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꺾기
- 제주도 기행. 5
맛은 없지만
밥상에 오르지 않으면 왠지 서운한
고사리 꺾으러 간다
새벽 해 뜨기 전 이라야
찔레 덩굴 속이나 풀 섶에 숨어 있는
고 놈이 보인다는데
내 눈엔 그 풀이 그 풀 같다
대궁을 잘라도 여덟 번 아홉 번
순을 올린다는 오기가
나에게는 없다
뽑히기를 평생 바랬으나
수많은 군중 속에 하나에 불과한 것이
행인가 불행인가
문득 이 세상 모든 나무의 시조가
바다에서 올라온 고사리라는 진화론의 한 구절이
전생을 스치고 지나는 순간
꼿꼿한 고사리들이 불쑥 돋아 올랐다.
소도 말도 먹지 않는다는 고사리
나도 덤불 속에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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