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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풍요로운 나무와 함께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2. 26. 14:41

[나무편지]

풍요로운 나무와 함께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211번째 《나무편지》 ★

  성탄절, 즐거이 잘 보내셨는지요. 마침 성탄절이 월요일이어서 토일요일에 이어서 사흘 내내 쉴 수 있었던 풍요로운 연휴를 보내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2023년 한해가 다 지나갑니다. 며칠 안 남은 2023년의 며칠 동안은 아마도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새해를 어찌 맞이할 것인가를 궁리하는 데에 더 많은 생각을 들여야 하겠지요. 언제나 지나온 것을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것을 계획하고 대비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까요

  올 한해의 《나무편지》도 오늘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다음 주에 띄우게 될 다음 《나무편지》는 2024년 새해 첫 편지가 되겠지요. 그러니까 〈진천 신척리 향나무〉로 시작한 2023년의 《나무편지》는 이번이 끝이 되는 겁니다. 2000년 5월 8일에 첫 《나무편지》를 띄운 뒤로 24년 동안 한 주도 쉬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나무편지》를 소중히 살펴봐 주시는 많은 분들의 성의 덕분입니다. 올 한햇동안도 《나무편지》를 성의껏 살펴봐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큰 감사 인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을 마무리하는 《나무편지》는 이미 예고해 드렸던 것처럼 ‘머무르고 싶은 곳’ 전라북도 고창군의 큰 나무 한 그루를 더 소개합니다. 고창을 대표하는 나무, 〈고창 수동리 팽나무〉입니다. 200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 나무는 나무높이가 12m 정도 됩니다. 이 정도 높이는 사실 그리 큰 팽나무라 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사람 가슴높이에서 잰 둘레가 6.56m인 줄기에서 뻗어나간 나뭇가지 펼침폭은 동서방향으로 22.7m이며, 남북방향으로는 그보다 훨씬 큰 26.0m에 이릅니다.

  〈고창 수동리 팽나무〉는 나뭇가지를 장하게 펄친 탓에 나무는 여느 팽나무에 비해 나무높이가 조금 낮은 편이어도 전체적인 분위기만큼은 웅장합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이어지는 밭 가장자리입니다. 고창군의 특산물인 복분자를 재배하는 밭입니다. 그 반대편으로는 건천이 흐르는 급한 비탈이 이어집니다. 밭 너머로는 마을 살림집이 몇 채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 풍경입니다.

  나무는 언덕 위 평평한 경작지의 가장자리에 서 있습니다. 앞의 이야기처럼 나무가 서 있는 자리 아래쪽으로는 급경사가 이어집니다. 이런 위치는 나무가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데에 그리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뿌리를 사방으로 고르게 펼쳐야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텐데, 경사지 쪽으로는 뿌리를 뻗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고창 수동리 팽나무〉는 불리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반대쪽으로 더 깊이 뿌리를 뻗어내며 지금까지 건강에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지금의 나무 상태와 규모로 보아 대략 400년 정도 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고려 말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라는 이야기도 전하기는 합니다만, 근거가 확실한 건 아닙니다. 예전에는 이 자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때에는 이 나무가 배를 매어두는 지주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변산반도와 선운산 사이에 형성된 곰소만의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곳인데, 가만히 지도를 살펴보면 간척지로서의 특징이 해안선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간척 사업 이전에 배를 매어두었다는 이야기가 실감나는 거지요.

  전체적으로는 매우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만, 땅에서 솟아오른 나무 줄기와 땅의 경계 부분인 ‘지제부(地際部)’에 드러나는 커다란 구멍은 그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으로 여겨집니다. 또 동쪽으로 뻗은 나뭇가지의 상당 부분이 부러져나갔다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건 오래 전에 줄기에서 뻗어나온 굵은 가지 하나가 부러지면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 흔적으로 나무의 동쪽 줄기 표면에는 지금도 큰 상처가 남아있고, 이 부분을 메워준 충전재가 또렷이 보입니다.

  그래도 나무는 여전히 장한 수형을 잃지 않았습니다. 동쪽으로 뻗은 가지가 불균형을 이룬 건 어쩔 수 없는 세월의 상처이겠지만, 그밖에는 매우 건강한 편입니다. 방향을 바꾸어서 나무를 살펴보면 정말 그 장한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사진은 나뭇잎이 무성하던 몇해 전 여름의 사진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당산나무로 삼고, 당산제를 올릴 만한 나무로서의 위용을 충분히 갖춘 겁니다. 이번에 찾아보니, 마을 당산제는 이제 치르지 않는 듯합니다. 당산제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 금줄을 찾을 수 없었거든요. 나무 주변이 언덕 위의 평지여서, 예전에는 나무 아래에 모여 줄다리기를 비롯한 마을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해지는 나무입니다. 어쩌면 그의 낮지만 너른 품이 그런 편안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한햇동안 만나고, 《나무편지》로 전해드린 나무들을 가만가만 떠올립니다. 모두가 좋은 마을, 좋은 나무들이었습니다. 그 많은 나무들 가운데에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고창 수동리 팽나무〉처럼 편안한 나무, 그리고 언제나 다시 찾아도 ‘머무르고 싶은 곳’ 고창군의 이야기로 《나무편지》를 띄울 수 있어서 행복한 세밑입니다.

  2024년 새해를 더 풍요롭게 맞이하기 위해 며칠 남지 않은 2023년, 보람되이 보내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3년 12월 26일 성탄절 다음 날 한낮에 1,211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