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8] 무덤가 마을에 살고 있어요
곁에서 파리
쫓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가
寝(ね)すがたの蠅追(はえお)ふもけふがかぎり哉(かな)
잇사(一茶·1763~1828)는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오늘인가, 내일인가, 이 세상과 이별할 날을 겸허히 기다리는 아버지 곁에서 손으로 휘휘 파리를 쫓으며 이 시를 썼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가져와도 먹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보고 들을 기운이 없는 병든 아버지에게 자식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는 파리를 쫓는 일뿐. 그조차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아버지 임종 일기’에 낱낱이 적혀 있다. 한 달여간 아버지를 간병하며 기록한 작별 일기다. 그 마지막 장에 이 하이쿠를 적고 난 이튿날, 아버지는 산 자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세계로 영영 떠나갔다.
그런데 일본인은 죽은 자를 어디에 모실까. 우리는 보통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공동묘지나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는데, 그들은 의외로 도심 한가운데에 무덤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가족묘를 쓰는데, 형태는 돌로 된 비석 아래 화장한 유해를 수납하는 석재 공간을 만들어 장례가 날 때마다 유골함을 넣고 닫는다. 이런 묘지가 지하철역 근처나 공원 인근에 평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산 자의 집과 죽은 자의 집이 마주 보고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삶과 죽음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아가는 풍경이 외국인인 내게는 무척 진기하게 다가왔다.
도쿄에서도 가장 큰 무덤가 마을인 야나카에서 나는 3년을 살았다. 굳이 찾아간 건 아니고 이사를 하고 보니 집 근처가 거대한 묘원이라는 걸 알았다. 우에노 공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순환선 야마노테센 닛포리역에 내려서 2분 거리에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펼쳐진 묘지가 있다.
나는 학교 가는 길에 이 무덤가를 걸어서 지하철을 타러 가곤 했다. 수천 수만의 묘비가 아름드리 벚나무 사이로 고요히 서 있고 주변에 카페, 빵집, 식당, 여관이 가정집과 함께 늘어서 있었다. 묘원 내에는 아이와 산책 나온 가족이며 강아지를 데리고 걷는 사람들, 벤치에 걸터앉아 쉬어 가는 노인이 밤낮으로 보였다. 무덤가 마을에 살면서 느낀 건 의외로 죽음이 외롭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내게도 파리와 모기를 쫓을 힘마저 사라졌을 때, 그저 덤덤히 매일 산책을 나서는 기분으로 죽은 자의 집으로 걸어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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