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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취업일기/문성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4. 26. 15:52

취업일기

 

문성해

 

한전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주부검침원 자리를 부탁하려고 이력서를 들고 간다 그래도 바짝 하면 월 백이십에 공휴일은 쉬니 그만한 일자리도 없다 싶어 용기를 낸 길, 벌써 봄이라고 이 땅에 뿌리를 박는 민들레 제비꽃 들, 그 조그맣고 기대에 찬 얼굴에 대고 조만간 잔디에 밀려나갈 것이라고 나는 말해줄 수 없다 그에 비하면 밀려날 걱정 없이 남의 뒤란에 걸린 계량기나 들여다보면서 늙는 것도 괜찮다 싶다가도 그래도 뭔가 좀 억울하고 섭섭해지는 기분에 설운 방게처럼 옆걸음질 치는데 명동성당 앞에는 엊그제 돌아가신 추기경님 추모 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대통령 앞에서도 할 말 다했다는 추기경님도 이 땅에서는 임시직이셨나, 그나저나 취업이 되더라도 일이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동안은 앳된 얼굴의 저 민들레처럼 저 제비꽃처럼 내일 따윈 안중에도 없이 팔락거려도 될까

 

 

 

이력서 한 장 들고 뛰는 심사가

 

요즘 편의점에서부터 국회, 청와대까지 일자리문제로 씨끌씨끌 합니다. 세금을 풀어서라도, 일자리를 쪼개서라도 가능하면 많은 일거리를 만들려 애를 쓰지만 겨우 그 한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나 그나마 그런 자리도 없는 사람들의 불만은 끝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연유는 제쳐두고 당장 눈앞의 일만 문제 삼습니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했다 하더라도 힘 있는 자들의 논리에 밀려 잔디에 밀려나가는 제비꽃 같은 신세가 되는 것도 다반사였던 시절을 지나면서 소위 적은 돈이라도 공공성을 가진 일자리에 자꾸 미련을 두게 됩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자리도 꼭 내 자리로 붙박이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이력서 한 장 들고 뛰는 심사가 어쩔 수 없이 가엾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임시직 아닌 삶이 없는데 “앳된 얼굴의 저 민들레처럼 저 제비꽃처럼 내일 따윈 안중에도 없이 팔락거”리기 라도 하면 삶이 좀 밝아지지는 않을까요. 철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습니까.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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