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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한 쌍의 느티나무와 한 마을의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5. 25. 14:26

[나무를 찾아서] 한 쌍의 느티나무와 한 마을의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법

돈이 많다고 해서, 부자라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덕에 개인적으로는 온갖 영화를 누리는 풍요가 짐작되지만,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비난에 눈감고 살아야 하는 사회적 빈곤을 면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이는 재산이 그만큼 많은 게 아니어서, 개인적 풍요와 영화에서야 그에 조금 못미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도 합니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그런 두 종류의 인종은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원’을 가진 DNA의 아주 미묘한 차이만으로 같은 생물 종 사이에서 이처럼 큰 차이가 나타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 ○

경상북도 상주 땅의 한적한 시골 길에 머물렀습니다. 그 길에서 오랜만에 여러 그루의 나무를 만났습니다. 이동거리를 짧게 해서 더 많은 나무를 만날 요량으로 떠나기 전에 가장 경제적인 동선動線을 먼저 살폈습니다. 수도권만 벗어나면 이 땅의 어느 마을이라도 크고 아름다운 나무를 만날 수 있기에 동선만 효율적으로 조정하면 더 많은 나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꼼꼼히 채비했지요. 귀찮고 지루한 일입니다만 언제나 그 결과는 만족에 더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이번 답사는 경북 상주의 서북쪽인 화북면에서 시작해 가장 남쪽인 공성면으로 남하했다가 다시 북상하는 식이었습니다. 첫째 날 해가 서산에 걸릴 즈음, 상주의 중심에 가까운 외남면 지사리에서 한 쌍의 느티나무를 만났습니다.

지사리 마을 입구에는 느티나무는 두 그루가 한데 붙어서 자라는데, 제가끔 보호수로 지정돼 있습니다. 나이와 크기에서 차이가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입니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그루의 나무는 보호수 안내판에 338년(보호수로 지정한 1982년 기준), 다른 한 그루는 280년으로 돼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에는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 십 단위로 어림짐작한 측정치를 쓰곤 하지요. 때로는 십 단위가 아니라, 오십 단위, 그러니까 300년, 350년, 400년, 450년, 500년 이런 식이지요. 338년처럼 정확히 일 단위까지 쓰는 경우라면 누가 무슨 이유로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정확히 남아있을 때이지요.

○ 보호수 표지비와 함께 서 있는 감사비의 내력 ○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나무를 누가 심었는지에 대한 흔치 않은 기록이 있을지 모르고, 그걸 마을 사람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인 거죠. 게다가 나무 앞에 다가서자마자 또 하나의 궁금증이 보태졌습니다. 보호수 표지 안내판(정성스레 돌로 세운 이 안내판은 ‘표지비’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만) 곁에 같은 재질의 비가 또 하나 바투 세워져 있었습니다. ‘차형렬 감사비’라는 제목으로 세워진 이 비에는 “마을 보호수 앞(27번지) 부지를 희사하시여 그 고마움에 주민의 뜻을 모아 감사비를 세웁니다. 2009년 4월 19일”이라고 돼 있습니다. 십일 년 전에 세운 비석이었습니다. 차형렬이라는 사람은 누구이고, 무슨 사연으로 땅을 희사했고, 마을 사람들은 무엇이 고마웠을지 궁금했습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어서 마을 사람을 만나려면 몇몇 살림집을 찾아들어가야 하지요. 번거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마침 나무 바로 앞의 집 울타리에 예순을 조금 넘어뵈는 중년의 사내 한 분이 있었습니다. 여유로워 보이는 그 분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찾아가 묻는 게 일일이 집의 대문을 두드리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지요. 서둘러 수인사를 나누고, 나무 앞의 비석에 적힌 사연을 물었습니다. ‘차형렬’이라는 분이 궁금하다고도 했지요. 그러자 뜻밖의 대답은 “내가 차형렬입니다” 였습니다. 맞춤하게 사람을 만난 겁니다. 이리 쉽게 궁금증을 푸는 게 흔한 일은 아닙니다. 60대 초반의 차형렬 님은 별거 아닌데 마을 사람들이 저런 걸 세웠다며 겸손해 하시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난 이야기를 간단히 들려주었습니다.

○ 40년 전에 측정한 나무 나이의 모호함 ○

우선 나무의 나이를 보호수로 지정한 1982년에 338년이라고 지정한 건 마을에서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외레 내게 그 이유를 묻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짐작해 보니, 이 자리에 나무가 심어지고 마을이 흥성해진 게 대략 일제 강점기 이후로 본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침략자들이 물러간 1945년 즈음에 이 마을에 3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는 기록이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무에 대한 기록은 아니라 해도 그 즈음의 어떤 기록에 300년 된 나무가 있다는 정도가 나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38년 뒤인 1982년에 338년 된 나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곁의 280년이라는 건 아마도 옛 기록에 300년 된 나무와 그보다 조금 작은 나무 정도로 나왔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업실에 돌아와 1972년에 내무부에서 발간한 《보호수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옛 기록이지만 1982년에 보호수를 지정할 때에는 이 기록을 참고했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헌책방을 뒤져서 구해둔 이 《보호수지》는 한자로 쓰인 자료라는 건 둘째 치고, 번지수도 정확하지 않고, 검색 체계도 효율적이지 않아서 한쪽 한쪽 일일이 뒤져보는 수밖에 없어 매우 불편한 자료입니다. 그래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보호수지》에는 이 마을에 320년 ‘도나무’ 한 그루와 270년 된 ‘면나무’가 한 그루 등록돼 있습니다. 그러면 270년 된 면나무를 10년 뒤인 1982년에 280년 된 나무라고 표기한 건 정확합니다. 그러나 320년 된 나무를 338년 된 나무라고 한 근거는 다시 또 아리송해집니다. 좀더 찾아보기는 하겠지만, 아마도 정확한 기록을 찾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 나무와 사람이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 ○

그 다음은 차형렬 님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나무 바로 앞의 근사한 집이 자신의 어머니가 사시는 집이고, 자신은 상주시내에서 개인사업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나무는 다른 사람의 밭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나무 그늘에 들어 쉬는 일이나, 당산제를 지내는 일은 물론이고, 나무가 건강하게 살아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개인 돈으로 나무 뿌리가 살아있을 부분 정도의 땅을 사들인 뒤, 조건 없이 나무 보호 구역으로 마을에 희사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대로 뭐 간단한 일입니다. 나무를 더 잘 보호하기 위해 땅을 사서 희사한 거죠.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또 그걸 그냥 넘어가지 않고, ‘감사비’를 세운 마을 분들도 모두 고맙고 훌륭한 분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성하게 뻗어오른 느티나무 가지 위에 살풋 내려오는 저녁 노을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 건, 사람과 나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 때문일 테고, 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 한 남자의 너그러운 마음이 나무에 스민 까닭일 겁니다. 저녁 무렵, 낯선 마을에서 만난 한 그루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느티나무 그늘이 더 삽상하고 아름다워진 이유를 떠올리며 5월 25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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