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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인조대왕 계마행’으로 불리는 특별한 은행나무의 노란 가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2. 5. 13:19

[나무편지] ‘인조대왕 계마행’으로 불리는 특별한 은행나무의 노란 가을

  ★ 1,208번째 《나무편지》 ★

  바람 매섭던 한 주일 잘 보내셨겠지요. 주말에 머물렀던 강원도 춘천과 경상북도 봉화는 아침 기온이 영하 8도, 영하 12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추울 것이라는 예보는 알고서도 바보처럼 옷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이틀 내내 매운 바람에 덜덜 떨며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사람, 좋은 나무, 좋은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이틀이었기에 차가운 바람 너끈히 이겨낼 만큼 따뜻했습니다. 이제 한 해의 끝자락인 십이월, 겨울입니다. 그냥 보내기 아쉬운 지난 가을의 나무 이야기로 이 아침의 《나무편지》 띄웁니다.

  지난 주 《나무편지》에서 알려드린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소식, 한번 더 전해드리고 나무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2023년을 마감하며, 대면강좌 형식으로 12월 둘째 수요일인 13일 오전 10시에 부천상동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진행하는 제81회 《나무강좌》의 자리가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 지금 기상청 예보로는 13일 낮 기온은 영상4도에 불과합니다. 예보대로라면 쌀쌀한 날씨가 되겠지만, 찬 바람 이겨낼 따뜻하고 경이로운 나무 이야기, 잘 준비하겠습니다. 이번 강좌에서는 〈우리 곁의 특별한 나무〉 라는 주제로, 우리 강좌에서 놓쳤던 큰 나무와 한햇동안의 만난 크고 아름다운 나무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기다리겠습니다.

   https://bit.ly/47uYIDA <==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신청 페이지

  오늘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나무는 열흘 쯤 전에 찾아본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입니다. 이미 남녘이라 해도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잎은 모두 떨어졌을 겁니다만 지난 가을의 소중한 기억을 한번 더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끄집어낸 나무입니다. 특히 지난 가을 단풍은 예년에 비해 그리 상큼하지 않아 아쉬웠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단풍을 채비해야 하는 가을 초입에 마치 한여름처럼 무더웠던 날이 며칠 이어지면서 나무들이 단풍을 채 준비하지 못한 겁니다. 그런 날씨가 어느 날 갑자기 한겨울 추위로 보여주는 바람에 나무들은 단풍이 채 들지 않은 초록 잎을 떨어뜨려 ‘초록 낙엽’이라는 말이 이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 가을 나무가 우리에게 보내준 심상치않은 신호를 오래 기억해야 합니다.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에는 특별한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인조대왕 계마행’입니다. 인조대왕은 조선의 임금 인조를 높여 부른 말이고요, 뒤의 ‘계마행(繫馬杏)’은 비교적 생경한 한자어입니다. 행(杏)은 ‘살구나무 행’이라고 돼 있긴 해도 은행나무를 가리킬 때 쓰기도 하는 말이니 ‘계마행’의 ‘행’은 당연히 은행나무를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그 앞의 마(馬)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맨 앞의 계(繫)는 자주 쓰는 한자가 아니어서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계’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맬 계’라고 돼 있고, 그 뜻으로 ‘매다, 이어매다, 묶다, 매달다, 끈, 줄’ 등으로 풀이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마행’은 ‘말을 매어둔 은행나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앞에 인조대왕이라는 말이 붙었으니, 여기의 말은 인조가 타고 다니던 말이고, 그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매어두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인조가 이 마을을 찾아왔을 때에 타고온 말을 잠시 매어두었던 은행나무라는 뜻에서 ‘인조대왕 계마행’이라는 특별한 별명으로 불리는 나무인 겁니다.

  이 나무는 1980년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나무로, 지정하면서 얻은 그의 고유한 이름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의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지금 이 나무가 서 있는 위치는 ‘담양 고서면 산덕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지방기념물’로서 처음 얻은 이름은 아주 특별한 사정이 아니고서는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 처음 얻은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겁니다.

  인조(仁祖, 1595 ~ 1649, 재위기간 1623 ~ 1649)가 이 마을을 찾은 건 임금 자리에 오르기 전이었습니다. 4백 년 전의 일입니다. 인조는 임금 자리에 오르기 전에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지혜로운 선비들을 만나 나라의 살림살이에 대한 여러 의견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 마을에는 오희도(吳希道, 1583 ~ 1623)라는 선비가 있었습니다. 오희도는 ‘명옥헌 원림’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특히 배롱나무가 유난히 아름다운 ‘명옥헌 원림’이 오희도의 정원이었는데, 이 정원의 ‘명옥헌’이라는 정자는 오희도의 아들인 (吳以井, 1619 ~ 1655)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멀리서 말을 타고 오희도를 찾아 이곳 후산리(지금의 산덕리)까지 찾아온 오희도의 집에 들어서기 위해 말에서 내려 말 고삐를 매어두려 했는데, 그때 바로 눈에 들어온 게 이 나무였던 겁니다. 그래서 이 은행나무에 말을 매어두고 오희도의 집으로 들어가 고담준론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오희도를 찾아왔던 사람이 인조라는 이름의 임금으로 즉위하자, 마을 사람들은 임금이 찾아왔던 마을이라는 걸 자랑스레 여겼고, 또 그가 잠시나마 말을 매어두었던 은행나무를 ‘인조대왕 계마행’이라는 특별한 별명으로 부르게 된 겁니다.

  따지고 보면 임금의 말을 잠깐 매어두었다 해서 그게 뭐 그리 특별한 나무이겠습니까? 하지만 당시로서는 임금이 이 후미진 마을을 찾아왔다는 것은 물론이고, 이 마을에 임금이 찾아와 고견을 들어야 할 정도로 지혜가 출중한 선비가 살았다는 것을 자랑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인조가 찾아왔던 여러 증거 가운데에 ‘은행나무’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 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은 오래도록 마을에 대한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를 처음 만난 건 20여 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무가 서 있는 자리를 찾아가려면 집도 절도 없는 한적한 조붓한 길을 돌고 돌아 들어가야 했습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그 길이 특별하 달라지지 않기는 했습니다만, 마을 풍광은 완젼히 달라졌습니다. 최근에 이 나무 주변에 전원주택이라고 불러야 할 예쁜 집들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그렇다고 주변 환경을 해치는 정도라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옛 풍경과는 천양지차입니다.

  마을 끝 비탈에 서 있는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는 나무높이가 30m에 이르고, 가슴높이줄기둘레는 8m 가까이 됩니다. 좁다란 골목 끝자리에서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솟아오른 이 나무의 나뭇가지 펼침은 사방으로 대략 20m 가까이 되는 큰 나무입니다. 나무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매우 비좁아 자동차보다는 걸어서 다가가는 게 좋습니다. 최근에는 명옥헌 원림을 찾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명옥헌 입구에 주차장을 따로 만들었더군요. 그 주차장에서부터 대략 300m 정도만 걸으면 되는 거리입니다. 혹시라도 명옥헌을 찾으실 일이 있다면 바로 곁에 있는 ‘인조대왕 계마행’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오래 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스쳐 지나듯 만나게 되는 우리 곁의 나무들을 한번 더 돌아보고, 오래오래 마음 깊이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의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에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오늘의 《나무편지》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12월 4일 월요일 아침에 1,208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