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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전쟁을 닮아가는 언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0. 11. 12:46

[양해원의 말글 탐험] 전쟁을 닮아가는 언어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7.21 03:09

 
 
 
 

6시간 천하로 끝난 터키 쿠데타는 10~20년에 한 번씩 일어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잠잠해진 지 40년이 다 됐다. 대체로 민주화가 덜 된 나라 일인 걸 보면 대한민국이 터키보다 한결 낫지 싶다. 한데, 좀 비틀어 보자면 그렇지만도 않다.

'유승민 복당… "쿠데타" 반발한 親朴.'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 간판을 얻지 못한 7명이 당을 뛰쳐나갔다. 그들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허용한 '비대위' 결정에 당내에서 일어난 반발을 신문이 그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한 친박 핵심 관계자는 (중략) "이건 쿠데타와 다름없다"'고 했다. 간신히 당권(黨權)을 다시 쥐었다고 여긴 쪽에서는 위험천만하다고 여겼겠다. 그러니 무법(無法)하다느니, 탈법(脫法)적이라느니 하는 말로 성에 찰 리가. 가뜩이나 신문 안 읽는 세태인지라, 이런 강렬한 제목 마다할 언론사 또한 얼마나 있겠나.

종전(終戰)이 아니라 정전(停戰) 중인 나라답다고 해야 할까. 우리 대중 매체의 말과 글은 늘 험악하고 전투적이다. 쿠데타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전쟁(戰爭)'놀이도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다.

'국내 침대 시장에 전운(戰雲)이 짙어지고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기사 제목은 '시장 兩强구도 흔드는 잠자리 전쟁.' 가볍게 한 발 더 나갔다. 그래서 무슨 얘기인지 알기 쉬운 건 사실이다. 다만 늘 보는 말이라 특별한 느낌은 없다. 아니, 전쟁이라는데 느낌이 없어 섬뜩한 일인지 모른다.

전쟁보다 약한 '실전(實戰)'은 어떤가. '이름보다 실전 경험 중요.' 뭐든지 의사가 더 나으리라 여긴 환자가 피 뽑기를 부탁했다. 할 수 없이 의사가 간호사 대신 주삿바늘을 꽂았다가 혼쭐난 사연을 쓴 칼럼 제목이다. 정작 글에는 '실전'이란 말은 없다. '전투'가 몸에 배서 의료 행위도 전투적으로 표현하려 했을까.

총싸움할 때나 쓰는 줄 알았던 탄알은 산업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구조조정 실탄, 韓銀이 10兆 정부가 2兆 댄다.' 야위어가는 조선·해운업 자금 얘기다.

길이 거칠면 몸이 고달파지고, 말이 거칠면 마음이 고달파진다. 돌아오는 수요일이 '6·25 정전 협정' 63주년, 이제 전쟁은 어지간히 했으면…. 하기는 가수 임재범이 그랬다, '전쟁 같은 사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