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혼자 중얼거리다 198

십이월이구나

십이월이구나 오늘의 운세는 늙어감을 슬퍼마라 수묵화 한 점 치고 고고한 척 폼 한 번 잡고 십이월 뉘엿뉘엿 저물어가면서 느리게 닿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저 여린 풀과 꽃과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고 곧 땅거미가 지면 이 세상의 모든 집을 향하여 돌아가는 때 혹 길을 잃으면 구슬처럼 돋아나는 별들 오래 머무르지 않는 구름들 기울어진 달이 나뭇가지에 힘겹게 걸려있을 때 아직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는 눈이 내게 있다고 그 눈에 아직도 남아있는 한방울의 눈물이 모여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고 그렇게 뉘엿뉘엿 목화이불 한 채 내려주시는 하늘을 우러르는 달 시집 [안녕, 베이비박스]

당신에게 말걸기

어제 아침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어느 분이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는데 어쩌시겠냐고~ 전화를 주신 분은 강성위 선생, 내가 알고 있는 그 선생님은 외대 철학과에서 봉직하신 분인데 이미 작고하셨기에 동명이인 서울대 중문과에서 수학하시고 지금은 한국경제신문 컬럼이스트로 활동하시는 분 나의 졸시를 한역해도 괜찮겠냐는 말씀, 감사히 글을 받고 기쁘게 여기에 올려본다, 당신에게 말 걸기 나호열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속에 마음을 묻은 다, 예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태헌의 한역] 攀談於君(반담어군) 世上無花不好看(세상무화불호간) 亦無噴吐怒氣花(역무분토노기화) 花有香則有香..

2020년 추석

추석의 아침이다. 지난 밤 목이 부어 식구들은 가까운 큰 아들네로 가고 혼자 집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아침에 봉오리를 연 난 한 촉과 바람에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는 풍경과 한 화분에서 이 십년 동안 꽃을 피우는 사랑초와 함께 있다. 어머니 가신 지 육년째 인데 생전에 쓰신 액자가 오랫만에 눈에 들어온다 유지경성 有志竟成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후한서 後漢書 유지자사경성야有志者事竟成也에서 따온 말씀이다. 신사년 辛巳年이니 2001년 여름이다. 어머니의 서예 액자가 그러고보니 또 하나 있는데 그동안 참 무심했다.

나는 연애한다. 그런고로 존재한다.

나는 연애한다. 그런고로 존재한다. 내 마음을 훔치는 것들, 음악,그림, 좋은 글들과 나는 연애한다.그것들은 나를 모르는데 혼자서 울고 웃고 감탄하고 희열에 휩싸인다. 늘 절벽 앞에 서서 떨어질 찰라에 새가 되어야겠다는 치사한 변명과 새가 되지 못하므로 떨어질 수 없다는 비겁한 타협의 시간들을 지나면서 인생의 스승은 결국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거룩한 깨달음에 이르른다. 정병근 시인이 소개한 우대식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잠깐 생의 오르가즘에 빠진 소회이다. 띠 동갑 시인인데 나보다 훨씬 저 앞에 걸어간다. 정병근,우대식 훠에버! 오늘의 할 일은 우리 아파트에 딱 한 그루 밖에 없는 앵두나무 열매가 얼만큼 익었나 염탐하는 것 이 세상의 모든 앵두는 내 것이다!

경로석에 대한 다양한 견해

경로석에 대한 다양한 견해 지하철을 타면 경로석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아직 노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때는 일반 좌석에 앉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다. 공짜로 타는 주제에 돈 내고 타는 분들이 앉아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어제는 다리가 하도 아파 그만 경로석에 앉았다. 아무도 뭐라 하는 놈이 없는데 옆자리에 앉은 나보다 약간 맛이 간 분이 궁시렁 거리기에 눈한번 깔았더니 몸을 움추린다. 요새 젊은 놈 무서운걸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나 나나 지공이면서 뭘 말이 많아! 그 영감이 내리고 이번엔 정말 어린 꼬마가 앉기에 점잖게 한 마디"얘~ 여기 경로석이야" 했더니 이 꼬마가 말씀 하시길 " 알아요 노인을 공경하는 사람이 앉는 자리에요" 이러다가 한 정거장 더 갔다

단순한 삶

고백하건대, 나는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다. 남들이 시인이냐고 물으면 시인은 하지만 내가 왜 시인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때 그때의 느낌을 받아적는 것.화장실에서 일보는 경건함 정도. 아주 간만에 청탁이 들어와서 눈물나게 썼는데 쓰고 나니까 또 눈물난다 구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피어나기는 하나 지지는않는 꽃이다 하늘에 피는 꽃은 구름 그저 푸른 하늘만 있으면 사계절 가리지 않고 핀다 향기도 없고 벌 나비도 찾아오지 않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그네 긴 발걸음 끌고가는 구름이다 계간 [인간과 문학] 봄호

세설 世說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서로서로 호감을 가질 수는 없다. 아마도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란 자신이 가장 합리적이고 완벽한 격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 악평 惡評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 뜻을 수용할 수 있는 공력을 키우는 것이 나이 먹는 일일 것이다. 오늘 반나절을 도봉과 마주했다. 늘 그 자리. 늘 의연하게 우뚝 선!

걸레

자다 깨다 아침이다 어느 시인께서 스스로 삼류라 하시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 고명하신 시인 겸 평론가께서 나를 일러 B급 시인이라 평하셨는데 참으로 그 말이 내게 맞는 고마운 말. C급이 아니라서 다행이고 앞으로A급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즐거운 일 예전에 끄적거렸던 글이 있어 추가로 올린다 걸레 나는 너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지만 기꺼이 너를 위해 버려질 수는 있다 걸레 같은 놈이라 욕하지 마라 나는 걸레다

의자에 대하여

하루하루를 사는 일이 허물을 벗는 일에 다름 없다.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알게 모르게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은 없을까? 지난 밤 늦게 오래 전 영화 를 보면서 왜 울었을까? 대전 국악방송에서 이현옥 시인이 시 한 편을 낭독해 주셨다. 일신우일신의 각오를 다져 본다 의자 4 나호열 사람은 의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났는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이라 불려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제 몸을 내어줄 때 일 것이다 의자는 오랜 시간 홀로의 시간을 견디고 자신에게 아무런 고마움을 느끼지 않고 잠시 고단한 발걸음을 멈춘 이들이나 다른 일을 하기 위하여 하인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미련없이 떠나는 그 때까지 묵묵하게 무게를 견딜 뿐이다 세월이 흐르면 의자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허물어 쓰레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