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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백범 김구의 은거 자취를 지닌 마을 숲과 치유의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6. 29. 11:30

 

 

[나무를 찾아서] 백범 김구의 은거 자취를 지닌 마을 숲과 치유의 나무

길을 가다가 예정에 없던 나무를 만나게 되면 무척 반갑습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한 기분까지 들곤 하지요. 반대로 세심하게 동선 계획을 짜고, 디지털지도의 로드뷰로 현장 상황까지 탐색한 뒤에 찾아보려 계획한 나무를 여러 이유로 현장에서 만날 수 없을 때에는 참 허탈합니다. 이십 년 넘게 나무를 찾아다니는 동안 그 두 가지 상황은 늘 되풀이해 교차했습니다. 답사 경험이 쌓이고, 더불어 실시간 교통상황까지 지원하는 네비게이션이 나온 뒤로, 10만분의 1 축적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다닐 때에 비하면 헛걸음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일정한 헛걸음은 감수해야 합니다.

○ 다가올 가을을 더 알차게 맞이하기 위한 《나무강좌》에 초대합니다 ○

지난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던 《나무강좌》의 일정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참가 신청은 그대로입니다만, 개강 일자에 변동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상동도서관의 정상 개관일이 7월1일이었는데, 이 개관일이 조금 늦춰질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첫 강좌인 7월8일 이전에 개관을 하지 못하게 되면, 강좌도 미루게 되겠지요. 상황이 변동되는 데에 따라 참가신청을 하신 분들께 도서관에서 연락드릴 겁니다. 참가하실 분의 좌석에 아직 약간의 여유는 있습니다만, 인원이 제한되어 금세 마감될 듯하니, 참가하실 분들은 서둘러 신청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거리두기’를 위해 60명으로 참가자를 제한하는 사정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참가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s://j.mp/2YQll3r <== 상동도서관 《고규홍의 나무강좌》 페이지

김천 지역을 둘러보던 지난 주 나무 답사 길에 들판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찾으려고 부항면 월곡리에 들어섰습니다. 혹시라도 들판의 나무를 지나칠까봐 사방을 둘러보며 속도를 줄이는 중에 멀리 마을 숲이라 할 만한 작은 숲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개울 건너에 이뤄진 마을숲 바로 옆에는 아담한 규모의 학교가 있었기에 더 정겨워 보였습니다. 숲 건너 편에는 작은 우체국도 있었습니다. 찾아보려 마음 먹었던 느티나무의 정체를 잘 모르는 상황이어서, 혹시 저 숲 안에 있는 큰 나무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멈추고 숲에 들어섰습니다.

○ 300년 전쯤부터 이룬 느티나무 열 그루의 마을 숲 ○

숲에 이어진 학교는 1906년에 개교하여 지난 2월에 108회 졸업생을 낸 지례초등학교입니다. 지금은 6학년까지 전교생이 서른 두 명인 작은 학교이지요. 학교 바로 곁으로 이어진 마을 숲은 모두 열 그루의 느티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는 장한 숲입니다. 숲 안쪽에는 마을 사람들의 체력 단련을 위한 몇 가지 운동 기구도 놓여있고, 곳곳에 편히 쉴 수 있는 긴의자도 놓였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이 홀로 혹은 서넛이 모여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지요. 모두가 느티나무인데, 가까이 모여 있다 보니, 서로에게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면서 햇살을 많이 받으려고 여느 느티나무에 비해 위로 쭉쭉 솟아올랐습니다.

나무에 대한 정보가 따로 없어서,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었습니다. 눈대중으로, 대략 이 숲에서 가장 큰 나무의 키는 20미터 가까이 되어 보이고, 작은 나무는 10미터도 채 안 되는 규모입니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심어 키운 나무라기보다는 마을 사람들이 오래도록 나무 곁에서 살며, 한 그루 더 심고, 또 어느 한 그루가 죽으면 다시 한 그루 더 심으며 지켜온 마을 숲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연히 나무의 나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 돼 보이는 나무는 300년 쯤 돼 보이고, 좀 어린 나무는 100년 쯤 되어 보입니다. 모두 열 그루의 크고 작은 느티나무들이 다정다감하게 모여서 한 숲을 이룬 겁니다. 처음에 찾아보려 했던 550년 된 늙은 느티나무는 이 숲에 없었습니다.

○ 탈옥한 백범 김구선생이 조국 해방의 꿈을 키운 숲 ○

하지만 이 숲은 단순히 보기 좋은 숲인 걸 넘는 의미를 지닌 숲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계획에 없었던 발길이지만, 행운이었다고 해도 될 만한 숲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숲은 백범 김구 선생의 숲입니다. 백범 선생이 이 숲을 처음 찾은 건 그가 스물다섯 살이던 1900년이었습니다. 그때 선생은 투옥되었던 인천감옥에서 탈옥한 뒤, 떠돌이 은거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선생은 이 숲에서 이 마을의 부호였던 성태영을 만나게 됐고, 성태영의 권유로 ‘창수’라는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김구(金龜)’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나중에 ‘구(九)’로 바꾸게 된 이름의 시작이었던 거죠. 그리고는 성태영의 도움을 받아 이 마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성태영의 집터가 남아있습니다.

이때의 상황을 백범 선생은 백범일지에 그대로 남겼습니다. “무주 읍내에서 인삼을 재배하는 이시발(李時發)을 찾아가니 하룻밤을 묵게 하고는, 다음 날 편지 한 장을 주며 지례군(知禮郡) 천곡(川谷, 지금의 김천 부항면 월곡리)이란 동네에 있는 성태영을 찾아가라 했다. (성태영의 집은) 수청방, 상노방에 하인이 수십 명이고, 사랑에 앉은 사람들도 거의가 귀족의 풍채와 태도를 가진 자들이었다. 주인 태영이 편지를 보고 환영하여 상객으로 대우하니 상노 등이 더욱 존경하는 태도로 나를 대했다. 성태영의 자는 능하(能何)요, 호는 일주다. 그와 함께 산에 올라 나물 캐고 물가에 가서 고기 구경하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해 가며, 고금의 역사를 토론하면서 한 달여를 지냈다.”

○ ‘물과 바람의 정자’라는 이름을 가진 550년 된 느티나무 ○

그때의 인연으로 선생은 성태영과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중국 망명시절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고작 한 달을 머물렀지만, 역사에 남긴 새 이름을 얻게 된 것이 이 마을이었다는 걸 돌아보면, 의미 있는 자취입니다. 백범은 그때 이 마을숲을 자주 찾아와,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구상을 했다고 전합니다. 마을 안쪽에 성태영의 집터가 있긴 하지만, 바로 이 마을 숲을 마을 사람들은 ‘백범김구선생은거지’로 일컫습니다. 그래서 숲 한쪽에는 큼지막하게 ‘백범김구 선생 은거비’를 세우고, 백범 선생과 성태영, 이 마을숲과의 인연을 절절히 새겨두었습니다. 작은 마을 숲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귀한 숲이었던 겁니다.

애초에 찾아보려 했던 나무는 이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들판에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수풍정(水風亭)’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나무입니다. 믈과 바람의 정자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가진 550년 된 느티나무인데, 처음에는 이 나무를 찾지 못해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수풍정이라는 멋진 이름으로는 알지 못하더군요. 그냥 ‘정자나무’라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수풍정’이라는 이름은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잊어가는 옛 이름이었던 거죠. 이 나무는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은 명소이자,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나무였다고 합니다. 나무 줄기에는 몇 개의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에 고인 물이 사람들의 속병과 피부병을 낫게 하는 효험을 지녔다고 해서 자주 찾았다는 겁니다.

○ 마을 사람들이 자주 앓는 병을 고쳐주는 치유의 나무 ○

그런데 20년쯤 전에 이 나무가 벼락을 맞아서 크게 뻗어나갔던 세 개의 굵은 가지 가운데 두 개가 부러지고, 지금은 옆으로 뻗은 하나의 가지만 남아서 안타까운 형상으로만 남았습니다. 눈 감고 두 개의 굵은 가지를 떠올려보면 나무의 융융한 규모가 그대로 그려집니다. 안타까운 형상만 남은 겁니다. 물론 찾는 사람도 예전처럼 많지는 않아 보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 가운데 위의 넉 장의 나무 사진이 김구선생 은거지 기념 마을 숲이고, 그 아래 나머지 다섯 장의 사진이 바로 이 수풍정 사진입니다.

오늘도 《나무편지》는 길어졌습니다. 예상에 없던 좋은 마을숲을 만난 행운 때문이었습니다. 긴 편지 마무리하고, 다시 길 떠날 채비에 나서겠습니다. 다녀와 다시 또 더 좋은 나무 이야기 띄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마을의 역사, 민족의 역사를 품어 안은 나무를 돌아보며 6월 29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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