게 묻자 왼쪽으로 가라고 했다. 자기 생각에는 암만해도 오른쪽이 맞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왼쪽 길로 가니 마침..

산그늘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36] 산그늘문태준 시인입력 2024.09.08. 23:52  산그늘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이상국(1946~)일러스트=이철원 시인은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을 회상한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에 다녀온 어머니는 아이를 품에 안아 젖을 물리면서 먼 산에 산그늘이 내린 것을 망연히 바라본다. 하루의 해가 뉘엿뉘엿 기운 무렵이었을 것이다. 장성(長成)한 시인은 어느 날 옛집에 들러 산그늘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한다.시인은 그동..

공부할 시 2024.09.12

칼과 집

칼과 집  어머니는 가슴을 앓으셨다말씀 대신 가슴에서 못을 뽑아방랑을 꿈꾸는 나의 옷자락에다칠세라 여리게 여리게 박아 주셨다 (멀리는 가지 말아라) 말뚝이 되어 늘 그 자리에서오오래 서 있던 어머니, 나는 이제 바람이 되었다함부로 촛불도 꺼뜨리고쉽게 마음을 조각내는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칼이 되었다집으로 돌아가기에는너무나 멀리 와서길 잃은 바람이 되었다 어머니,

너는 부도덕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2030 플라자] 너는 부도덕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카페서 아이랑 노는 엄마는 맘충·기초생활수급자는 진상이다?속으로 삭여도 될 일을 인터넷 댓글창서 굳이 훈계하는 세상易地思之 필요한 시대…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도덕적이지 않다천현우 작가·前용접 근로자입력 2024.09.11. 23:58업데이트 2024.09.12. 00:19   일러스트=이철원 대한민국 청년 직장인 대표 커뮤니티는 단연 ‘블라인드’다. 한국에서만 600만명 넘게 가입한 이 앱은 이용자의 아이디(ID) 대신 직장이 노출된다. 구조가 이러니 대기업 직장인이 발언권 얻기 쉬운 구조다. 주요 담론 또한 이직, 커리어, 면접 후기, 연봉 협상 및 비교 같은 대기업 직장인들의 먹고사는 이야기들이다. 대기업 일자리가 20%도 되지 않는 나라에..

카테고리 없음 2024.09.12

그 역에 가을이 오면

[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10] 그 역에 가을이 오면윤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입력 2024.09.11. 23:52업데이트 2024.09.11. 23:55                                                          남양주 능내역 폐역. /조선일보DB 고운 코스모스를 만났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 한 구절은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그리고 ‘잘 있나요. 가을은 역시 코스모스 피는 고향역의 계절이지’라며 정겨운 안부를 전해준 ‘고향역’ 작사·작곡가인 임종수 선생님도 생각난다.‘고향역’은 1972년 발표된 나훈아 노래로 사랑받는 곡이다. 하지만 정작 노래를 만든 임종수의 고향 순창에는 기차역이 없다. 노래 속 ‘고향역’은, 타지인 형 집에 ..

양산 통도사

[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6·25전쟁 때 부상병 3000명 수용… 사찰 최초 국가현충시설양산 통도사유석재 기자기획·구성=오주비 기자입력 2024.09.12. 00:30  IMF 외환 위기 시절 경남 양산 통도사에 있는 자장암 시주함에서 3만원을 훔쳤던 사람이, 27년이 지나 같은 곳 시주함에 현금 200만원이 든 봉투를 넣었다는 뉴스가 나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어요. 1997년 당시 앳된 소년이었던 이 사람이 두 번째로 돈을 훔치려고 시주함으로 다가갔을 때, 훗날 통도사 주지를 지내게 되는 현문 스님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은 뒤 돌려보냈다고 해요.그 소년은 자라난 뒤 돈봉투와 함께 넣은 편지에서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다’며 ‘곧 태어..

유물과의 대화 2024.09.12

"나만 편하면 그만"... 뻔뻔한 주차 빌런을 만났을 때 대처법

"나만 편하면 그만"... 뻔뻔한 주차 빌런을 만났을 때 대처법올해 불법 주차 신고 벌써 406만건연 2800건 신고하는 열정 시민도[왕개미연구소]이경은 기자입력 2024.09.12. 09:23업데이트 2024.09.12. 14:16  “인도에 무개념 불법주차 차량이 버티고 있어서 아이와 지나가지도 못하고 너무 불편했어요. 이런 뻔뻔한 운전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40대 여성 A씨)“그런 주차 빌런(악당)들은 말로 해봤자 못 알아들어요. 안전신문고 앱으로 신고해서 금융치료(과태료)를 받게 하세요.”(동네 주민 B씨)보행자에게 불편을 주는 불법 주차 운전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응징’이 증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불법주정차 주민신고제’가 있다. 원래는 공무원이 현장이 출동해서 단속해야만 불법 ..

모아이 만든 사람들, 자멸하지 않았다

[사이언스카페] 모아이 만든 사람들, 자멸하지 않았다석상 만들다 생태 파괴로 인구 붕괴고대 유골 DNA는 인구 계속 증가 보여줘위성 으로 분석한 토양 생산력도 붕괴 반박석상 이동도 줄로 가능, 삼림 파괴 반박이영완 기자(조선비즈)입력 2024.09.12. 08:58업데이트 2024.09.12. 11:59   남태평양 라파 누이(이스터섬)에 있는 거대 석상 모아이. 석상을 만들려다 생태계를 파괴해 인구가 급감했다는 기존 이론을 반박하는 연구 논문이 나왔다./위키미디어 남태평양에 있는 칠레 라파 누이(Rapa Nui, 이스터섬)에는 600여 개의 거대 석상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모아이(Moai)이다.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덤덤’으로 나오는 석상이다. 1250~1500년 현지 원주민들이 ..

카테고리 없음 2024.09.12

호명사회,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호명사회,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중앙일보입력 2024.09.12 00:22송길영 Mind Miner감나무집 둘째, 김수영씨는 개구지고 흥겨운 아이였습니다. 감나무에서 떨어져 깁스를 하고 다니던 일은 그의 부산함의 증거로 이웃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공부도 곧잘 해 도시의 학교로 진학해서 번듯한 직장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따금 고향에 내려와서 인사를 해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의 존재가 단독자로 인식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동네의 터줏대감 감나무 집 둘째라는 관계와 맥락이 훨씬 큰 존재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 시절 도시의 학교는 한 반에 50명도 넘던 콩나물시루처럼 과밀했고, 한 학년에 10반이 넘는 규모로 더해졌습니다. 전체 학생이 2000명이 넘던 시기, 학생들..

문화평론 2024.09.12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중앙일보입력 2024.09.12 00:09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은 누명을 쓰고 제주도에 귀양 갔다. 귀양 초기엔 더러 위문을 오는 사람이 있더니만, 세월이 흘러 ‘추사는 이제 끝났다’는 상황이 되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제자 이상적(李尙迪)만이 중국에서 구입한 책과 서화용품 등을 싸들고 추사를 찾아왔다. 감동을 받은 추사는 『논어』의 이 구절을 들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더니, 네가 바로 소나무 잣나무처럼 변함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칭찬하며, 허름한 집 한 채와 소나무와 잣나무 각 두 그루씩 그린 그림을 선물했다. 그게 바로 오늘날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다. 훗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