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서울 지역학 페스타의 의미와 성과
나호열 (도봉학연구소장)
도봉문화원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문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의 향토 사료 발굴과 전승에 머물렀던 문화원의 역할을 탈피하고 지역의 유, 무형의 문화자산을 아카이빙(archiving), 즉 체계적으로 보관함으로써 향후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카이빙 구축과 생활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세대 간의 소통과 문화 향유의 통로를 넓히는 지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체계가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도봉문화원은 부설기관으로 도봉학연구소를 개설하여 교수, 학술활동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활동가 등 유능한 여러 분야의 연구위원들을 초빙하여 매년 학술지 『도봉학연구』를 발간하고 있다. 더불어 매년 학술회의와 포럼,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지역의 생활 문화의 저변을 다지는데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술적, 문화적 성과를 지역사회에 보다 대중적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2024. 서울 지역학 페스타’는 지역학의 학술적 과제와 성과를 보다 널리 향유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였다.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한 사업공모에 당선되어 추진된 본 사업은 ‘살아온 것들, 살아갈 것들’을 주제로 지난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진행되었다.
사진 1. 2024. 서울 지역학 페스타 “살아온 것들, 살아갈 것들” 포스터
지역사회에 남아있는 흔적, ‘살아온 것들’
과거 없는 오늘은 있을 수 없고,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오늘을 살 수는 없다. 과거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보다 값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2024. 서울 지역학 페스타의 1부 ‘살아온 것들’은 지역이라는 공간에 과거부터 쌓여 온 흔적, 문화유산을 조명하고자 했다. 선대들이 일구어온 문화유산을 고답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극복하고 자랑스런 한국인임을 자각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기획의도를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지역에서 만날 수 있으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네 가지 주제가 선정되었으며, 양일에 걸쳐 각 계 전문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첫날 열린 김희찬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관장의 「한반도 선사문화의 이해」는 수 만년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구만옥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서원으로 살펴보는 조선 유학사」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조선 유교 사상의 실상을 소개하는 명강의였다. 이튿날에 열린 한동수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의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은 우리 전통 건축에 사용되는 용어와 건축 구조, 의미를 설명했고, 양시은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죽은 자의 공간, 한국의 고대 묘제」는 고대의 장례문화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상을 조명하는 강의였다.
강의에는 지역문화에 관심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특히 도봉문화원을 비롯한 인근 지역 문화해설사와 유관학과 대학생, 일반 주민 등이 강의를 찾았고 행사장은 청년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사진 2. 지역문화유산 특강
지역문화를 만들어 갈 주체의 조명, ‘살아갈 것들’
- 도봉학연구소 지역학연구 논문 공모
이어지는 2부 ‘살아갈 것들’은 당면한 삶의 문화적 상승을 꾀하기 위한 미래에 대한 담론의 장이다. 첫 번째로 도봉학연구소가 주관한 ‘지역학연구 논문 공모’를 들 수 있다. 도봉학연구소 지역학연구 논문 공모는 2023년 처음으로 시행한 사업으로 지역문화에 관심 있는 청년, 학생, 공무원, 활동가 등 응모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는 연구 논문의 수월성도 중요하지만 장차 지역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연구자와 지역 활동가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올해에는 첫 회보다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응모가 있어 향후 발전 가능성에 희망을 가지게 된다.
연구 논문 공모는 총 5개의 연구를 선정하여 시상한다. 본상인 도봉상, 학술상, 지역문화상은 훈격의 차이 없이 공동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각 연구의 특장 분야를 심사하여 결정한다. 도봉구의 지역성과 문화를 다룬 연구에는 ‘도봉상(도봉구청장상)’, 지역문화와 정체성 등 지역학 분야를 다룬 연구에는 ‘지역문화상(도봉문화원장상)’, 그리고 학술적 완성도가 높은 연구에는 ‘학술상(덕성여자대학교 총장상)’이 주어진다. 이외에도 본상에 들지 못하였어도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연구 논문 2편에는 장려상(도봉문화원장상)이 수여된다. 각 상에서 알 수 있듯 지역학 연구 및 활용에 있어 지자체와 교육·연구기관, 그리고 문화기관의 연계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도봉상 수상작은 유예린, 허진의 「도봉구의 지역적 특성과 독립·사회운동의 거점성」이 뽑혔으며, 지역문화상은 윤소민, 박소윤의 「지역아카이브를 활용한 복합문화공간 환경 조성 레퍼런스 제시」, 학술상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 지역사회의 동향」을 응모한 문예찬, 장려상으로는 이루리, 이미송, 지황오의 「도봉문화원의 지역순환적 정책 제언」과 나보현, 전나련의 「드라마로 본 도봉구의 장소성」이 뽑혔다. 도봉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지역 연구를 다룬 이 논문들은 차후 보완을 거쳐 『도봉학연구』 제6호에 수록될 예정이다.
사진 3. 도봉학연구소 지역학연구 논문 공모 수상작 발표
- 지역문화 계층별 토론회
2024. 서울 지역학 페스타 2부 ‘살아갈 것들’의 두 번째 순서는 지역문화의 미래를 준비하는 토론회이다. 이번에 도봉문화원에서 처음 시도하는 지역문화 계층별 토론회는 지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계층들을 초대하여 분과로 나누어 현안을 논의하는 장을 만들었다. 이는 지역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으고자 한 것이지만, 나아가 올해 30주년을 맞는 도봉문화원이 향후 어떤 미래가치를 지향할지 모색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역문화예술단체, 지역문화예술인, 지역문화청년, 지방문화원 실무자로 나눈 섹션에서 자유롭고 다양한 의견이 도출되었다.
지역문화예술단체 분과에는 도봉지역에서 활동 중인 문인, 미술, 사진, 국악협회의 임원들이 모였다. 윤은자 지역연합신문 기자가 좌장이 되어 지역 내 문화예술단체의 활동과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문화예술에 지역성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독립서점 ‘사유와 사유’의 주상호 대표는 지역문화예술인 분과의 좌장을 맡아 지역에서의 지속 가능한 활동에 관한 토론을 이어 나갔다. 이 자리에는 도봉문화원의 중점 사업인 도봉옛길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도봉옛길 예술상단을 비롯해서 클래식, 국악, 일러스트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독립 예술인들이 함께 하였다.
세 번째 분과에는 김도혜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교수가 진행한 ‘청년은 왜 지역을 피하는가’를 주제로 심도 있는 토론이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된 도봉문화원에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다수의 수료생들이 지역문화 현장에서 겪은 문제점들을 토로하고 어떻게 안정적인 직업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을지, 지역문화 인프라 조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네 번째 분과에서는 지방문화원 실무자들이 지방문화원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과제로 진현우 도봉문화원 경영기획팀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지역의 문화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현안들을 세분화하여 열띤 토의를 진행하였다. 이 분과에서는 서울 은평, 경기 의정부, 하남, 대전 대덕문화원을 비롯해 문화원 및 연합회의 전 근무자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전국 문화원이 겪고 있는 운영상의 문제점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의견을 나눔으로서 향후 지방문화원간의 소통과 협력의 기반을 다졌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사진 4. 지역문화 계층별 토론회
2024. 서울 지역학 페스타의 의미와 성과
도봉문화원은 개원 30주년을 맞아 ‘도봉문화 30년 문화도봉 100년’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다. 개원 이후 달려온 30년은 문화원의 기반을 다지고 문화원의 역할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이립(而立)의 의미와 앞으로 남은 70년을 향해 달려가는 첫 걸음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에 안주한다면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겨낼 수 없고 어렵고 새로운 과제에 대한 도전과 예비가 없다면 문화원의 존립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역경이 기적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살아갈 것들에 대한 탐색과 연구는 단지 도봉문화원만이 가지는 미션이 아니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의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들리는 요즘, 지역에서 활약하는 청년의 감소, 문화를 통한 지역정체성의 공유 등의 문제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도봉문화원도 이런 추세 속에서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이끌어내고, 세대 간의 소통과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2024. 서울 지역학 페스타’는 다방면에서 지역주민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주민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전인미답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뜻하지 않은 실패를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동안 문화원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봉학연구소를 설치하고 지역의 특성을 학술적 토대로 만드는데 진력하였으며, 문화해설사 양성과정, 지역문화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지역문화기록단을 발족시키고, 청년 문화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4년간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진행해 왔다. 이밖에도 도슨트 양성과정 등 지역 주민들의 참여형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많은 프로그램을 수행해왔다.
‘2024. 서울 지역학 페스타’는 지역주민이 함께하며 공감하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다. 지역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유산특강이나,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지역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지역학연구 논문 공모가 그러하다. 또한 지역문화 각 구성원을 모아 분과별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향후 우리가 만들어 갈 지역문화의 장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지역문화 토론회는 시간의 제약 때문에 충분한 논의의 장이 되지 못했다. 또한 토론에서 제기되었던 여러 문제들이 일시에 해결될 수 있는 사항들이 아니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더불어 지역문화에 관심있는 대상 뿐 아니라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보다 쉽고 재미있는 형태로 지역학과 지역문화를 가공해 선보일 필요가 있다. 올해 첫발을 내딛은 서울 지역학 페스타가 머지않은 미래에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2024년 도봉문화
'문화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건국은 결국 역사의 발전이었다 (0) | 2025.01.03 |
---|---|
‘어디로’ 아닌 ‘어떻게’… 평범한 삶 속 숨은 재미를 찾다 (5) | 2024.12.27 |
젠더 갈등 드러낸 문제작웹툰 '이세계 퐁퐁남' 작가 퐁퐁 (3) | 2024.12.21 |
'혼돈의 한국' 가장 큰 문제는 교육…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인 양산 (4) | 2024.12.09 |
"빵 없으면 케이크 먹으라"… 대중 분노가 만든 가짜 뉴스죠역사 속 오해들 (0) | 2024.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