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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송강 정철의 자취를 수굿이 지키고 서 있는 큰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5. 6. 16:35

 

[나무를 찾아서]

송강 정철의 자취를 수굿이 지키고 서 있는 큰 나무

 

해마다 이 즈음이면 ‘봄꽃 개화 예상도’를 살펴보게 됩니다. 그 동안 봄꽃 개화 예상 시기를 기상청에서 발표했는데, 올해부터는 민간의 기상업체에 이 서비스를 넘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상업체마다 이미 앞다퉈 봄꽃 개화를 예상해 발표했습니다. 업체마다 관측표준목이 다르기 때문인지,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하루 이틀 정도 차이입니다. 개나리는 서울이 이 달 24일, 인천은 26일로 예상되어 있습니다. 두 업체의 발표를 살펴봤는데, 다른 지역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서울과 인천은 똑같습니다. 아직 이틀 사흘 지나야 서울 인천 지역에 개나리꽃이 피어난다는 예상입니다.

○ 산수유에 이어 백목련 화사한 꽃이 피어난 정송강사 ○

기상 전문 업체의 예측에 의하면 아직 하루 이틀 더 기다려야 개나리 노란 꽃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만, 서울과 인천의 중간 지점인 부천시의 제 집 주변에는 이미 사나흘 전에 개나리가 활짝 피었습니다. 물론 개화 예측은 ‘관측표준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조건이 다른 데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점차 따뜻해지는 지구 전체의 날씨를 전문가들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난 주중에는 활짝 피어난 산수유는 물론이고, 언제나처럼 고아하게 만개한 백목련 꽃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산수유가 개화한 건 꽤 지난 일이지만, 목련은 여느 때보다 빠르게 피어난 것이지 싶었습니다.

 

충북 진천 지역의 큰 나무들을 만났습니다. 활짝 피어난 산수유 목련 꽃에 발길이 붙잡혔던 곳은 진천 문백면 봉죽리의 ‘정송강사’입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인 진천 정송강사(鎭川 鄭松江祠)는 《사미인곡(思美人曲)》의 시인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스물 여섯 나이에 진사시를 거쳐 이듬해에 문과 별시에 장원급제하며 몇 가지 벼슬살이를 했지만,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건 아무래도 《사미인곡》을 비롯해 《관동별곡》 《훈민가》 《성산별곡》 등 빼어난 가사를 남긴 시인으로서입니다.

○ 경기도 고양에 있던 정철의 묘소를 송시열이 옮겨와 ○

서울 장의동(지금의 종로 청운동)에서 태어난 정철은 경상도 영일, 전라도 담양, 경기도 고양 등을 거치며 살았는데, 충북 진천과의 관계는 생소합니다. 진천의 정송강사는 경기도 고양에 있던 정철의 묘를, 현종 6년(1665)에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옮겨 지은 것으로 전합니다. 정송강사에는 지금 정철의 유품인 은배(銀杯), 옥배(玉杯)가 보관돼 있으며, 사당을 오르는 길 왼쪽인 남쪽에 정철의 시비가 있으며, 경기도 고양에서 옮겨온 정철의 묘소가 있습니다. 한 인물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서는 무척 큰 규모에 속합니다. 처음부터 이만큼 컸던 건 아니고, 1979년에 확장한 게 지금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송강 정철의 자취를 찾으려고 정송강사를 찾은 건 아니었습니다. 《나무편지》를 보시는 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큰 나무를 찾아 떠도는 중에 정송강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정송강사에 들어서는 홍살문과 정철신도비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찾아가는 길이었지요. 길 위에 오르기 전에 지도를 살피면서 나무 곁에 ‘정송강사’가 있다는 걸 알기는 했지만, 정송강사의 실체는 현장에서 처음 보게 된 것입니다. 정송강사 앞의 느티나무, 이름하자면 〈진천 봉죽리 느티나무〉는 350년 쯤 된 큰 나무입니다.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5미터에 이르고, 높이는 무려 22미터나 됩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사방으로 펼친 나뭇가지는 높이보다 큰 25미터 쯤 됩니다.

○ 큰 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진천군을 대표할 만한 명소 ○

정송강사는 근사하게 정비한 상태이고, 실제 근무하는 직원은 눈에 뜨이지 않았지만, 유물전시관과 관리사무소 등도 잘 갖추었습니다. 입구에 마련한 주차장 역시 여느 문화재 단지에 비해 모자랄 것 없이 좋은 편입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큰 느티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충분히 다시 찾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일 한낮이기도 하고, 또 여행이 조심스러운 시대이기도 해서 관리인도 관람객도 만나지 못했지만, 언제라도 다시 한번 찾아가 편안히 쉬고 돌아올 만한 곳입니다. 굳이 송강 정철을 기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편안한 분위기의 초록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진천 안에서 하루 종일 여러 그루의 나무를 만났습니다만, 이 날 답사에서 만난 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큰 나무였습니다. 아직 진천에서 더 찾아보아야 할 나무들이 더 있긴 합니다만, 아마도 진천군을 대표할 나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송강 정철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나무이니, 더 그렇습니다. 심지어 정송강사 곁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이름이 ‘송강로’이기도 하니까요.

이 땅의 어디라도 큰 나무는 사람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서 오랜 세월의 자취를 말없이 오래 지키고 있습니다. 다시 편안하게 서로의 따뜻한 손을 잡고 큰 나무를 찾아가 그 안에 담긴 옛 사람살이의 자취를 이야기나눌 수 있는 날들을 꿈꾸는 봄입니다.

고맙습니다.

- 송강 정철의 자취를 지키며 서 있는 나무 앞에서 3월 22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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