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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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꿈을 잇는 덕수궁 돈덕전

[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2] 찬란한 꿈을 잇는 덕수궁 돈덕전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입력 2024.05.22. 23:50업데이트 2024.05.23. 00:28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 전경./박상훈 기자계절의 여왕 오월에 돋보이는 곳이 있다. 덕수궁 돈덕전이다. 푸릇한 잎이 돋아난 노거수와 어우러진 프랑스풍 외관이 아름답다. 화려해 보이기만 한 모습이지만, 일제에 의해 훼철되어 사라졌다가 2023년 100여 년 만에 재건된 건물이다. 붉은 벽돌 옥빛 오얏꽃 무늬에 찬연한 슬픔도 묻어난다.돈덕전은 1902~1903년 지은 대한제국의 건물이었다. 고종 즉위 40주년을 경축하고, ..

유물과의 대화 2024.05.23

투우鬪牛

투우鬪牛  그랬었지. 붉은 천 펄럭이는 깃발을 향해무조건 돌진하던 철 모르던 시절도 있었지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불끈 코힘을 내뿜으며 오만과도 같은뿔을 믿었지그때는 화려했었어, 흙먼지가 일도록터져나오는 함성과 박수갈채만 있으면두려운 것이라곤 없었지신기루 같았어온톤 환각제뿐인 붉은 깃발은 사랑이 아니었어사랑 뒤에 숨은 그림자, 그것은 분노였어깨달을 새도 없이 사납게 길러진 우리,풀 대신 피 냄새를 맡으며 자라난 우리밭갈이나 달구지를 모는 대신원형경기장에 길들여진 그것이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고슴도치처럼 소심하게등에 꽂힌 무수한 창칼에도 아픔을 모르는 채또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늙은 소들

2024 경인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4 경인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달로 가는 나무김문자​달의 범람으로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땅은다섯 개의 줄기로 자라는 은행나무의 품이 되었다보름달 상현달 하현달 초승달 그믐달을 키우는인천 장수동 사적 562*번 800년 된 은행나무처음부터 약성이 쓴 뿌리에서 시작되었다오래된 나무는 달에서 왔다달이 몸을 바꿀 때마다 은행나무의 수화는 빠르다전하지 못한 말들은 툭 떨어지거나 노랗게 익어갔다은행나무는 자라면서 달의 말을 하고은행나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바닷물이 해안까지 차오르는 슈퍼 문일 때남자는 눈을 감고 여자는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고 한다오래된 나무의 우듬지는 800년 동안 달로 가고 있다소래산 성주산 관모산 거마산을 거느린 장수동 은행나무달빛이 은행나무 꼭짓점을 더듬는 농도 짙은 포즈은행나무는 ..

[1] 동짓날 팥죽과 유자 목욕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 동짓날 팥죽과 유자 목욕정수윤 작가·번역가입력 2023.12.21. 03:00업데이트 2024.03.22. 16:52   동짓날 햇살다정하게 다가와무릎에 앉네冬至の日しみじみ親し膝に来る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동지에 해가 짧아져 추워진 줄만 알았는데, 태양이 가장 낮게 뜨니 햇살이 창문 너머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 무릎에 앉는다. 데면데면하게 창가에서 놀던 햇살은 어느새 곁에서 속살대는 벗이 되었다. 연중 밤이 가장 긴 동지는 햇살과 가장 다정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북반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소를 지을 법한 이 하이쿠는 온화한 작풍으로 이름난 도미야스 후세이(富安風生·1885~1979)가 썼다.동짓날 햇살에 다정한 마음이 있다면, 동지팥죽 속에는 쫀득한 마음..

꼰대란 무엇인가

참으로 어렵구나, ‘참꼰대’ 노릇 하기중앙일보입력 2024.05.21 00:32지면보기     꼰대란 무엇인가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5월에는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지만 스승의 날이라는 다소 어색한 날도 있다. 직업적 ‘꼰대’의 일원으로서 5월을 맞아 ‘꼰대’에 대해서 생각한다. ‘꼰대’란 무엇인가?꼰대라는 멸칭의 역사동아일보 1961년 2월 10일 자 기사가 ‘꼰대’를 ‘영감 걸인’이란 뜻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날 용례와 거리가 있다. 그 후 신문 지상에서 꼰대라는 말이 나오지 않다가 경향신문 1970년 11월 13일 자 기사가 선생의 멸칭으로서 꼰대라는 말을 소개하고 있다. 멸칭으로서 선생이라는 뜻은 오늘날 꼰대 용례에도 들어 있으니, 적어도 반세기 동안 꼰대는 그 기본적인 뜻을 꾸준..

김영민 칼럼 2024.05.21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의 그 나무

[나무편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의 그 나무  ★ 1,232번째 《나무편지》 ★   나희덕의 시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토록 애틋하지 않았을 겁니다. 해미읍성에서 간다 하더라도 아마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만 한참 바라보고 그냥 돌아왔을 겁니다. 나희덕의 시를 알고난 뒤로는 이 나무 〈서산 해미읍성 느티나무〉를 스쳐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회화나무만 보고 돌아섰다면 아마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었을 게 뻔합니다. 그만큼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는 마음에 똑같은 크기로 남아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나무를 ‘식물도감’이 아니라 ‘시집’으로 배웠다”고 자주 올린 말씀이 허수로이 끄집어낸 ..

조경가 정영선, 땅에 시 쓰면서 미나리아재비 심는 이유

조경가 정영선, 땅에 시 쓰면서 미나리아재비 심는 이유 [김민철의 꽃이야기]김민철 기자입력 2024.05.14. 00:00업데이트 2024.05.14. 10:18 선유도공원, 경춘선 숲길, 디올 성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 예술의전당, 광화문광장, 서울식물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훨씬 더 많이 열거할 수도 있다. 이 장소들의 공통점이 떠오르는가. 조경가 정영선이 설계한 정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공통점이 있다면 정원을 거닐면 편안하고 우리 꽃과 나무를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게”대부분 필자도 가본 곳들이다. 누가 설계했는지는 생각도 못한 채 “우리 조경도 참 좋아졌다”, “우리 꽃과 나무를 좋아하..

카테고리 없음 2024.05.18

악어 떼가 충주호로 들어간다

악어 떼가 충주호로 들어간다[아무튼, 주말][오종찬 기자의 Oh!컷]오종찬 기자입력 2024.05.18. 01:00업데이트 2024.05.18. 08:50   [Oh!컷] 충북 충주시 월악산 자락이 충주호에 잠겨 마치 악어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악어섬'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 / 오종찬 기자 충북 충주시 살미면 충주호에는 악어 떼가 산다. 산과 물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경관이 마치 악어처럼 생겨서 ‘악어섬’이라고 하는 곳이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악어 여러 마리가 일제히 물로 헤엄쳐 들어가는 듯한 장관이 펼쳐졌다. 충주호는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생겼다. 수위가 높아지고 월악산 자락이 절묘하게 물에 잠기자 이처럼 악어 모양이 형성됐다.지형적으로는 섬이 아니지만 사람들..

어느 생물학자의 시 읽기

어느 생물학자의 시 읽기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유튜브 '김응빈의 응생물학' 운영입력 2023.11.10 10:01사진=클립아트코리아시를 읽고 느끼는 감성과 해석의 폭과 깊이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내 경험을 하나 소개하자면,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로 시작하는 신석정(1907-1974) 시인의 를 읽으면 음지식물이 떠오른다. 쉽게 말해서 음지식물은 햇빛이 덜 드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식물은 빛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광합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식물들은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예컨대 다른 식물이 빛을 가리면 그 식물보다 위로 가려고 길이 성장을 열심히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식물들은 햇빛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를 음지회피라고 한다...

[53] 땅에 귀를 기울이면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3] 땅에 귀를 기울이면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입력 2023.03.03. 03:00  벼락같이 봄이 왔다. 텅 빈 하늘에 온기가 번지고, 물 올림을 갈망하는 나뭇가지에도 초록이 비친다. 꽃샘추위가 남았지만, 이제 어깨를 펴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이 거스를 수 없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정주하(1958~ ) 작가는 작품이 이끄는 삶을 살았다. 지역에 있는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처음 가지게 된 농촌과 농부, 농사일에 대한 관심은 사진 작업으로 이어졌고, 어느새 그를 온전히 그곳 사람으로 만들었다. 1200평 농사를 짓고, 마을 이장도 하고, 환경운동도 앞장서는 그의 작가적 관심과 일상의 ..

[185] 영서연설(郢書燕說)

[정민의 세설신어] [185] 영서연설(郢書燕說)정민 · 한양대 교수 · 고전문학입력 2012.11.20. 23:30업데이트 2012.11.21. 01:36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손자를 가르치다가 영 속이 상하셨던 모양이다. 손자에게 주는 시 두 수를 남겼다. 그중 둘째 수. "내가 직접 모범 보여 손자 교육 못하니, 타일러도 우습게 아는 것이 당연하다. 내 말은 그래도 성현의 말씀이고, 네 자질은 다행히 못난 사람 아니로다. 맹상군이 무를 캠이 어이 뿌리 때문이랴, 영서(郢書)의 거촉(擧燭)으로 어진 신하 길 열었네. 선생 비록 바르지 않다손 치더라도, 네 덕을 새롭게 함에 어이 방해되겠느냐?(我敎小孫不以身, 宜其邈邈此諄諄. 余言而自聖賢說, 汝質幸非愚下人. 趙相采 豈下體, 郢書擧燭開賢臣. 雖云夫子未於正,..

[202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202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시]​시운전​      강지수​날 때부터 앞니를 두 개 달고 태어난 아이치고 천성이 소심하다 했습니다가장 부끄러운 기억이 뭐예요?종합병원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가벗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요그게 기억나요?최초의 관심과 수치의 흔적이 앞니에 누렇게 기록되었지요 나와 함께 태어난 앞니들은 백일을 버티지 못하고 삭은 바람에 뽑혀야 했지만, 어쩐지 그놈들의 신경은 잇몸 아래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고 튀어 올라 너 나를 뽑았지, 우리 때문에 너는 신문에도 났는데, 하고 윽박을 지를 것 같더란 말입니다횡단보도를 건너다 대大자로 뻗었을 때 혹은 동명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천성이란 무엇인지, 왜 어떤 흔적은 흉터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삭아져버..

코뿔소

코뿔소 둥글둥글 살아가려면 적이 없어야 한다고 하시다가도생존은 싸늘한 경쟁이라고 엄포도 놓으시던어머님의 옳고도 지당하신 말씀고루고루 새기다가어느새 길 잃어 어른이 되었다좌충우돌 그놈의 뿔 때문에피해서 가도 눈물이 나고피하지 못하여 피 터지는삿대질은 허공에 스러진다이 가슴에 얹힌 묵직한 것성냥불을 그어대도 불붙지 않는 나의 피채찍을 휘둘러도 꿈쩍을 않는고집불통 코뿔소다힘 자랑 하는 코뿔소들 쏟아지는 상처를 감싸쥐고늪지대인 서울에 서식한다코뿔소들이 몰래 버리는이 냄새나는누가 코뿔소의 눈물을 보았느냐

스승의 날

오래된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한 통의 메일을 빌견했다. 날짜를 보니 2002년 6월 말쯤이다. 어느 학생이 기말고사가 끝난 후 수강 소감을 보낸 것이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제일 머리 아픈 것이 성적처리인데 이 학생은성적 처리마감 이후에 편지를 보냈다. 성적이 이상하다는 둥, 성적을 올려달라는 둥 적지 않은 학생들의 민원에 시달리던 기억도 떠오른다.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엄격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학생들에게 배운 것도 많다.  다 지난 일이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1학기때 수원캠퍼스에서 교수님의 "철학의 이해"를 수강하였던 학생입니다. 제가 교수님께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진심으로 교수님의 수업을 참 감명 깊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대학이라는 곳에 처음 와서 전공을 포함한 여러가지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