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 제주도 기행. 8 약속 - 제주도 기행. 8 바다를 옆에 두면 되요 바다를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되요 걷고 또 걸으면 우리는 다시 만나요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5.18
저 소나무 - 제주도 기행. 7 저 소나무 제주도 기행. 7 말하자면 무턱대고 우리가 세상에 내린 것처럼 정류장에서 한참을 걸다보니 입산을 결심했던 것 길에는 바름과 그름이 없으므로 산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따라온 공동묘지는 덧없는 시간의 비석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 산에는 절이 없었다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돌아서면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5.12
한라산 - 제주도 기행. 6 한라산 - 제주도 기행. 6 어디서나 그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누구의 기쁨인가요 산봉우리 하나 넘고 그대 알았다 하고 그대의 마음 내려 놓은 잔 물결에 바다를 보았다 외쳤던 부끄러운 메아리는 어디에 품어 놓으셨나요 각혈하듯 쏟아내던 붉은 마음은 서늘한 하늘 한 자락 끌어내려 푸르게 감춰 놓..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5.11
고사리 꺾기 - 제주도 기행. 5 고사리 꺾기 - 제주도 기행. 5 맛은 없지만 밥상에 오르지 않으면 왠지 서운한 고사리 꺾으러 간다 새벽 해 뜨기 전 이라야 찔레 덩굴 속이나 풀 섶에 숨어 있는 고 놈이 보인다는데 내 눈엔 그 풀이 그 풀 같다 대궁을 잘라도 여덟 번 아홉 번 순을 올린다는 오기가 나에게는 없다 뽑히기를 평생 바랬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5.10
거룩한 환생 거룩한 환생 오래 되었다 사랑도 없이 먹먹한 세월이 설레임을 곰삭였을까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역겨울 때 액자 안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시선이 허공을 떠도는 먼지 같을 때 슬며시 다가오는 기억 같은 것 훔치고 닦아내면서 진저리치는 까닭에 언제나 마지막 뒤처리는 깨끗이 깨끗이 손..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4.10
예감 예감 앞 마당 목련은 목젖까지 환히 들여다 보이게 웃다 떨어지고 뒷 뜰 목련은 이제야 가슴을 부풀리고 있는 중이다 피고 지는 선후가 무슨 문제이랴 우주와 몸 섞는 오르가즘 한 번이면 미련은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은 꽃인데 그걸 모른다 오르가즘을 모른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4.08
봄의 가면 한라산의 봄 봄의 가면 마음껏 안으라는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분명 앞에 있는듯 싶었는데 한 걸음 내딛을 때 서늘해지는 등 뒤 서걱거리는 소리에 뒤돌아 보아서는 안된다 뛰어내릴까 말까 망설여지는 벼랑 앞에서 배후의 유혹을 느끼게 되지만 걸어온 생은 이미 막막한 사막의 물결에 덮혀 널름거..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4.07
새 문 새 문 나호열 일년에 한 번쯤 한 사람이 드나들기 위하여 저렇게 커다란 정문을 한가운데 만들어놓고 열두 명의 수위가 밤낮으로 지킨다 <정문 사용 금지> 보통사람은 절대로 드나들 수 없는 저 으리으리한 정문을 보아라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크게 열려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3.24
[스크랩] 긴 편지 / 나호열 긴 편지 시 : 나호열 그림 : 김성로 풍경風磬을 걸었습니다 눈물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이 매달아도 너무 낮게 내려놓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오래 있다가 이윽고 아주 오랜 해후처럼 부등켜 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와르르 눈물이 깨..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3.03
한아름 한아름 나호열 왼 손과 오른 손이 닿으면 보이지 않는 원이 하나 생깁니다 찬 밥 한 덩이 얻어들고 두 손 안에 감쌌던 밥그릇 그만큼 자라고 또 자라 이 세상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또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한번은 누구나 얼싸 안았던 그가 떠나고 떠나지 않고 기다려주는 나무의 체온을 느낄 때도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3.02
싹에 대하여 싹에 대하여 굳지 않은 땅을 골라서 지상으로 돋는 싹은 없다 머리로 딱딱한 천정을 몇 번이고 부딪고 또 부딪치면서 이윽고 물러지고 틈이 난 곳으로 머리가 솟는 순간부터 다시 싸움은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이곳은 어디인가 아무도 호명하지 않은 또 나는 누구인가 태어나는 순간..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2.24
붉은 벽돌집 붉은 벽돌집 평생 소원은 굽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얕은 언덕위에서 낮게 깔린 지붕들 바라보고 싶다고 했다 억센 풀들 발길에 아랑곳 하지 않는 어깨보다 좁은 길 지나 그가 서 있었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붉은 벽돌을 질빵에 얹고 고개 숙이고 바로 코 앞만을 쳐다보며 걸어 올라갔다 벽돌을 얹고 내..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2.19
문득 문득 익숙했던 마땅히 있어야 했을 자리가 말끔하게 치워졌다 그러므로 바람은 저리도 정처 없는 것이다 나무를 붙잡으려고 없는 손을 힘껏 쥐어 보는 것이다 나는 여기 있는데 그림자가 없는 것이다 무작정 걸어도 길은 끝나지 않는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2.18
K K 아침 여섯 시 선잠에서 깨어난 그는 악몽을 벗는다 가끔 자신이 매일 죽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어제의 허물을 벗지 못한 날은 지나가는 행인 1도 아니고 짚신 신고 화살 맞고 쓰러진 포졸도 아닌 채로 하염없이 정류장에서 대기 중이다. 가슴에 일련 번호를 단 버스들은 어디론가 시간이 그..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2.09
말 배우기 말 배우기 세 살 배기 유빈이가 한창 말을 배운다 봄 나무에 잎 돋아나듯 허공을 휘어잡는 가지처럼 단어가 늘고 문장이 이어진다 아, 예뻐라 곰도 알고 여우도 알고 나무도 알아 한 팔로 번쩍 안아 밤하늘을 보여주니 달도 가르키고 별도 안다 조금 있으면 숲도 알고 하늘도 알고 말 속에 숨어있는 슬..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