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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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39

[235] 영어도 고생이 많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235] 영어도 고생이 많다양해원 글지기 대표입력 2024.11.22. 00:22  눈꺼풀이 이불만큼 무거워졌다. 시드는 가을, 밤이 길어진 탓인가. 오줌보가 슬슬 보채건만 두꺼운 휘장(揮帳)이 아침잠을 꼬드긴다. 해가 뜨긴 떴나? 커튼으로 스며든 빛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불 속에서 휴대전화로 해돋이 시각 알아보다 잠기운을 빼앗기고 말았다. ‘일출몰’ ‘월출몰’ 옆에 적힌 ‘시민박명(薄明)’ 때문에.‘항해박명’ ‘천문박명’은 짐작이 가는데 ‘시민박명’은 무슨 뜻이람? 해 뜨기 전이나 해가 진 뒤에도 맨눈으로 사물을 알아보고 바깥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는데…. 영어에 답이 있었다. civil twilight. ‘civil’을 곧이곧대로 ‘시민(市民)’으로 옮긴..

[223] 진심이면 다 괜찮은가

[양해원의 말글 탐험] [223] 진심이면 다 괜찮은가양해원 글지기 대표입력 2024.06.06. 23:54   별종은 별종이다. 괴팍하고 거친 언행이야 오래전부터 아는 바. 28년 만에 연임(連任)하지 못한 대통령이 또 하겠노라 나선 것도 뚝심이라 치자. 성추행 입막음 사건으로 받은 혐의 34건 모두 유죄 평결이 나올 만큼 뒤가 구리지 않은가. 그런데도 호감도가 경쟁 후보와 엇비슷이 나오는 걸 보면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 또한 만만찮은가 보다.‘일부 지지자는 유죄 평결을 내린 배심원 신상 털기를 시도하고 있다.’ 배심원일 법한 사람 이름이나 주소 따위를 퍼뜨리는 일에 ‘신상 털기’가 알맞은 표현일까. ‘털다’는 한마디로 ‘남의 재물을 빼앗거나 훔치다’라는 뜻. 한데 개인 정보는 재물(財物)이 아닌지라 ..

[222] 훌륭한 선생님이 되라? 돼라?

[양해원의 말글 탐험] [222] 훌륭한 선생님이 되라? 돼라?양해원 글지기 대표입력 2024.05.16. 23:54업데이트 2024.05.27. 14:10 모르면 간첩이라 할 문제 하나. 빈칸에 공통으로 들어갈 말은? ‘◯◯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중략)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걷겠노라는 현직 교사가 고작 19.7%라 한다. 설문 시작한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비율이라니 보통 일인가. 사실 이 노래에도 문제는 있다.‘참되거라 바르거라’가 그것. ‘거라’는 동사의 어간에 붙어 명령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다. 한데 ‘참되다’ ‘바르다’는 형용사라서 어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는 ‘참되고 바르게 살거라’ 해야겠지. 수십 년 부른 노래를 이제 ..

[221] 다짜고짜 그치지 맙시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221] 다짜고짜 그치지 맙시다양해원 글지기 대표입력 2024.05.02. 23:54업데이트 2024.05.27. 14:10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같은 학교 인연으로 카톡방 네댓 군데에 들었다. 총동문회, 동기 동창회, 동호회, 소모임…. 죄송하게도 누구 돌아가셨을 때 꽤 성가시다. 부고(訃告) 한번 나면 조문(弔問)이 수십 번 이어지는데, 죽음을 애달파하는 일이 어찌 허물이랴. 정작 받을 사람은 끼지 않은 단체 대화방에 울리는 위로가 어색하다는 얘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삼가 고인의, 삼가…. 이튿날에야 그쳐 아쉬운 동어반복이 있는가 하면, 너무 잘 그쳐 안타까운 일도 있다.‘김하성은 지난 27일 경기에서 5타수 1안타를 기록한 뒤 4경기 연속 무안타에 그쳤다..

[220] 그때그때 다른 띄어쓰기

[양해원의 말글 탐험] [220] 그때그때 다른 띄어쓰기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4.04.19. 03:00 대통령 선거 2년 만에 집권당 참패, 그것도 사상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 의회 권력 다툼은 그렇게 결판났다. 여권이 얼마나 한심하면 그 어이없는 야당 후보들도 국회의원 된단 말인가. ‘민심은 천심’이 실감 나는 한 주였다. 1년하고 두 달 만에 정식 당대표를 두 번이나 갈아치웠으니 거덜나지 않을 리가. 더 샛길로 빠지기 전에 각설(却說)하고…. ‘결판나다’ ‘거덜나다’는 붙여 쓰는데 ‘실감 나다’는 한 단어가 아니라 띄운다. 명사가 동사 ‘나다’와 만나 똑같은 꼴이건만, 무슨 근거로 이렇게 가를까. 뜻은 비슷해도 ‘결딴나다’와 ‘고장 나다’로 달라진다. ‘야단’은 ‘나다’와 합쳐지는데 ‘난리..

[212] ‘때문’은 외로울 수 없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212] ‘때문’은 외로울 수 없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4.01.12. 03:00업데이트 2024.03.25. 15:52 서울 시내 도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연합뉴스 한겨울 일요일 밤은 유독 쓸쓸하다. 가게들도 일찌거니 닫아 장막 같은 큰길. 지나는 이 없는 건널목 신호등만 외롭게 끔벅거린다. 눈 내려 얼어붙은 골목길이 반드르르한데. 대낮 같으면 미끄럼 한번 지쳐 보련만, 고양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으니 되레 머쓱하다. 게다가 자빠지기라도 해 봐. 부질없는 생각이 꿈틀대 곱다시 집에 들어갔다. 체면 덕분이었을까, 때문이었을까. ‘덕분’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이니, 무사 귀가를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 ‘때문’은 ‘어떤 ..

[211] 성탄절 불빛 속에서

[양해원의 말글 탐험] [211] 성탄절 불빛 속에서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3.12.29. 03:00 성탄절 새벽에 울린 소리는 찬송가가 아니라 화재 경보였다. 아파트 이웃들이 부리나케 피하는 와중에 젊은 아버지가 목숨 던져 딸을 살려냈다. 일곱 달 난 아기 다칠세라 포대기로 감싸 안은 채. 부모와 동생 먼저 피신시키고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런 아득한 상황이 닥치면 어찌 할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데…. 입으로는 엔간해서 하지 않는 표현을 글로 쓰고 말았다. ‘농담을 던지다, 미소를 던지다, 눈길을 던지다’처럼. 말로 하자면 어색하기도 하려니와, 판에 박은 듯 ‘던지다’를 꼭 써야 하느냐는 궁금증이 든다. ‘질문하다, 농담하다, 미소 짓다, 눈짓하다’ 해도 괜찮을 법한데..

[210] 가능하면 다냐

[양해원의 말글 탐험] [210] 가능하면 다냐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3.12.15. 03:00 올 것이 왔다. 승강기 한 달 공사. 통로 하나뿐인 아파트라 꼼짝없이 18층까지 걸어 다녀야 한다. 여덟 계단 내려가 뒤로 돌고, 또 여덟 계단 내려가 돌고. 차라리 오를 때는 헉헉대느라 어지러워할 겨를이 없다. 그래 봐야 몇 분, 남들은 마라톤도 하는데. 앙상한 종아리며 허벅지가 공짜 헬스장 삼으란다. 그래, 이참에 너희를 우람하게 키워주마. 가능할까? ‘중재 요청하면 원만한 해결이 가능하다’ ‘세금 정보를 환히 공개할 때 부패 감시가 가능하다’…. ‘불가능은 없다’를 증명하고픈지 ‘가능(可能)’이란 말 참 흔히 쓴다.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 ‘부패를 감시할 수 있다’ 하면 자연스러울 텐데. ‘..

[208] ‘필요’는 늘 필요한 말일까

[양해원의 말글 탐험] [208] ‘필요’는 늘 필요한 말일까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3.11.17. 03:00 ‘과속 운전 금지’ ‘차로 변경 금지’. 아무렴, 터널인데. ‘부당 추….’ 한눈에 담지 못한 마지막 글귀를 100여 미터 지나 확인하니 얼떨떨했다. 부당 추월 엄금. 우선 ‘부당 추월’. 터널에서는 당연히 앞지르기 금지인데? 부당 추월이라 함은 정당한 추월도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추월은 부당하다는 뜻으로 썼나. ‘추월 엄금’도 아리송했다. 금지면 금지지, 엄금(嚴禁)이라니. 과속이나 차로 변경은 봐줄 수도 있다는 얘기인지. 좋게 보면 강조지만, 따지고 보면 불필요한 말이 이뿐이랴. ‘노인들이 건강하게 자립하려면 체력 증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필요(必要)하다’가 무슨 뜻인가. ‘반..

‘自身’의 바른 용법

[양해원의 말글 탐험] ‘自身’의 바른 용법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16. 03:10 거기가 거기일 줄이야. 후배 늦장가 축하하러 간 곳은 한때 예식장의 대명사였다. 그 ‘목화’는 어디 가고, 설디선 라틴어, 그것도 합성어로 이름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오직 기시감(旣視感)이려니 할 수밖에. 이곳만 그런 게 아니니 새삼 투덜거릴 일도 못 된다. ~웨딩, ~컨벤션, ~타워, ~스퀘어, ~하우스, ~가모, ~티움, ~블레스, ~몽드, ~펠리체, 더~, 아베~ …. 어쩌다 우리말이래야 끝자락에 달라붙은 '귀족' 정도다. 이름만으로는 대체 어느 나라 예식장인지 모르겠다. 외국 영화, 특히 어릴 적 보던 배우 얼굴이며 이름처럼 현란하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현란(絢爛)이 아니다. 정신 못 차릴 만큼 ..

우리말 같지 않은 憲法 조문들

[양해원의 말글 탐험] 우리말 같지 않은 憲法 조문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09. 03:09 볼만했다.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을 어기지 않나, 사람인 국회의원 수를 반올림(사사오입·四捨五入)하지 않나.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기도 했다. 3연임도 모자라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한 시절도 있었으니. 그렇게 아홉 번을 뜯어고쳤건만, 우리 헌법이 여전히 몸에 딱 맞지는 않는 모양이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27조 ①항이다. 헌법 전체에 이 ‘에 의하여’만 66번 나온다. ‘에 의한’ 10번 ‘에 의하지’ 6번 ‘에 의한다’ 1번…. ‘~에 의하다’ 구문(構文)이 합쳐서 83번이다. 영어와 일본어 영향이라 그런지 남의 옷..

改憲한다면 문장도 손봐야

[양해원의 말글 탐험] 改憲한다면 문장도 손봐야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02. 03:09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중략)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이다. 341자 163단어를 한 문장으로 엮었다. 200자 원고지 2장이 넘으니, 다 옮기면 이 난(欄)의 근 40%를 채운다. 안 그래도 말 많은 헌법이 서두부터 참 길다. 걸리는 게 이뿐이면 좋겠는데…. 헌법 전문(全文)은 1만4286자. 여기에 관형격조사 '의'만 429번 나온다. 전체 어절(語節)이 4401개이니, 띄어쓰기 열 번에 한 번꼴이다. 대통령제답게 87번 나오는 '대..

설은 그냥 설일 뿐, 舊正이라니…

[양해원의 말글 탐험] 설은 그냥 설일 뿐, 舊正이라니…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1.26. 03:02 공휴일 아닌 설이 이상했다. 구정(舊正)이라 부르는 것도 영…. 모처럼 친척 집 오가며 명절(名節) 음식 실컷 맛보기가 마음 같지 않았다. 웬만해선 뵙기 어려운 세종대왕이 그래서 더 반가웠다. 신정(新正)처럼 사흘 쉬면 그 만원짜리 세뱃돈 얼마쯤 늘어나려나. 어린 마음은 얄팍했다. 겨울방학이 끝났는데 설이 오면 심통마저 났다. 학교 가야 했으니까.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던가. 이 신정·구정이 일제(日帝)의 간악(奸惡)한 노림이었음을. '식민지 조선의 얼이 담긴 전통을 내버려둘 수 없다. 설은 그냥 구정이라 불러라. 대신 우리처럼 양력 1월 1일을 신정 명절로 쇠라.' 되찾은 나라에서도 우리는..

‘우연찮게’라 써놓고 ‘우연히’로 읽어라?

[양해원의 말글 탐험] ‘우연찮게’라 써놓고 ‘우연히’로 읽어라?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1.12. 03:03 “아유 이 사람, 얼마나 마셨는지 문을 못 여는 거 있지? 내가 아주 그냥. … 우리 아들은 지금 ○○○○ 다니잖아. 딸내미는 ○○대 경제학과랑 ○○대 경영학과 냈어.” 쉴 틈 없는 옆자리 두 승객의 대화. 온 식구 나이쯤은 저절로 알게 생겼다. 유난히 한 분 말씀이 끝도 없다. 목소리 크기도 전철 소음(騷音)에 댈 바 아니다. 이분만 좀 조용히 해주면 좋으련만. 그러거나 말거나 남들은 무덤덤해 보인다. 나 혼자만 귀 따가운 건가. 하필 그 자리에 앉은 내가 잘못이지. 어수선하던 머릿속에 전류처럼 한마디가 흐른다. "어제 시내 나갔다가 우연찮게 ○○이를 만난 거야 글쎄." 직업의식이..

‘~위하여’ 天下에서 신음하는 語尾들

[양해원의 말글 탐험] ‘~위하여’ 天下에서 신음하는 語尾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1.05. 03:09 나가자, 우아미, 너나잘해…. 흔히들 외친다는 새해맞이 구호다. ‘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너와 나의 잘나가는 한 해를 위하여’. 이 위하여, 꽤 묵은 말인데 아직은 정정(亭亭)해 보인다. 오죽하면 그 이름으로 숙취(宿醉) 해소제까지 있을까. 무언가를, 누군가를 위함은 좋은 일이다. 다만 불문곡직(不問曲直) 위할 때는 또 얼마나 위험한가. 지난가을부터 실컷 겪는 일이다. 그 통에 ‘위하여’를 빗댄 ‘위하야’도 새삼 기세를 탔다 하니…. ‘함 선생은 우리나라 마라톤 미래를 위해 어렵게 쓴소리를 꺼냈다.’ ‘측천무후는 인재를 몹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