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양해원의 말글 탐험 41

문장의 다양성 죽이는 '것'

[양해원의 말글 탐험] 문장의 다양성 죽이는 '것'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9.29 03:09 젖먹이가 잠들면 아버지는 으레 머리맡에 앉았다. 오르로 돌아가는 머리통이 행여 너부죽해질세라 반듯이 눕히고자 함이었다. 바로 해 놓으면 돌아가고, 바로 할라치면 또 뽀드득…. 그예 짱구가 된 놈이 아장댈 무렵부터 장난감 굴리듯 하며 공것(空-)이라 놀려댔다. 말뜻으로는 '거저 얻은 물건'인데, 예전 어른들은 막내를 더러 그리 불렀다. 고것, 부엌것, 상것, 아랫것, 어린것, 요것, 저것, 젊은것, 잡(雜)것, 좀것, 촌(村)것, 행랑(行廊)것…. 귀여워서든 낮잡아서든 사람을 이를 때 이렇게 '것'을 섞어 쓴다. 홀로 쓸 때도 쓰임새가 푸지다. 헤퍼 보이는 '것' 또한 제법이어서 그렇지. '6급 별정..

'過半'을 넘으면 얼마지?

[양해원의 말글 탐험] '過半'을 넘으면 얼마지?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9.22 03:09 들썩이는 일본 탓에 우리나라 지진이 잦아졌을까. 한 해 걸러 한 번꼴로 난다는 '파괴적 지진' 얘기가 아니다. 일본 의회 개헌(改憲) 세력이 3분의 2를 넘겼다. 유권자도 두 달 만에 찬성파가 더 많아졌다. 개헌 핵심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 태평양전쟁으로 판 제 무덤을 또 파려는가. 그 야욕(野慾)에 디딤돌을 놓은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때로 가 보자. '이날 열린 참의원(총 242석) 선거에서 자민당이 118석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개표가 진행 중인 11일 0시 30분 현재 상황이다. 과반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과반(過半)은 절반이 넘는다는 뜻이니 여기서는 딱 121석이..

'수입산'이라니, '수입'이라는 나라도 있나?

[양해원의 말글 탐험] '수입산'이라니, '수입'이라는 나라도 있나?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9.08 03:03 1 명절이면 당숙(堂叔) 댁으로 심부름 다니곤 했다. 들고 간댔자 정육점에서 신문지에 둘둘 싸 주는 쇠고기 두어 근. 버스를 몇 번 갈아탔다. 터덜거리는 머릿속에 이게 한우(韓牛)일까 하는 궁금증은 없었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뀌었는데 세속(世俗)이야 오죽할까. "요즘 백화점이나 마트 가보면 명절 선물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올 추석에는 수입산 선물 세트가 인기라고 하는데요.(뉴스 진행자) ~ 양은 수입산 선물 세트가 2배 많은데 값은 절반이 조금 넘습니다. 어려운 경기에 올 추석 저렴한 수입산 선물 세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기자) ~ 국산이 너무 비싸서… 수입산..

우리말에 서식하는 황소개구리

[양해원의 말글 탐험] 우리말에 서식하는 황소개구리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9.01 03:03 태백산 낙엽송(落葉松)이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밉보였나 보다. 50만 그루를 싹 베어내려는 이유는 일본산. "이미 우리 땅에 자리 잡았는데" "다른 외래종(種)은 그럼" "그러다 환경 망가질라"…. 시끄러워지자 일단 접어놓은 이 일에서 언어 생태계(生態系) 문제가 떠오른다. 요즘은 일본산 못지않게 영어 때문에 어지럽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린 11일 오후. 땡볕 아래 40여 명이 강원 고성 대진항에서 화진포를 향해 걷고 있었다. 2016 만해로드 대장정에 참여한 대학생 26명과 동국대 만해연구소 연구원들이다.' 잘 닦은 '길' 버리고 '로드'를 따라간 것부터 꺼림하다. 게다가 하필 독립운동가 한용운 ..

우리들과 여러분들

[양해원의 말글 탐험] 우리들과 여러분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8.25 03:09 유럽연합과 따로 살기로 하면서 영국뿐 아니라 세계가 들끓었다. 그 일로 삐져나온 세대(世代) 갈등만으로도 영국은 골치깨나 썩게 생겼다. '18~24세의 젊은 유권자는 75%가 EU 잔류를 택했지만, 65세 이상은 61%가 탈퇴를 지지했다. 젊은 층들은 SNS에 "기차에서 어른을 봐도 절대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있다"는 글을 올리는 등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젊은 세대들은 부모 세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망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노인 빈곤, 청년 취업난 등으로 처지가 비슷해 보인다. 자리 양보 얘기를 보면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젊은 층이 오히려 못하지 싶다. 그런데 ..

'6배가 늘었다'와 '6배로 늘었다'

오피니언 [양해원의 말글 탐험] '6배가 늘었다'와 '6배로 늘었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8.18 03:03 "언론은 거짓말쟁이." 진실을 목숨처럼 여기는데 웬 애꿎은 소리냐고? 그럼 한번 해보자, 기사 속 숨은 거짓말 찾기.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학생 300명 이하 소규모 학교는 총 4212곳(초 2645곳, 중 1166곳, 고 401곳)으로 집계됐다. 2001년(700곳)보다 6배나 늘어났다. 저출산 영향으로 학생 수가 가파르게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교육부에서 내놓은 자료를 확인했다. 2645+1166+401=4212. 학교 수 자체도, 계산도 틀림없다. 그런데 2001년 700곳은 학생 300명이 아니라 60명 이하인 학교였다. 소규모 학교 기준이 시기나 지역마다 달라, 설명..

妊婦와 産婦는 엄연히 다른데…

[양해원의 말글 탐험] 妊婦와 産婦는 엄연히 다른데…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8.11 03:09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골골샅샅 아기 울음 그득했던 1960년대 출산 억제 표어(標語)다. 그래도 넘쳤던지 70년대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던 80년대를 지나 세기가 바뀌자 억제가 장려로 바뀌었다. '아기들의 웃음소리 대한민국 희망소리.' 마침내 올해 신생아(新生兒)가 6·25 이후 가장 적으리라고 통계청이 최근 발표했다. 최악인 2005년이 43만5031명이었는데, 자칫 41만명대로 주저앉을 판이란다. 나라 앞날 걱정할 만큼 귀해진 새 생명, 그 엄마도 귀하게 모셔야 할 시대다. 전철 안 문구가 그걸 말한다..

독자를 끝없이 홀리는 단어 '입장'

[양해원의 말글 탐험] 독자를 끝없이 홀리는 단어 '입장'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8.04 03:10 성질이 순한 사람을 흔히 양(羊)이라 한다. 호랑이는 거꾸로 몹시 사납고 무서운 사람을 빗대는 말이다. 미련하거나 행동이 굼뜨면 곰, 능청스러우면 구렁이다. 간사하거나 꾀 많기로는 여우가 으뜸이다. 말에도 이런 '여우'가 있다. '입장(立場): 당면하고 있는 상황. 처지(處地)로 순화.' 하지만 이 정도 사전 풀이로 곱게 잡힐 여우가 아니다. 신문에 나타난 여러 모습을 살펴보자. '딸의 불륜에 충격을 받았을 김민희 어머니 입장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전 풀이대로 '처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입장'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표정을 바꿨다. '홍 감독과 김민희는… 불륜설에 대해서는 ..

'회담하다'와 '회담을 가지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회담하다'와 '회담을 가지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7.28 03:02 여럿이 먹는 음식 너무 열심히 자기 입으로 가져가면 밉살스럽다. 공짜랍시고 뭐든 잔뜩 가져가도 그렇다. 보통 사람의 이깟 욕심도 눈총받는데, 국민을 상대로 칼집 휘두르던 사람들이 그랬다면 오죽할까. 그런 두 사람이 요즘 지나치게 가지려 한 일로 호되게 유명세(有名稅)를 치른다. 정작 한 사람은 마땅히 가졌어야 할 의심을 갖지 않아 의심받고 있다. '검사장 승진 대상자가 특정 기업의 비상장 주식을 88억원어치나 갖고 있다면 (중략) 그 규모가 워낙 큰 만큼 누가 봐도 자금 출처 등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의심을 꼭 '가져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공직자의 의무, 도덕성 같은..

전쟁을 닮아가는 언어

[양해원의 말글 탐험] 전쟁을 닮아가는 언어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7.21 03:09 6시간 천하로 끝난 터키 쿠데타는 10~20년에 한 번씩 일어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잠잠해진 지 40년이 다 됐다. 대체로 민주화가 덜 된 나라 일인 걸 보면 대한민국이 터키보다 한결 낫지 싶다. 한데, 좀 비틀어 보자면 그렇지만도 않다. '유승민 복당… "쿠데타" 반발한 親朴.'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 간판을 얻지 못한 7명이 당을 뛰쳐나갔다. 그들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허용한 '비대위' 결정에 당내에서 일어난 반발을 신문이 그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한 친박 핵심 관계자는 (중략) "이건 쿠데타와 다름없다"'고 했다. 간신히 당권(黨權)을 다시 쥐었다고 여긴 쪽에서는 위험천만하다고 여겼겠다...

3個國, 4個社?… 이러다 사람도 한 개 두 개 센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3個國, 4個社?… 이러다 사람도 한 개 두 개 센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7.14 03:08 껌으로 크기 시작한 어느 대기업집단이 바로 그 신세가 됐다. 국내에 거느린 회사만 열 손가락을 아홉 번 넘게 꼽아야 한다는데, 그 위세와는 딴판으로 남우세스러운 속살을 거듭 드러냈다. 기어이 창업주 맏딸인 그룹 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됐다. 그는 '4개 계열사 사내이사와 ~ 3개사 기타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여기서 뭔가 걸리는 말, 4개 계열사, 3개사, 어색하다. 왜 그럴까. 국립국어원 사전은 예시문의 '개(個)'에 해당하는 풀이를 '낱으로 된 물건을 세는 단위'라고 했다. 물건은 '일정한 형태를 갖춘 모든 물질적 대상'이다. 하지만 기업이 물건은 아니다. 말이나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