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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날씨의 혹독한 혼란 속에서 불현듯 떠오른 이른 봄 노루귀 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1. 13. 16:27

[나무편지] 날씨의 혹독한 혼란 속에서 불현듯 떠오른 이른 봄 노루귀 꽃

  ★ 1,205번째 《나무편지》 ★

  영하의 날씨를 몰고온 가을 초임의 바람이 몹시 맵습니다. 이제 고작해야 십일월 중순이건만 옷깃에 스미는 바람은 엄동설한을 품었습니다. 열흘 쯤 전인 십일월 초에는 경북 경주의 기온이 27.2도까지 오르며 무더위를 보인 날씨가 입동 지난 이번 주에는 영하 7도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고작 열흘 정도 사이에 무려 30도 이상의 기온 차이가 납니다. 이럴 수 있는 건지, 이래도 되는 건지 ……. 걱정입니다. 가을비 내리고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한겨울에나 입어야 할 겨울 옷들을 끼어입고 아침 바람을 맞이합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띄운 천이백네 번째 《나무편지》에서는 우리 곁의 기후를 표현하는 데에 ‘변화’가 아니라 ‘붕괴’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게 이미 꽤 지난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짐작 불가능한 날씨의 혼란으로 지난 가을의 단풍도 시원찮았다고는 말씀과 함께요. 이른 봄, 숲으로 스며드는 찬 바람에 맞서 피어나는 앙증맞게 작은 꽃, 노루귀가 생각난 건 그래서입니다. 가을 지나고 겨울까지 잘 지나야 봄이 오겠지만, 벌써부터 내년에 노루귀 꽃 피울 봄날의 다사로운 햇살이 떠오릅니다. 지금 땅 깊은 곳에 뿌리로 웅크리고 있을 작디작은 한 포기 풀꽃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그 작고 여린 몸으로 ‘붕괴’되어가는 이곳의 날씨를 잘 견뎌낼 수 있을는지요.

  이른 봄에 앙증맞게 피어나는 작은 풀꽃, 노루귀! 바람 찬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숲길에서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언제나 봄 오는 소리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저 전해주는 꽃이지요. 하긴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은 거개가 땅바닥에 몸을 붙이고 피어납니다. 땅의 흙에 배어있는 온기에 기대어, 찬 바람을 피할 요량인 거죠. 눈에 뜨이지 않을 만큼 가녀린 몸으로 기지개를 펴고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살림살이를 이어가기 위해 애써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작은 봄꽃들이 펼치는 아우성은 언제나 장엄합니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이 식물의 꽃이 피어난 뒤에 돋는 잎사귀가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해서 붙었습니다. 노루귀는 흰 색이나 연분홍색으로 때로는 깊은 푸른 색이 나는 꽃을 피웁니다. 파란 색 꽃을 피우는 노루귀를 따로 ‘청노루귀’라고도 부르지만, 식물분류학에서는 같은 식물로 여깁니다. 사진만으로는 노루귀의 꽃이 얼마나 작은지 가름되지 않습니다. 노루귀는 꽃 한송이의 지름이 고작 1.5cm 정도 되는 작은 꽃입니다. 흥미로운 건 꽃잎으로 보이는 여덟 장이 모두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입니다. 꽃잎이 없다는 겁니다. 우윳빛의 수술과 노란 색의 암술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꽃을 피우고, 꽃잎 대신 흰 색, 분홍 색, 혹은 짙은 푸른 색의 꽃받침이 이 작은 꽃을 화려하게 꾸미는 겁니다

  노루귀의 작은 꽃을 더 자세히 만나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사람이 먼저 몸을 낮추어야 합니다. 노루귀는 꽃송이도 예쁘지만, 꽃송이를 지탱하는 가늣한 꽃대 가장자리로 돋아난 작은 솜털까지 보아야 하거든요. 잘 해야 십센티미터 정도 올라와 피어난 꽃잎 아래 쪽의 꽃대에 돋아난 솜털은 선 채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노루귀 꽃이 피어날 때면 일쑤 바람 찬 이른 봄 숲의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보솜한 노루귀 꽃대의 솜털에 눈을 맞추는 동안은 숲 바닥의 한기까지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일기예보를 자주 돌아보게 되는 날들입니다. 주중에는 다시 예년 가을과 비슷하게 기온이 오른다고 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혹독한 기후로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건강 잃지 마시고, 가을 겨울 잘 보내야 노루귀 꽃 피어나는 새봄을 건강하게 맞이할 수 있겠지요. 건강하시기 바라며, 봄꽃 노루귀 이야기로 《나무편지》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아침에 1,205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