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꽃 지고, 더 나은 아이를 낳기 위해 안간힘하는 나무의 노래
[나무편지] 꽃 지고, 더 나은 아이를 낳기 위해 안간힘하는 생명 노래
이제 간신히 외로움에 익숙해질 무렵, 마스크 내려놓고 홀로 나무 향기 앞에 오래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외로이 걷는 길섶에서 피어난 쥐똥나무 꽃 향기가 굳이 킁킁거리지 않아도 저절로 코 끝에 다가오겠지요. ‘케이에프구십사’라는 철벽에 막혔던 봄 향기가 가슴 깊이 스미겠지요. 늦었지만, 봄 내음에 한껏 빠져들어야 할 즈음입니다. 찬찬히 지나온 날들의 나무들을 돌아봅니다. 사람의 사정 돌보지 않고, 스스로의 생존에 더 착실하게 살아온 우리의 나무들, 그들의 꽃들이 아련히 멀어집니다.
“세상의 모든 꽃은 단 한 번만 핀다”는 어떤 시인의 목마른 외침을 되새기며 멀어져가는 지난 계절의 꽃들을 돌아봅니다. 필경 몇 계절만 더 지나면 다시 보게 될 꽃이기는 해도, 지금 모질게 우리 곁을 떠난 꽃들의 간절한 생명 노래가 아스라합니다. 찬란했던 그때 그 꽃들은 시들어 떨어졌지만, 꽃 진 자리에는 나무들이 제 아이들을 키우느라 안간힘하며 키워내는 씨앗과 열매들이 도담도담 자라나겠지요. 그리고 씨앗을 멀리 떠나보낸 나무들은 다시 또 그 자리에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더 건강한 자손들을 키우기 위해 애쓰겠지요.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햇살을 찾아 고개를 기웃하고 피어난 튤립 한 촉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무리지어 피어난 튤립 축제장의 줄지어선 꽃들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갖춘 한 송이 꽃입니다. 사람들의 뜻에 따라 빛깔과 모습을 다양하게 바꾸며 제 생존 영역을 넓히며 풍요롭게 살아가는 튤립 종류의 하나입니다. 설강화가 아다지오로 조심스레 시작한 봄 노래는 수선화 꽃에 이르러 유쾌한 알레그로 되어 빠르게 이어지더니, 마침내 목련이 울린 나팔 소리 신호에 따라 튤립 꽃이 일제히 봄 노래의 마지막 마디를 힘차게 마무리합니다.
조금 뒤늦은 꽃들은 아직 채 꽃봉오리를 열지 않았지만, 모두가 봄의 꼬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치달리는 중입니다. 우리의 봄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이제 꽃 향기를 탐색하기 위해 사방의 눈치를 살피며 살며시 마스크를 추어올리지 않아도 그들의 내음에 몰입할 수 있는 계절입니다. 우리 곁의 나무와 꽃들이 그렇게 우리의 계절을 풍요롭게 노래하며 새로운 계절, 여름을 채비합니다. 오랫동안 코끝으로 느끼기 어려웠던 나무의 향에 온전히 사로잡히게 될 여름맞이로 설렙니다.
낮은 곳에서 작지만 화려하게 피어난 앵초 꽃도 언제나의 봄날처럼 더없이 화려하게 피어 있습니다. 보랏빛에서부터 노란빛깔까지 다양한 빛깔로 피어난 앵초 종류의 꽃들은 이 계절의 맨 뒷 자리에 자리잡았습니다. 모양이 예쁘기도 하지만, 이름에 들어있는 앙증맞은 소리의 분위기가 좋아 더 오래 기억에 남는 풀꽃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의 곁에서 피어나 어울려 온 꽃이어서, 갖가지 전설의 모양으로 사람살이 이야기를 품고 피어나는 꽃입니다.
특별히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아야 하는 제대로 볼 수 있는 꽃도 계절의 노래에 동참했습니다. 넓적한 잎 한가운데에서 또 다른 잎이 돋아나고, 그 사이에서 하늘거리는 다섯 장의 꽃잎을 활짝 피운 자디잔 꽃, 루스쿠스입니다. 워낙 작은 꽃일 뿐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어서 그냥 선 채로 걸어가면서는 도저히 그의 존재조차 느낄 수 없는 작은 꽃입니다. 꽃 한 송이 앞에서, 혹은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 앞에서는 언제나 경배하는 자세로 조아려야 할 이유를 깨닫게 하는 신비로운 꽃입니다.
가족을 생각하고, 찾아야 하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아이를 낳으려 꽃 피우고, 꽃 진 뒤에 더 건강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씨앗에 열중하는 나무들의 가족 이야기도 함께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한 주의 첫 날입니다. 즐겁고 평안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5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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