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1989 59

모기향을 피우며

모기향을 피우며 음험한 공기가 방 안에 퍼진다 낮은 목소리의 모의가 무차별하게 짜증나는 여름밤의 배후를 친다 피리소리처럼 가늘게 마약처럼 습관적으로 발견되는 인간성 향기로운 모기향은 파리, 모기, 나방들을 한꺼번에 죽이고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처럼 방 안에는 편안한 잠이 보장된다 유유히 쓰레기를 치우는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모기향을 피우는 이 손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살의를 실행하는 이 손

그 사람

그 사람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그저 바람으로 흘러가는 주소를 생각해 보았다 한나절이 지나고 숨을 곳 곳곳이 찾아보았으나 방금 떠났다고 한다 어디로 간다는. 행선지도 없이 신발 문수를 감추고 같이 모여 있으나 뿔뿔이 흩어져 갈 정류장에서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따스한 무덤같은 별들이 여기야, 여기야 오천 년 전의 눈빛ㅇ을 은근히 보내고 있었다

다시 오월에

다시 오월에 돌아오마 이루지 못한 꿈 너희들과 함께 나누마 약속은 없었어도 우리에겐 약속의 상처가 남아 까닭없이 눈몰나는 오월 작은 숨소리 들리더니 함성이 몰려오더니 포성이 울부짖더니 금시라도 컴검하게 무너져 내릴듯 세상은 몹시도 흔들리더니 깨진 유리창 사이로 우윳빛 흰피톨 한 줄기 평화의 빛이 내린다 사나운 발자국 뛰쳐나간 길 비켜서서 너는 누구냐 붉은 장미꽃

오월에

오월에 나는온몸이묶인다 눈이 감긴다오월이면 대열을 지어하낫둘하낫둘힘차게오는것이아니라머리도꼬리도없이소문으로먼저다가서는것이아니라 봄은 죽은몸으로와서여기가어디냐고되묻는다푸른독기가온몸에퍼진채 온몸이묶인채로눈이감긴채로나는생각한다암살된나라에수의를입히듯눈초리가매서운꽃들이머물렀던자리에서떠나는오월을붙잡는다찢겨진바람사이로하늘은곱기만한데지렁이같은몸부림의흔적이눈물로지워진이땅의역사를숨돌릴새없이밀어닥치는아카시아향기에돋힌가시바늘을 여기에우리의묘비를세우자아무런말씀도적혀있지않은바람을데리고혼이나마멀리떠나가보자첩첩이쌓인어둠도혼불하나에는당하지못할것이니죽은몸여기누이고훨훨날아가보자만장처럼휘날리는오월을 두고

휴지

휴지 아직도 이 땅, 태어날 때부터 천민의 탈을 쓴 저를 아십니까 복수이면서도 늘 단수로 취급되는 거꾸로 매달린 사지, 당신들은 일회용으로 저의 목숨을 해치워 버리십니다 죽어서는 생전보다 더 더럽게 은밀하고 누추한 곳으로 버려집니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 온다한들 저의 몫은 없습니다 더러움을 지우기 위하여 스스로 온몸을 구겨야하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 죄지은 것도 없이 수인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혼자 세상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타클라마칸 3

타클라마칸 3 사막에는 길을 낼 수 없었다 바람은 모래를 날라오고 모래는 시간마저 묻어버렸다 사람들이 그 사막을 통과했다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눈은 침침해졌으며 잘 발달된 후각도 없었다 다만 처음의 그들은 무엇이든 끝이 있으리라는 절망을 믿었을 뿐 똑같은 보폭으로 천천히 죽음 속을 걸어들어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