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밥이 되던 시절 1 윤석산 아주 오래 전 서울 주택가에는 똥을 퍼 나르는 트럭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왔었다. 동네 어귀에는 똥차가 세워졌고 똥지게를 짊어진 사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똥 퍼요, 똥퍼요. 를 외쳐댔다. 똥이 그들에게는 똥이 아니다. 똥은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었다. 똥이라도 퍼서 날라야 밥이 생기는데. 바짓가랑이에 똥이 묻어도 “똥이 뭐 대수여.” 조금도 개의치 않고 똥과 땀이 범벅이 된 바지춤에 젓가락을 씩씩 문질러 닦고는, 맛있게 퍼먹는 고봉밥. 우리의 그 시절 똥은 그렇게 우리의 밥이 되곤 했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던 정화조라는 시설이 없던 시절, 도시의 산동네 마다 공동화장실이 있어 매일 아침이면 친구도 만나고 동네 아저씨도 만나고 몰래 사모하던 옆집 여학생도 만나 얼굴 붉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