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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마로니에, 가시칠엽수, 서양칠엽수, 일본칠엽수 …… 그리고 칠엽수과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1. 20. 14:40

[나무편지] 마로니에, 가시칠엽수, 서양칠엽수, 일본칠엽수 …… 그리고 칠엽수과자

  ★ 1,206번째 《나무편지》 ★

  옛날에 많이 부르던 노래에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철따라 피고 지는 ‘마로니에’ 이야기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이 나무의 통일된 우리 이름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처음 이 땅에 들어올 때의 그곳에서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게 뭐 별다를 일 아니었지요. 게다가 ‘마로니에’라는 외국어 이름에서 배어나오는 이국정서가 묘하게 다가와 더 근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마로니에 공원’이라는 이름은 그 노래가 아니라도 많이 불리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말 이름이 버젓이 있는 경우에도 외국어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나무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것보다 남의 것을 더 아름답게 여기는 이상한 이국정서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선 떠오르는 나무가 ‘플라타너스’입니다. 플라타너스는 양버즘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의 나무에 붙여진 학명입니다. 그러니까 플라타너스는 영어도 아닌 이제 사어(死語)가 된 라틴어입니다. 꽃꽂이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풀꽃 가운데 ‘아스틸베’라고 불리는 풀꽃이 있습니다. 봄에 피는 이 아름다운 꽃은 우리나라의 전국에서 잘 자라는 풀꽃으로 오래 전부터 ‘노루오줌’이라고 불러온 풀꽃입니다. ‘아스틸베’는 플라타너스와 마찬가지로 노루오줌의 학명인 라틴어입니다. 아스틸베 이야기는 지난 칠월의 《나무편지》에서도 ‘고창 선운사 송악’을 이야기하면서 덧붙 여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나무는 ‘칠엽수’입니다. “그러면 이게 바로 ‘마로니에’ 아니냐”고 말씀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말 이름을 조금 촌스럽게 여기고, 외국 이름으로 부를 경우에 더 아름답게 여겨온 때문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 ‘마로니에’는 앞의 양버즘나무나 노루오줌처럼 라틴어로 이루어진 학명도 아닙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 나무를 부르는 그들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부르는 이름, marronnier 입니다. 사실 프랑스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로니에’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사실 프랑스어의 R 발음은 묘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말로 정확히 옮길 수 없는 발음입니다. 영어라면 ‘리을’로 표기하면 얼추 비슷하지만 프랑스어의 경우 ‘리을’보다는 ‘히읗’에 더 가깝게 발음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marronnier를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마로니에’라고 해도 되겠지만,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마호니에’라고 해야 더 원 발음에 가깝지 않을까요. 물론 오랫동안 ‘마로니에’라고 적어왔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마로니에’라고 표기하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발음의 문제뿐 아니라, 뜻에서도 문제는 이어집니다. 프랑스어 marronnier는 칠엽수가 아니라 일반적인 ‘밤나무’를 가리킵니다. 우리나라의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봐도 그 뜻을 ‘밤나무’로 표기했을 뿐, ‘칠엽수’로 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엄밀히 따지면 ‘마로니에’로 발음되는 나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밖에 없는 나무인 겁니다. ‘마호니에’도 아니고, ‘칠엽수’도 아닌 ‘마로니에’는 대관절 어떤 나무일까요.

  칠엽수와 마로니에 이야기를 할 때에는 조금 자세히 살펴야 할 게 있습니다. 칠엽수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에도 여러 종류가 있거든요.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찾아보니, ‘노랑칠엽수’ ‘병솔칠엽수’ ‘부시칠엽수’ ‘붉은칠엽수’ ‘이색칠엽수’ 등 모두 19종류가 나오네요. 그 가운데 특히 아무 수식 없이 그냥 ‘칠엽수’로 부르는 나무와 ‘가시칠엽수’라고 부르는 나무가 흔히 볼 수 있는 칠엽수 종류이고, 이 둘은 서로 구별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마로니에’라고 부르는 나무는 ‘가시칠엽수’입니다. 그밖의 다른 칠엽수를 ‘마로니에’라고 부르는 건 옳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마로니에’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 ‘가시칠엽수’로 표시된 나무입니다. 가시칠엽수는 유럽 지방에 자생하는 나무인데, 이 나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프랑스에서 많이 심어 키우면서부터입니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사크레쾨르 대성당 Basilique du Sacre-Cœur de Montmartre이 있는 몽마르트 언덕을 비롯해 샹젤리제 거리에 가로수로 심어 키우면서 사람들에게 ‘마로니에 공원’ 혹은 ‘마로니에 거리’로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다른 이름보다는 프랑스 사람들이 부르던 프랑스어 이름인 ‘마로니에’를 이용해 붙인 언덕과 거리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프랑스에서 가로수로 심어 키우며 널리 알려진 ‘마로니에’는 칠엽수의 여러 종류 가운데에 ‘가시칠엽수’를 말하는 겁니다. 이를 한때 우리는 서양에서 자라는 칠엽수라 해서 ‘서양칠엽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가시칠엽수’라는 이름은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정리한 이름입니다. 이 나무의 이름에 ‘가시’를 표기한 건, 나무의 열매 껍질에 잔 가시가 촘촘히 돋아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다른 칠엽수 종류와 가장 구별하기 좋은 특징이 바로 그 가시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서양칠엽수와 가시칠엽수는 같은 나무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고, 이 가운데에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가시칠엽수’를 기본으로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열매의 껍질에 가시가 돋아나지 않는 칠엽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바로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칠엽수 종류가 그런 나무입니다. 이 종류는 앞의 가시칠엽수와 다를 게 없는 나무인데 열매 껍질이 밋밋하고 가시가 없습니다. 이 나무는 서양이 아니라 일본이 고향인 나무입니다. 그래서 한때 이 나무는 ‘일본칠엽수’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우리 나무 이름을 정리하면서 그냥 ‘칠엽수’로 표기하는 걸 원칙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면 서양칠엽수는 가시칠엽수이고, 일본칠엽수는 칠엽수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나무편지》가 너무 길어져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텐데요.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칠엽수 종류의 나무는 ‘가시칠엽수’였습니다. 단 한 그루가 1913년에 고종의 환갑 기념으로 네덜란드 외교관이 선물했다는 나무입니다. 고종의 환갑은 1912년인데, 나무를 선물한 건 1913년으로 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덕수궁에 남아있습니다. 이 나무는 네덜란드 지역에서 가져온 서양칠엽수, 즉 ‘가시칠엽수’입니다. 그러나 그 뒤 본격적으로 칠엽수 종류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건 일제 강점기 초기에 일본인들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외교관이 그랬듯이 일본인들도 자기나라에서 자라는 칠엽수 종류를 들여왔습니다. 그게 바로 일본칠엽수, 즉 칠엽수입니다.

  이야기가 장황해졌지만, 그래도 한 말씀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바로 열매의 특징입니다. 가시칠엽수의 열매에는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됩니다. 맹독은 아니어서 치명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적지않은 탈을 일으키는 독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들여온 칠엽수의 열매는 탄닌 성분을 많이 갖고 있어 떫긴 해도 탄닌을 적당히 제거하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열매를 가지고 과자도 만들고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열매의 겉껍질에 가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독성의 여부를 가름할 근거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얄궂은 것은 겉껍질을 제거하면 곡 밤 알갱이를 닮은 칠엽수 종류의 알맹이만으로는 두 열매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나무는 일본이 고향이고 일본에서 들여와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심어 키우는 칠엽수입니다. 사진의 나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칠엽수입니다.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 칠엽수는 무려 천년이나 된 나무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칠엽수이고, 세상의 모든 칠엽수 중의 원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 나무는 일본의 오래 된 문헌에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특히 1740년에 기록된 일본의 역사 관련 문헌에서는 이 나무를 이미 “오래 된 아주 큰 나무”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같은 여러 기록과 현재의 나무 상태를 바탕으로 나무의 나이를 천 년으로 짐작한 겁니다.

  《나무편지》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지난 주에 혹독하리만큼 바람이 차가웠는데, 주말 지나며 그나마 조금은 어깨를 펼 만해졌습니다. 이제 겨울입니다. 모두 겨울 바람 잘 맞이하시며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나무편지》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11월 20일 월요일 아침에 1,206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