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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사람의 향기를 하늘에 전하는 향나무처럼 싱그러운 새 날 이루소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4. 09:18

[나무편지]

사람의 향기를 하늘에 전하는 향나무처럼 싱그러운 새 날 이루소서

  새해입니다. 이천이십삼년 첫 《나무편지》에서는 향나무 이야기를 전합니다. 줄기에서 독특한 향이 난다는 뜻에서 한자로는 목향(木香)이라고도 쓰는 향나무는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와 함께 오래 사는 우리의 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줄기에서 붉은 빛이 돌기 때문에 자단(紫檀)이라고 쓰기도 한 나무이지요. 대부분의 향기를 나무에서 만들어내던 오래 전에 민간에서 정성껏 심어 키운 나무입니다. 향나무의 향기는 몸과 마음을 맑게 할 뿐 아니라, 그 향기가 하늘 끝까지 뻗어나간다는 생각에서 하늘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민간의 제사 때에는 물론이고, 불가의 여러 의식에서 향을 피우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산림청 보호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나무는 울릉도 도동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붙어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는 과거형으로 쓸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온몸을 뒤틀며 도동항을 향해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무려 이천 년이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였습니다. 천구백팔십오년에 태풍 브렌다의 영향으로 큰 가지 두 개가 부러지며 고사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울릉도의 상징목인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애쓴 끝에 건강을 되찾았던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가 지난 해 여름의 태풍 힌남노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 쓰러지고 말아 안타깝게 과거형이 되고 만 것입니다.

  새해 첫 《나무편지》에 담은 향나무는 충북 진천군 덕산읍 신척리 흥개마을의 야트막한 뒷동산 마루에 우뚝 서 있는 아담한 크기의 향나무입니다. 산림청 보호수인 〈진천 신척리 향나무〉는 높이가 팔 미터쯤 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이 미터를 조금 넘는 크기의 잘 생긴 나무입니다. 나무나이는 대략 삼백오십 년 정도로 짐작된다고 산림청 보호수 목록에 기록돼 있지만,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건 알 수 없습니다. 동산 마루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나무여서 실제보다 커 보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나무나이를 가진 다른 향나무에 비하면 조금 작아 보이기에 나무 앞에서 나무 줄기에 담긴 세월의 켜를 여러 번 되짚어 보게 됩니다.

 

  누가 언제 심고 키웠는지 그 유래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건 없습니다만, 〈진천 신척리 향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의 상징으로 살아왔습니다.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동산 마루에 우뚝 서 있는 품이 그럴 만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가지가 부러지거나 잎의 상태가 좋지 않은 해에는 마을에 액운이 덮친다고 오래전부터 믿어왔다고 합니다. 마을의 상징으로 세심하게 지켜온 나무이다보니, 이 나무의 가지를 꺾는다거나 잎을 뜯어내는 식의 해를 가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화가 미친다는 믿음까지 함께 전해옵니다.

  향나무는 옛부터 우리 조상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나무입니다. 특히 삶에서 못다한 꿈을 이뤄주기 위해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향나무만큼 신령하게 여겨온 나무도 없을 겁니다.

  새해 아침입니다. 몸과 마음이 평안한 새해 이루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도 《나무편지》는 이 땅의 크고 아름다운 나무 이야기를 잘 전해드리도록 더 좋은 나무를 찾아서, 더 많은 길 위에 오르고, 더 오래 나무 곁에 머무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1월 2일 아침에 …… 솔숲에서 고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