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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연못에서 깨달음을 얻은 절집의 불상 앞 마당에 서 있는 불가의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9. 11:19

[나무편지]

연못에서 깨달음을 얻은 절집의 불상 앞 마당에 서 있는 불가의 나무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천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 소식부터 전해드립니다. 2017년부터 다달이 한 차례씩, 7년에 걸쳐 정기 강좌 69회와 두 차례의 ‘번외편’ 강좌까지 모두 71회를 이어온 부천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입니다. 올에는 비대면 대면 방식을 혼용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상반기의 대면 강좌는 6월에 진행할 예정이고, 1월부터 5월까지는 네이버밴드를 통해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고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안내 페이지’를 통해 가입하시면 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기다리겠습니다.

  https://bit.ly/3X9NDCs <==부천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안내 페이지

  2023년 들어 두 번째로 드리는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산 깊은 곳에 자리잡은 고찰 ‘각연사(覺淵寺)’의 보리자나무를 소개합니다. 이곳 태성리는 마한(馬韓) 시절에 태자가 이 지역을 순행하던 중에 쌓았다는 태자성(太子城)이 있던 곳이어서, 태자성이라고 부르다가 행정구역명으로 태성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곳입니다. 각연사가 있는 작은 마을은 절집 이름을 따서 ‘각연 마을’로 불립니다. 각연 마을 뒷산인 해발 779m의 칠보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계곡의 청석골이 바로 각연사의 자리한 계곡입니다. 20년 전인 2004년에 펴내고 지금은 절판한 저의 책, 《절집나무》에서도 이 계곡과 각연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지요. 절집 각연사에서는 〈괴산 각연사 보리자나무〉뿐 아니라,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아서, 꼭 한번 찾아볼 만한 절집입니다.

  일곱 개의 보물을 간직한 산으로 알려진 칠보산의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2년(515년)에 유일대사(有一大師)가 창건한 고찰이라고 전합니다. 유일대사는 처음에 칠성면 쌍곡리 지역에 절집을 지으려 하는데, 아침이면 목재를 다듬을 때 나온 대팻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를 수상히 여겨 밤 내내 지켜보았더니, 까치들이 대팻밥을 물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됐지요. 스님이 까치들이 날아간 곳을 따라가보니, 한 연못에 까치들이 대팻밥을 내려놓고 있었답니다. 그 연못에서는 신비로운 빛이 솟아나고 연못 안에 석불이 있었다고 해서, 유일대사는 절집을 이 자리로 옮겨 짓기로 하고, ‘연못(淵)에서 깨달음(覺)을 얻었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각연사라 했다는 게 절집 창건설화로 전합니다.

  기록이 남지 않아 각연사의 역사는 온전히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창건 시기에 대해 앞의 창건설화와 전혀 다른 이야기도 전하지요. 조선 영조 44년(1768)에 기술된 《각연사대웅전탑상량문》에 의하면 고려 태조부터 광종 연간(918-975)에 통일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돼 있으며, 비로전 대들보에서 발견된 묵서에는 고려 혜종(944-945) 연간에 중수된 기록이 있다는 겁니다. 결국 각연사 창건과 관련한 구전 설화와 실제 기록에는 차이가 있어서 정확한 건 알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칠보산 자락에 자리잡은 각연사는 참 좋은 절집입니다. 절집의 나무도 좋지만, 절집 입구에 이르기까지의 조붓한 산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오래된 나무가 지어내는 풍광이 그렇습니다.

  각연사의 중심이랄 수 있는 전각인 비로전에는 보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는데, 이 불상이 바로 구전 설화에 나오는 연못에서 건져 올린 불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불상이 있는 ‘각연사 비로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했지요.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나무는 바로 이 비로전 앞 너른 마당에 서 있습니다. 비로전 마당의 보리자나무 건너편에는 봄이면 매우 인상적으로 꽃을 피우는 벚나무도 한 그루 있어서, 비로전의 봄 풍광은 찬란합니다. 각연사 부근에는 또 보물로 지정한 탑도 있습니다. 바로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이지요. 통일대사탑은 고려시대의 승탑으로, 각연사의 동남쪽 산중턱에 세워져 있는 높이 2.45m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승탑으로, 각연사에 주석했던 통일대사(統一大師)의 사리탑으로 여겨집니다. 이래저래 볼 것이 많은 곳입니다.

  2013년에 지정번호 ‘괴산 121호’의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한 〈괴산 각연사 보리자나무〉는 나무나이 약 350년의 큰 나무입니다. 나무높이는 18미터쯤 되고, 줄기는 뿌리 부분에서부터 둘로 나뉘었는데, 줄기 둘레는 제가끔 1미터를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둘로 나뉜 줄기는 경사각 20도 정도로 벌어지며 펼치며 오르다가 5미터쯤 높이에서부터는 각각 수직으로 올랐습니다. 피나무과의 낙엽교목인 보리자나무는 절집에서 ‘보리수나무’라는 이름으로 많이 심어 키웁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보리수 그늘에서 해탈했다는 까닭에 불가의 상징으로 여긴 탓입니다. 〈괴산 각연사 보리자나무〉도 그런 이유에서 오랫동안 보리수나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지요.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의 해탈과 관련한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못하는 열대의 인도보리수이고, 우리나라의 절집에서 흔히 ‘보리수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는 대개 피나무과의 나무들이기 십상입니다.

  20년 전인 2004년에 책 《절집나무》를 펴낼 즈음에 여러 차례, 그 뒤로도 쉬엄쉬엄 자주 찾던 절집 각연사는 제게 꽤 익숙합니다. 당연히 각연사를 찾을 때마다 가장 오래 곁에 머물렀던 〈괴산 각연사 보리자나무〉도 잘 알 수밖에요. 건장하고 늠름하던 이 나무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육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마침 나무 앞에서 뵙게 된 주지스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올 들어 유난스레 약해졌다”는 겁니다. 이유를 파헤치려면 좀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아마도 복토와 답압이 나무의 생육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로전은 각연사의 중심이 되는 전각이어서, 나무 바로 앞 마당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데, 나무 뿌리 주변에 나무 보호를 위한 아무런 대책이 없어서 사람들에 의한 답압 상태는 얼핏 보아도 심각해 보입니다.

  〈괴산 각연사 보리자나무〉는 앞에서 말씀드렸던 불가의 상징이라는 의미에서 350년 쯤 전의 어느 스님이 심어 키운 게 분명합니다만, 나무와 관련한 기록은 물론이고, 구전하는 이야기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괴산 각연사 보리자나무〉는 오래 전부터 각연사를 찾는 불자들이나 사진가들에게 명품 나무로 여겨진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은 20년 전인 2003년의 사진입니다. 더 오래 건강하게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더 세심한 보호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새해 들어 두 번째로 드리는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린 나무는 충북 괴산군 칠보산 자락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절집 각연사의 큰 전각 비로전 앞 마당에 서 있는 보리자나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무이니만큼 오래도록 잘 살아남기를 바라며 《나무편지》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1월 9일 아침에 …… 솔숲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