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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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그를 따라 초록 숲으로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6] 그를 따라 초록 숲으로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입력 2023.03.31. 03:00김옥선, Kevin the Humanist, 2007 무인도에 가게 되면 뭘 가져가고 싶은지 묻는 게임이 있었다. 고등학교 수련회에서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해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섬의 생태 환경을 상상하고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꼽아보고 우선순위를 정하려 했으니 머릿속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가상의 스토리이지만 생존 게임에 과몰입한 나머지 어떻게든 조난을 피해야겠다는 엉뚱한 다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비슷한 게임을 몇 번 해보고 나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로빈슨 크루소 같은 사람 한 ..

[189] 견양저육 (汧陽猪肉)

[정민의 세설신어] [189] 견양저육 (汧陽猪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2.12.18. 23:30  견양(汧陽) 땅의 돼지고기는 각별히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 다른 데서 나는 돼지고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이었다. 소동파가 하인을 시켜 견양에서 돼지 두 마리를 사오게 했다. 하인이 돼지를 사러 떠난 동안 그는 초대장을 돌려 잔치를 예고했다. 한편 견양의 돼지를 사가지고 돌아오던 하인은 도중에 그만 술이 취하는 바람에 끌고 오던 돼지가 달아나 버렸다. 난감해진 그는 다른 곳에서 돼지 두 마리를 구해 견양에서 사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잔치는 예정대로 열렸다. 손님들은 이 특별한 맛의 통돼지 요리를 극찬했다. 이렇게 맛있는 돼지고기는 처음 먹어 본다며 역시 견양의 돼지고기는 수준이 다르다고..

[6] 베개 밑에 넣어두고 싶은 것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6] 베개 밑에 넣어두고 싶은 것 정수윤 작가·번역가입력 2024.02.29. 03:00업데이트 2024.03.22. 16:56  떡을 꿈속에고사리 고이 엮어베는 풀베개 餅[もち]を夢[ゆめ]に折結[おりむす]ぶしだの草枕[くさまくら] 가난한 방랑 시인은 꿈에서도 떡을 본다. 저 희고 쫀득하고 몰캉한 것을 딱 한입만 먹어보고 싶구나. 베개 밑에 떡이 있다고 상상하며 잠이 들면 꿈에서라도 떡을 먹을 수 있을 터. 옛날 에도시대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베개 밑에 금은보화가 가득 실린 보물선 그림을 넣어두고 돈 많이 벌 꿈을 꾸게 해달라 빌며 잠이 들었다는데, 풀고사리를 엮어 베개로 쓰는 청빈한 시인에게는 더도 덜도 말고 떡 한 점이 그립다. 길 위의 예술가, 바쇼(芭蕉, 1644~..

인천

140년의 공간·이야기 따라 한바퀴… 인문·역사·건축 ‘개항장 파노라마’[박경일기자의 여행]문화일보입력 2024-08-01 09:00업데이트 2024-08-01 15:55차이나타운 황제의 계단.■ 박경일기자의 여행 - 다양한 관광 콘텐츠… 등잔밑 ‘알짜 여행지’ 인천‘일본인 거류지’ 중앙동서 시작중구청 등 일제 근대건축물 즐비우리나라 첫 호텔 ‘대불호텔’도1978년 헐렸다 전시관으로 재건‘창영동 배다리’매력적 문화공간헌책방 골목 안쪽에 40년 고깃집뜻밖의 공간 발견하는 재미 쏠쏠신포시장‘진짜 노포’ 감성 만끽인천=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완결형 여행을 할 수 있는 도시, 인천여행에 관한 한 인천은 ‘완결형’이다. 거의 모든 완결된 형태의 여행지가 인천에 있다. 도시 여..

말의 행방

말의 행방 소문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벙어리의 입과귀머거리의 귀를 버리고서잘못 들으면 한 마리로 들리는무한증식의 말을 갖고 싶었다검고 긴 머리카락과길들여지지 않은 그리움으로오래 달려온 튼실한 허벅지를 가진잘못 들으면 한 마디로 들리는꽃을 가득 품은 시한폭탄이 되고 싶었다길이 없어도기어코 길이 아니어도바람이 끝내 어떻게 한 문장을 남기는지한 마디면 어떻고한 마리면 또 어떨까 천리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야생의 그 말

시는 언어의 사원이 아니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 아니다중앙일보입력 2024.08.01 00:21업데이트 2024.08.01 15:30                                                                     성민엽 문학평론가시(詩)라는 한자는 왼쪽의 언(言)과 오른쪽의 사(寺)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언’은 말(언어)이고 ‘사’는 절(사원)이니 시는 곧 말의 절, 혹은 언어의 사원을 뜻한다는 풀이가 매우 그럴듯해 보입니다. 언어의 사원이라고 하면 그것은 신성한 언어, 경건한 언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하지만 이 풀이는 오류입니다. ‘寺’라는 글자가 절·사원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은 기원 전후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의 일이고, 言+寺라는 형태의 한자 ‘詩’는 그..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  ■ 애매어의 활용 는개라는 개        배세복 사내가 창밖을 내다보니개 한 마리 벤치에 엎드려 있다젖은 몸이 어딜 쏘다니다 돌아왔는지가로등 불빛에 쉽게 들통났다서서히 고개 돌려보니곳곳에 개들이 눈에 띄었다야외 체력단련기구 위에도지친 여러 마리의 개들차가운 철제 의자에 젖어 있었다 당신이 떠난 후로 습관처럼밤은 또 개를 낳았다그것들은 흐리고 가는 울음이다가가끔은 말도 안 되게 젖기도 한다어떤 밤은 안개라는 이름으로 부옇게또 다른 밤은 번개로 울부짖다가이 밤은 그냥 조용한 는개 된다너는 개다 너는 개다 너 는개다이 정도면 키울 수 있겠다 싶어사내가 불을 끈다 천천히 이불 당긴다  - 『볼륨』 4집 (2021)  ■해설  엄밀히 말해서 애매曖昧와 모호模糊는 다른 뜻을 지닌다..

흰 눈 쌓인 한라산의 겨울 풍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

[나무편지] 흰 눈 쌓인 한라산의 겨울 풍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  ★ 1,243번째 《나무편지》 ★   난데없이 오늘의 《나무편지》를 한겨울 제주 한라산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무더운 날씨 이어지며 겨울 찬바람이 그리워서 그랬습니다. 대서 중복 다 지나고 이번 주만 넘기면 다음 주에는 입추가 들어있고, 그 다음 주에는 말복이 있습니다. 이번 주가 고비이겠지요. 아니 그리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계절의 흐름을 살피는 기준인 이십사절기가 맞아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진작에 물러갔어야 할 장마전선이 아직 우리 머리 위에 머무르며 크고 작은 비를 쏟아내는 상황이니, 이번 주 넘긴다고 날씨가 편안해지리라 기대하기가 쉽지 않네요. 갈수록 절기가 맞지 않지만, 달력 짚어보면서 마음이라도 가라앉혀..

이건희 컬렉션 품은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힘 실리나

이건희 컬렉션 품은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힘 실리나중앙선데이입력 2024.07.27 00:01근대 미술을 위한 별도 미술관이건희 컬렉션을 소장할 ‘이건희 기증관’이 지어질 서울 송현동 부지.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곳에 ‘국립근대미술관’설립을 원하고 있다. [연합뉴스]유물과 근현대미술이 섞여 있는 ‘이건희 기증관’을 세우는 대신 ‘이건희 컬렉션’의 근대미술 작품을 주축으로 ‘이건희 기증실’을 품은 ‘국립근대미술관’을 세우자는 주장은 실현될 수 있을까?지난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립 20C(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한 모임’의 세미나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해 “근대미술관의 필요성은 분명히 알고 있다”고 인사말을 했다. 2021년에 미술계 인사들이 이 모임을 만든 이후 몇 차례 열린 세미..

서용례 시집 『하늘도 가끔은 구름밥을 먹는다』: 풍경風景을 경전 經典으로 읽는 시

풍경風景을 경전 經典으로 읽는 시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들어가며   서용례 시인은 자연주의자이다. 이 말은 무조건적으로 인공人工을 반대편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공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숨결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생각하는 존재(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ce)서부터 출발한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호모 루덴스 homo ludens)를 넘어서서 도구, 이를테면 AI 와 같은 기능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그를 통해 놀이의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존재 (호모 파덴스 homo padens)로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고유한 자연의 숨결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잊지 않고 있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의 고양을 꿈꾸고 있다..

사람살이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베풀어지는 마을 중심의 나무

[나무편지] 사람살이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베풀어지는 마을 중심의 나무  ★ 1,242번째 《나무편지》 ★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우리 곁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소나무만큼 좋아하는 나무도 없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나무 못지않게 우리 민족, 특히 농경문화 시절에 민중의 문화를 지배한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종류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뭉뚱그리자면 ‘당산나무’입니다. 소나무가 우리 문화의 상징으로 지배적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우리 문화 가운데에 ‘선비문화’에 경도된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선비가 아닌 평범한 우리 민중의 문화를 상징하는 나무는 ‘당산나무’라 해야 할 겁니다. 지역마다 마을마다 당산나무로 삼는 종류가 다양해서 당산나무라고..

역사 속 저무는 태백·삼척·정선 ‘120년 탄광’… 예술로 꽃피다

수직갱도·까치발 건물… 폐광서 태어난 ‘레트로’[박경일기자의 여행]문화일보입력 2024-07-25 09:10업데이트 2024-07-25 10:18강원랜드가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자리에 조성하고 있는 탄광문화공원. 거대한 수직갱 철탑과 광업소 사무동 건물을 비롯해 탄광 시대의 유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건물 앞의 버스는 사북광업소 광부들의 통근 차량이었다.■ 박경일기자의 여행 - 역사 속 저무는 태백·삼척·정선 ‘120년 탄광’… 예술로 꽃피다장성광업소 최근 폐광… 내년엔 도계광업소도 문닫아‘광부 저항 상징’ 사북광업소, 강원랜드가 문화공간 개발중통근버스·장비·서류 ‘녹슨 유물’ 고스란히… 가슴 뭉클정암광업소 ‘삼탄아트마인’ 변신… ‘레일 바이 뮤지엄’ 명소‘철암탄광역사촌’도 가볼만… 30 ~ 40년전 ..

조의금도, 연명의료도 거부…'아침이슬'처럼 덤덤히 떠난 김민기

조의금도, 연명의료도 거부…'아침이슬'처럼 덤덤히 떠난 김민기중앙일보입력 2024.07.24 00:28업데이트 2024.07.24 06:20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생전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한 후 억지로 연명하지 않고 순리대로 떠났다. 중앙포토21일 세상을 떠난 김민기 전 학전 대표는 '뒷것'처럼 무덤덤하게 삶을 마무리했다. 조의금이나 조화를 받지 않았고 연명의료를 멀리했다. 김민기의 조카이자 학전 총무팀장 김성민씨는 22일 기자회견에서 조의금을 받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 팀장은 "학전이 폐관하면서 많은 분이 알게 모르게 저희 선생님 응원하시느라고 십시일반 도와주셨다. 충분히 가시는 노잣돈 마련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 선생님이 늘 얘기하시던 따뜻한 밥 한..

밤이 낮 같은 세상

밤이 낮 같은 세상중앙일보입력 2024.07.25 00:24업데이트 2024.07.25 01:32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일생동안 조선이라는 나라를 요순시대의 세상이 되도록 국가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꿈을 안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17세 때 아버지의 임소였던 전라도 화순에 가서 살았다. 중형 정약전과 함께 화순 인근의 동림사에서 공부할 때부터 두 형제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요순시대를 만들자는 토론을 했노라고 기록을 남겼다. 소년 시절부터 둘은 나라를 만드는 꿈을 안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례’를 모범으로 한 ‘경세유표’다산의 저서 500여 권은 따지고 보면 모두 좋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그의 정책을 논한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집중적으로 법과 제도를 개혁하여 요순시대를 구현하자는 책은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