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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과 부천의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1. 30. 11:28

[나무편지]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과 부천의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 1,207번째 《나무편지》 ★

 

  한 주간, 기껏해야 이레밖에 안 되는 동안에 날씨가 깜짝 놀랄 만큼 오락가락했습니다. 남쪽 지방인 전라남도 담양에서 보낸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은 늦여름 못지 않게 따뜻해 웃옷을 벗어놓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날인 금요일의 강원도 춘천에서는 한겨울 복장도 모자라지 싶을 만큼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언제나 온기가 배어 있는 도서관에서조차 겉옷을 벗어놓지 못했지만 옷깃을 스미는 한기를 견디기 힘들었어요. 계절의 온전한 흐름이 붕괴되어버린 즈음입니다. 그야말로 정신 바짝 차리고 맞이해야 할 날들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우선 지난 2017년 봄부터 지금까지 다달이 한 차례씩 이어가고 있는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소식부터 전해드립니다. 돌아보니 벌써 80회를 넘겼고, 내다보면 9년차가 되는 내후년에는 100회를 맞이할 참이네요. 2023년을 마감하는 12월의 제81회 《나무강좌》는 ‘대면강좌’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전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 진행하는 대면강좌입니다. 이번 강좌에서는 〈우리 곁의 특별한 나무〉 라는 주제로, 그 동안 우리 강좌에서 놓쳤던 큰 나무와 한햇동안의 답사에서 만난 크고 아름다운 나무에 담긴 살가운 이야기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https://bit.ly/47uYIDA <==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신청 페이지

 

 이번 제81회 《나무강좌》의 내용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리하지 않았습니다만, 지난 시월에 답사한 일본의 큰 나무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와 연관되는 우리의 나무들을 함께 살펴볼 계획입니다. 우리 주변의 큰 나무를 통해 ‘나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짚어보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 대면강좌에서도 그 동안 《나무강좌》와 《나무편지》에 보내주시는 성원에 보답하는 의미로 약간의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한해를 즐거이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https://bit.ly/47uYIDA <==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신청 페이지

  오늘 《나무편지》에서 먼저 보여드린 사진은 모두가 잘 아시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입니다. 오랫동안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가로수길이었지만, 지금은 찻길을 멀리 돌려 내고, 사람이 나무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길로 가꾼 곳이지요. 이 아름다운 길에 늘어선 메타세쿼이아들이 한창 겨울 채비를 마치고 단풍을 올리는 중이었습니다. 언제 찾아본다 해도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가 지어내는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되는 곳이지만, 아마도 붉은 단풍이 한창인 이 즈음이 한해 중 가장 아름다울 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메타세쿼이아는 지난 번의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던 플라타너스나 아스틸베처럼 라틴어 학명입니다. 플라타너스나 아스틸베는 양버즘나무 노루오줌처럼 우리말 이름이 있지만, 메타세쿼이아는 우리말 이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어쩌는 수 없이 학명 그대로 불러야 한다는 게 다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메타세쿼이아가 처음 들어온 건 1956년입니다. 식물육종가인 현신규 선생님이 미국에서 들여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빠르게 자라는 이 나무를 방음이나 방열 효과를 위한 건축 내장재로 이용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로수로의 효용성을 생각해 더 많이 심게 되었다고 합니다.

  메타세쿼이아를 본격적으로 심어 키운 곳은 바로 이곳, 전라남도 담양군입니다. 처음 나무를 들여온 때부터 15년 쯤 지난 1972년이었습니다. 담양에서 순창을 잇는 국도 24호선, 담양군청에서 금성면 원율삼거리까지의 길가에 5년 된 메타세쿼이아 1,300그루를 심은 겁니다. 그때는 이 길을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하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만5천 가구의 4만7천 인구가 살아가는 아늑한 이곳 담양에는 등록된 자동차도 3만대 수준입니다. 메타세쿼이아를 처음 심은 50년 전이라면 오가는 길이 1차로씩인 이 길을 그리 비좁다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길 양편의 메타세쿼이아는 하늘로 솟구치며 극적인 장엄함을 이루었습니다.

  메타세쿼이아를 많은 곳에서 가로수로 심어 키우지만, 자동차 도로를 넓게 내는 요즘의 상황에서는 담양군의 이 좁은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장엄미를 흉내낼 수 없을 겁니다. 담양군의 이 길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도 메타세쿼이아아의 장엄함은 이만큼 크지 않았을 겁니다. 담양군의 학동마을부터 순창과의 경계 지점인 달맞이공원까지 총 8.5㎞나 이어지며 조성한 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의 장엄함은 다시 흉내내기 어려운 장관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은 아예 그 길 가운데 학동마을에서 시작하는 1.8㎞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하고, ‘메타세쿼이아 랜드’라는 별칭으로 부릅니다.

  사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가치가 처음부터 인정된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담양 주민들이야 놀랍도록 빠르게 자라는 메타세쿼이아가 보여주는 신비로운 자태에 감탄하며 바라보기야 했겠지요. 그렇다고 메타세쿼이아와 그 가로수 길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널리 알려진 건 나무들이 베어질 위기에 처하면서였습니다. 돌아보면 위기를 맞이하며 오히려 우뚝 서게 된 경우입니다. 그게 23년 전인 2000년의 일입니다. 담양 순창간 국도의 4차로 확장 공사가 계획되면서, 2차로 양편의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베어내야 하는 상황이 됐지요.

  그때 담양군 주민들이 나무 지키기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벌인 ‘메타세쿼이아 살리기 운동’에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대관절 메타세쿼이아라는 생경한 이름의 나무는 어떤 나무인지, 또 대체 어떤 풍광이기에 애써 지키려 하는지에 대해 궁금했던 겁니다. 그게 바로 메타세쿼이아의 장엄한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진 계기였습니다. 난관 끝에 도로 건설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나무는 지켜졌습니다. 이어 산림청과 생명의 숲에서는 이 길을 ‘아름다운 거리숲’으로 지정했고, 도로 건설을 주관하는 건설교통부에서는 ‘전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선정했으며, 한국도로교통협회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기에 이르렀습니다.

  전국적으로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담양의 메타세쿼이아를 보기 위해 담양군을 찾아왔고, 곧게 우뚝 선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선 가로수 길의 장관을 직접 보고는 그 아름다움을 잊지 못했습니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퉈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는 결과로 이어진 건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마침내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숲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모든 메타세쿼이아의 상징이 된 겁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메타세쿼이아 길’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담양군의 메타세쿼이아는 사람이 들여와 사람이 키우고 사람이 지켜낸 결과입니다. 시작도 마무리도 결국은 사람의 몫이었던 겁니다.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도 사람이지만, 자연을 위대하게 가꾸는 것 역시 분명 사람입니다. 큰 나무 그늘을 천천히 걸으며,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가오는 12월의 《나무강좌》에서는 우리 함께 우리 곁의 큰 나무들을 살펴보며,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좋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11월 27일 월요일 아침에 1,207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