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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위로천사 역할 할 수 있어서 감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2. 16. 17:10

“시를 통해 위로천사 역할 할 수 있어서 감사”

  • 문화일보
  • 입력 2024-11-22 11:39
  • 업데이트 2024-11-22 11:52

이해인 수녀는 “60년을 수도자로 살며 시인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심부름 천사 역할을 한 스스로가 대견스럽다”고 했다. 이해인 수녀 SNS



■ 수도원 입회 60주년 기념… 콘서트 주인공 이해인 수녀

“입회전부터 언니와 신앙 편지
환속않고 평생 수도자로 살아
거기다 글도 쓰니 스스로 대견
모두 향기 가득한 삶 살아가길”

 

이해인 수녀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언제나 그 여운이 길다. 밝은 목소리로 희망적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분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빠른 어조로 활기차게 말하는 편이다. 대화 도중 자주 웃음을 터트려 듣는 이의 가슴에 환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지난 2007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과 항암 치료 과정을 오랫동안 견뎌서 암은 치유했으나 최근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대상포진과 통풍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아파요. 치아도 문제가 있어요. 이런 아픔은 살아 있기 때문에 겪는 것이니 기꺼이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요. 치과 의사가 저에게 지독한 통증을 어떻게 참냐고 하기에 고통을 즐기는 사람인가 봐요, 라고 했어요(웃음).”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 거주하는 그는 이달 말 서울에 올라온다. 한국가곡방송이 여는 ‘이해인 수녀 가을편지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오는 30일 영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그의 수도 생활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를 갓 졸업한 1964년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했다. 앞서 갈멜봉쇄수녀원에 들어간 13세 위의 언니와 신앙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수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문사가 많았던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수녀회에 들어간 후에도 매일 밤늦은 시간까지 시를 썼고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냈다. 사람들의 마음을 영성으로 위무해주는 그의 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동시에 매스컴을 통해 전해진 그의 단아한 외모도 인기를 끌었다. 수녀인 그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고, 어떤 화가는 그의 얼굴을 모티브로 모나리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964년 수도회 입회 직후의 이해인 수녀. 오른쪽 사진은 그가 1994년 인도에서 마더 테레사(오른쪽) 수녀를 만났을 때. ⓒ푸르메재단



“지금은 왕할머니가 됐지만, 저의 젊은 날 모습은 객관적으로 봐도 곱더라고요(웃음). 이제 노을빛 영성으로 사는 원로 수도자이지요. 환속을 하지 않고 60년을 수도자로 살아온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수도 생활 자체만 해도 어려운데 꾸준히 글을 써 온 것에 감사합니다. 첫 시집 제목처럼 민들레의 영토를 이룬 것이지요. 문학성 여부를 떠나서 시를 통해 위로 천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수도자로 살며 시인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심부름 천사 역할을 했구나, 그런 감회가 있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연가곡집 ‘편지’의 수록곡 18곡을 들려준다. 그의 시에 작곡가 박경규가 곡을 붙인 것들이다. 소프라노 강혜정, 바리톤 송기창·김성길이 노래한다. 피아니스트 이성하가 반주하고, 방송인 안현모가 진행을 맡는다. 콘서트 중간에 그가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인사하고 문답을 하는 시간도 있다.

그는 지난 6월 수녀원 입회 60주년 단상집을 펴낸 바 있다. 그 제목이 ‘소중한 보물들’이다.

“종교에 관계 없이 저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쁘게 품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순간이 다 보물이 됩니다. 그렇게 살다가 떠나는 것이지요(웃음).”

그는 수녀원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천사를 만나듯 잘 해주려 애쓴다고 했다. 자신의 몸이 힘들긴 하지만, 방문객들이 기쁨의 날개를 달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좋아서다. “글만 아름답게 쓰면 뭐하나요, 삶의 향기가 있어야지요.”

그는 전쟁과 갈등에 시달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늘 기도한다. “용서가 안 되어도 죽을 힘을 다해 용서하는 마음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거예요.”

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