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분류 전체보기 6103

[7] 문을 열고 폴짝 나오는 생명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7] 문을 열고 폴짝 나오는 생명정수윤 작가·번역가입력 2024.03.14. 03:00업데이트 2024.03.27. 10:23  뒤돌아보니내 발을 밟고 가는개구리로다見返[みかえ]るや我[わ]が足[あし]ふんでゆく蛙[かえる] 대지의 문이 열렸다. 봄기운을 느낀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온다. 긴긴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 한 마리가 비몽사몽 뛰어가다가 연못가에 선 인간의 발을 밟고 간다. 양말에 구두를 신었다면 개구리에게 발이 밟혀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게다를 신은 맨발의 발등이라 폴짝 뛴 탄성이 잘 느껴졌으리라. 바야흐로 경칩의 촉감. 뒤돌아보고서야 존재를 깨닫는 시선도 경쾌하다. 에도시대 시인 신토쿠(信徳, 1633~1698)의 하이쿠다.문을 열고 나오는 건 개구리(..

고통은 받아들이되, 딱 그만큼만 아파하세요

[마음을 찾는 사람들] 고통은 받아들이되, 딱 그만큼만 아파하세요정신의학과 명상 접목 앞장채정호 서울성모병원 교수김한수 기자입력 2024.08.07. 00:30 채정호 교수는 "틈 날 때마다 병원 곳곳을 걸으며 스스로 자연과 연결된 것을 느낀다"며 "사람이나 반려동식물 혹은 반려석(돌)이라도 정해서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우리는 흔히 ‘잘 산다’라면 ‘부자’를 생각하지요. 제가 만나는 환자분 중에는 부자가 많아요. 그분들은 사는 것이 힘들어서 죽고 싶어졌기에 저를 만나러 옵니다. 통장에 있는 숫자는 ‘나’가 아닙니다. ‘잘 산다’는 것은 부자가 아니라 ‘잘 있다’ ‘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잘 존재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잘 있는 것입니다. 잘 존재하기..

성인(聖人)들이 생고생하는 나라

[이응준의 포스트잇] [33] 성인(聖人)들이 생고생하는 나라이응준 시인·소설가입력 2024.08.06. 00:00   인간을 짐승과 구별시키는 결정적 세 가지가 있다면, ‘과학’과 ‘예술’과 ‘종교’일 것이다.평소 스님과 목사님 등 여러 종교 사제(司祭)들의 말씀에서 공부를 얻곤 한다.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 원효(元曉)에 대한 대중적 키워드로 ‘해골’과 ‘파계(破戒)’를 들을 수 있다. 원효는 승려 의상(義湘)과 두 차례 당나라 유학을 시도한다. 34세 때인 650년에는 고구려 국경 경비대에 잡혔다가 풀려나는 바람에 실패했고, 45세 때인 661년에는 당항성 부근 횡혈식 석실 파묘(破墓) 안에서 잠을 자다 비몽사몽 어둠 속에서 마신 달고 청량한 물이 아침에 깨어 보니 해골에 담긴 더러운 물..

농민신문 2024 시 당선작

상현달을 정독해주세요​                             박동주​​햅쌀을 대야에 가득 담아요차고 푸른 물을 넘치도록 부으면햅쌀은 물에서 부족한 잠을 채워요쌀눈까지 하얗게 불었을 때당신을 향한 마음이 몸을 풀어요​상현달처럼 차오르는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속삭여 주세요​도톰한 떡살에 소를 넣어요당신을 향한 비문은 골라내고꽃물결 이는 구절만 버무려 소를 만들어요당신 생각으로 먹먹해지는 마음이색색의 반달로 차오르도록한밤중이 되었을 때서쪽 하늘을 골똘히 보아 주세요​반죽을 작게 떼어 양 손바닥 사이에 넣고가을볕이 등을 쓰다듬듯 잔잔히 궁글려요이야기를 담은 소를 가운데 넣어가을 한나절을 빚은 색색의 상현달들떡살에 별자리가 뜨기도 해요비껴간 당신을 향해밤하늘 높이 상현달을 띄워요​이야기가 스며든 여러 빛..

[190] 추연가슬 (墜淵加膝)

[정민의 世說新語] [190] 추연가슬 (墜淵加膝)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2.12.25. 23:30  연암 박지원이 면천 군수 시절, 충청 감사가 연분(年分)의 등급을 낮게 해줄 것을 청하는 장계를 누차 올렸지만 번번이 가납되지 못했다.다급해진 감사가 면천 군수의 글솜씨를 빌려 다시 장계를 올렸다. 연암이 지은 글이 올라가자 그 즉시 윤허가 떨어졌다. 감사는 연암을 청해 각별히 대접하고 은근한 뜻을 펴보였다.하루는 감사가 연암에게 도내 수령의 고과 점수를 매기는 종이를 꺼내놓고 함께 논의할 것을 청했다. 채점을 받아야 할 당사자에게 채점을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니, 감사로서는 특별한 후의를 보이려 한 일이었다. 민망해진 연암은 갑자기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해 면천으로 돌아와 버렸다.감사는 ..

[148] 인연

[최영미의 어떤 시] [148] 인연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입력 2023.12.04. 03:00업데이트 2024.03.26. 15:04   일러스트=이철원 인연맨 처음 만났을 때우리는 모르는 사이였지그 순간을 생각하면가슴이 두근거려하마터면 그냥지나칠 뻔한 그 순간 나는 키가 작아 앞줄에 앉고너는 키다리.맨 뒷줄이 네 자리아, 우리가 어떻게단짝이 됐을까! 키다리 친구들과 둘러서서바람이 가만가만 만지는 포플러나무 가지처럼두리번거리다 나를 보고너는 싱긋 웃으며 손짓한다너를 보면 내 코는 절로 벌름벌름내 입은 벙글벙글.-황인숙(1958~) 마지막 두 행이 멋지다. “내 코는 절로 벌름벌름/내 입은 벙글벙글”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진짜 친구를 보면 말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다. 친한 사람..

공부할 시 2024.08.05

낭만시인 첫 걸음 6

낭만시인 첫 걸음 6 ■ 현대적 삶의 증언 모던타임즈       최서림 왼쪽 눈은 인조백합이 만개해 있다.오른쪽 눈은 독거미가 진을 치고 있다.전쟁 같은 평화 속에서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자들,영감 고리오의 콧날을 가졌다.노파 일리나의 갈고리 손을 가졌다.에프 원 경주대회 같은 세상 속에서생의 브레이크가 파열된지도 모르고,어디로 굴러떨어지는지도 모르고굴러가는 자들의 입이 점점뭉크빛 공포로 벌어지고 있다.  - 시집 『가벼워진다는 것』 (현대시학 기획시선 16, 2021)■ 해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층적으로 오버랩되어 나타난다. 유기적 일체성을 상실한 ‘인조백합을 가진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 인간사회에서 낙오된 발자크 소설에서의 ‘고리오 영감’도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노파 일리나’도..

마타리

[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1m 이상 큰 키에 황금색 꽃과 꽃대… 무더운 날엔 좋지 않은 냄새 풍겨요마타리김민철 기자입력 2024.08.05. 00:30   마타리에 꽃이 핀 모습. /김민철 기자벌써 마타리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숲이나 풀밭 등 양지바른 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꽃은 황금색 마타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마타리는 꽃도 꽃대도 황금색이고 키가 1m 이상으로 커서 시선을 확 끄는 식물입니다. 숲에 가지 않더라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변 언덕 등에서 큰 키에 노란색 물결이 하늘거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마타리 무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마타릿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서식 환경이 까다롭지 않아 전국의 산과 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여름부터 시작해 늦게는 10월까지도 볼 ..

초인 기다린 항일 저항시인, 17차례 체포돼 감옥서 순국

초인 기다린 항일 저항시인, 17차례 체포돼 감옥서 순국중앙선데이입력 2024.08.03 00:35업데이트 2024.08.05 10:18김석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물 탐구 ⑦ 이육사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모든 山脈들이바다를 戀慕해 휘달릴 때도참아 이곳을 犯하든 못하였으리라끈임없는 光陰을부지런한 季節이 픠여선 지고큰 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엇다지금 눈 나리고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千古의 뒤에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이 曠野에서 목노아 부르게 하리라저항시인 이육사. 1941년 북경으로 떠나기 전 생일에 서명을 담아 친구들과 사촌들에게 나누어준 사진이다. [사진 이육사문학관·김석동]이육사의 유작 ‘광야(曠野)’의 4연은 일제에 저항하는..

꽃 지고 다시 피고 … 열매 맺고 씨앗 맺는 한여름의 나무살이

[나무편지] 꽃 지고 다시 피고 … 열매 맺고 씨앗 맺는 한여름의 나무살이  ★ 1,244번째 《나무편지》 ★   지난 한 주 동안은 많은 분들이 휴가였던 모양입니다. 수도권 시내의 한가한 교통 사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요. 주중에는 지방의 일정이 있어서 고속도로에 올랐는데요. 고속도로는 휴가 철임을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정체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 두 시간 조금 넘는 거리의 길을 지난 목요일에는 거의 다섯 시간 걸려 갈 수 있었습니다. 한 해 중에 가장 피로가 높은 시기인 한여름의 휴가철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 주, 다음 주, 기상청 중기예보에 나오는 이달 중순까지도 찌는 듯한 무더위는 식지 않는다는 예보를 보니, 숨이 막힐 듯합니다.   숲의 나무들은 이 무더위 속에서도 제 살림살이를 잘 ..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대사전...40년 대장정 끝내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대사전...40년 대장정 끝내중앙일보입력 2024.08.02 00:23백성호 기자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구독백성호의 현문우답구독중백성호 종교전문기자장장 42년에 걸친 대장정이다. 한국 불교계의 숙원 사업이었던 ‘가산불교대사림’(총 20권)의 편찬 작업이 최근 마무리됐다. 원고량만 34만 286장이다. 지금껏 출간된 불교백과사전 중에서 세계 최대의 규모다. 모두 20권이지만 권당 두께가 상당하다. 일반 단행본 서적으로 치자면 200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서구 계몽주의식 사전 아니다대장정을 이끈 주인공은 지관(智冠, 1932~2012) 스님이다. ‘국내 최고의 학승’으로 꼽히던 그는 동국대 총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12년 전에 지관 스님은 입적했지만, 그의 유지를 이어..

붓다를 만나다 2024.08.02

202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4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머그잔- 박태인물이 되려는 순간이 있어요 얼굴을 뭉개고입술 꾹 다물고자꾸 그러면 안 돼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여요 나는물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고 싶어요창틀에 놓여있던 모과의 쪼그라든 목소리가 살금살금 걷는 듯한 아침어김없이 당신의 그림자는 식탁에 앉아 있어요뜨거운 것으로 입을 불리면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을 해요, 조금 더 따뜻한우리는 언제쯤 깨질 것 같나요? 이런 말은 슬프니까숨을 멈추고 속을 들여다보면 싱크홀 같거나 시계의 입구 같거나 울고 있는 이모티콘 같아요 두 손에 매달려 쓸데없이 계속 자라는 손톱처럼 똑똑 자르면 될 것 같은 시간을 말아 쥐고 있는 기분나는 내 손을 스스로 잘라 버..

[221] 다짜고짜 그치지 맙시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221] 다짜고짜 그치지 맙시다양해원 글지기 대표입력 2024.05.02. 23:54업데이트 2024.05.27. 14:10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같은 학교 인연으로 카톡방 네댓 군데에 들었다. 총동문회, 동기 동창회, 동호회, 소모임…. 죄송하게도 누구 돌아가셨을 때 꽤 성가시다. 부고(訃告) 한번 나면 조문(弔問)이 수십 번 이어지는데, 죽음을 애달파하는 일이 어찌 허물이랴. 정작 받을 사람은 끼지 않은 단체 대화방에 울리는 위로가 어색하다는 얘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삼가 고인의, 삼가…. 이튿날에야 그쳐 아쉬운 동어반복이 있는가 하면, 너무 잘 그쳐 안타까운 일도 있다.‘김하성은 지난 27일 경기에서 5타수 1안타를 기록한 뒤 4경기 연속 무안타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