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2024/09/06 7

2024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2024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자물쇠 / 박찬희​​​안거가 일이라고 단단히 가부좌를 틀어오가는 바람도 굳어 서 있다​하필이면 벼랑 끝에 걸어놓은 맹약효험이 낭설이기 십상이기도 하고굳이 풀어 들여다볼 상당한 이유가 없어도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잡다한 호기심만 늘어없는 설명서를 찾아 읽는다​맹약의 해피엔딩은 녹슬고 녹아 서로에게 귀속되는 것​애지중지 닫아걸 별 이유는 없어도그냥 습관인 까닭에벽을 치고 들어앉아 음과 양을 저 혼자 맺고 풀면서맞지도 않은 열쇠를 깎는 일어쨌든 그것도 수고라면 수고지​결속과 해지는 엎어 치나 매치나 한가지여서틀림없는 쌍방의 일자물쇠든 열쇠든 서로에게 맞출 수밖에옳으니 그르니 해도 꼭 들어맞는 짝은 있게 마련인데내가 너를 열 수 있을까​시도 때도 없는 옥쇄 앞에서밤낮 우물쭈물,..

백년 쯤 전 ……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심은 칠엽수 종류

[나무편지] 백년 쯤 전 ……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심은 칠엽수 종류  ★ 1,248번째 《나무편지》 ★   굳이 날짜까지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서울 나들이는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늘 혼자 다니는 답사 길이지만, 내게는 아주 귀한 ‘도반’이 있습니다. 제가 잘 몰랐던 큰 나무를 찾아 길머리를 잡고 안내해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은 뜨겁고, 조금만 걸어도 나무 그늘이 간절해지는 지난 주 중에, 그를 만나러 전철을 타고 서울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도반과 ‘낮술’을 겸한 점심을 즐겁고 고맙게 나눈 뒤에 찾아간 나무가 오늘 《나무편지》에 전해드리는 칠엽수 종류의 나무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칠엽수 종류 가운데에 ‘가시칠엽수’라고 해야 합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을 본격적으..

[57] 돌이 날아다니면? 멋있지 뭐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7] 돌이 날아다니면? 멋있지 뭐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입력 2023.04.07. 03:00   뭐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았던 시대의 부모님과 선생님들 덕에 무겁고 진지한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변하였지만 나는 지금도 인내하고 연단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가벼움의 시대’에 살면서 이렇게 옛날 사람이 되어가나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가벼움에 매료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유현미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조각과 회화, 사진의 방법을 순차적으로 이용한다. 우선 오브제를 조각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작업실의 한구석에 그 조각들을 설치하고 사진에 찍힐 모든 표면에 칠을 한다...

[195] 허심공관 (虛心公觀)

[정민의 세설신어] [195] 허심공관 (虛心公觀)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1.29. 23:35  퇴계가 허엽(許曄)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그대의 편지에서 이른바 경솔하게 선배의 잘못을 논한다고 한 것은 분명 까닭이 있어 나온 말일 겝니다. 저 같은 사람도 이 같은 병통이 있을까 염려하여 마땅히 행동을 고치려고 생각 중입니다. 다만 주자께서 비록 이를 경계하였지만 도학상의 착오나 잘못된 곳을 논변할 때는 터럭만큼도 그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선배라 하여 덮어 가려주지 않았습니다."다산은 이 편지를 읽고 나서 이렇게 소감을 적었다. "퇴계 선생께서 이색과 정몽주, 김굉필과 조광조 등 여러 군자에 대해 모두 논한 것이 있다. 잘못된 점은 때로 감추지 않았다. 이는 진실로 지극히 공정하..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49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49 베틀 앞에 앉아 있는 여인손바닥만한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여윈 등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말없이 하루 종일 베틀이 움직이는 숨소리가득차는 방조심스럽게 허공을 휘저으며 찾는 햇살그녀의 손길이 베틀 위에 걸리고철커덕거리며 베틀이 돌아가는 동안그녀는 살아 있다태양옷을 지어 입으면 나는 이 방을 나갈 수 있을 거야밤이 되면 베틀에는 한숨이 어리고기도는 눈물로 가득 찼다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눈 먼 그녀만이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베틀을 자꾸 낡아져 갔지만아직도 태양옷은 만들어지지 않았다보이지 않는 세상보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데베틀은 무위無爲의 움직임으로여인의 생애를 끌고 간다베틀 앞에 앉아 있는 여인불 꺼진 부화장의 무정란처럼

역성혁명 성공한 삶, 땅 욕심이 화 불렀나

역성혁명 성공한 삶, 땅 욕심이 화 불렀나중앙일보입력 2024.09.06 00:18서울 종로구 수진방과 정도전김정탁 노장사상가조선 건국을 주도한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성계를 부추겨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란 새 왕조를 세웠으니 혁명가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권문세족에 의존하는 고려의 정치와 여기에 기생하는 불교를 철저히 부정한 뒤 조선을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설계했다. 이에 따라 정치 운영방식을 귀족제에서 관료제로 바꾸고,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내세우고, 이것도 모자라 사농공상이란 신분제까지 도입해 느슨했던 고려사회의 분위기를 일신코자 했다.강한 관료제 꿈꾼 조선의 설계자유배 경험 살려 토지개혁 단행자신은 수송동 일대에 거대 저택장수 기약한 땅에서 수..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누구인가? <Ⅰ>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누구인가? 중앙일보입력 2024.09.06 00:30업데이트 2024.09.06 01:50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일제 강점기를 둘러싼 오늘의 역사 논란은 잘못된 역사교육과 잘못된 진영대결의 잘못된 복합 산물이다. 논란의 핵심은 한마디로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과연 누구였느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것은 또한 그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로 직결된다. 논란의 한 초점은 당시 한국인들의 국적이다. 국적은 곧 시민권을 말한다. 따라서 국적은 결코 형식논리가 아니다. 로마와 유대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이 영국과 인도, 영국과 식민지 미국, 프랑스와 알제리, 일제하 만주, 독일과 프랑스, 나치와 유대인을 보라. 즉, 시민권의 위계와 종류는 너무도 다양했다. 국적은 한장의 서류나 여권 직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