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을 추억함 옛사랑을 추억함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나 꽃 피고 바람 불고 속절없이 죄다 헐벗은 채로 길가에 서 있었던 때가 있었나 이제는 육탈하여 뼈 조각 몇 개 남았을 뿐인데 얇아진 가슴에 돋아오르는 밟을수록 고개 밀어 올리는 못의 숙명을 닮은 옛사랑이여 나는 아직 비어 있는 새장을 치우지 않은 채..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1.04
폭죽 폭죽 물 같은 사람과 불 같은 사람이 만나서 물 같은 사람은 자신이 불이라 여기고 불 같은 사람은 자신이 물이라 생각하면서 결국은 물과 불이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어느 평생이 필요할까 물이 불이 되려면 흐름을 멈추어야 하고 불이 물이 되려면 눈물을 배워야 할까 육신을 바꿔 입어도 아..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1.03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 석 제 황만근이 없어졌다. 새벽에 혼자 경운기를 타고 집을 나간 황만근은 늘 들일을 나가면 돌아오는 시각인 저물녘에 돌아오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취하더라도 열두시가 될락말락한 한밤이면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평생 단 하루 외박한 뒤 돌아왔던 그 시각, ..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09.01.03
조롱 밖의 새 조롱 밖의 새 간밤의 두통은 문을 두드리는 부리로 쪼아대는 듯한 그대의 절규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데 밖에서 열 수 밖에 없는 문고리는 팔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량의 물과 한 웅큼도 안되는 양식과 차양막 사이로 간간히 들어오는 햇빛 그대는 수인처럼 내 속에서 울었다 그 때마다 전설이 송..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1.03
매듭 매듭 박경숙 나는 마침내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한 여자의 죽음에 대해서...... 아니 그 여자의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 쓰려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장례식은 바로 어제 부슬거리던 가을비 속에서 치러졌다. 퇴색한 잔디 위에서 젖은 발을 뭉그적거리고 있던 몇 되지 않던..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09.01.01
때로는 시간도 멈추어 선다 때로는 시간도 멈추어 선다 낙엽처럼 몇 장의 사진이 책상 위를 굴러다닌다. 어느 老 시인은 자신의 늙음을 보기싫어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하더니만, 나는 추억하기 싫어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을 찍은 날짜는 기억에 없지만, 그 장소는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공주 공산성, 송산.. 길 따라바람따라(여행기) 2009.01.01
고흐의 낡은, 혹은 구두 고흐의 낡은, 혹은 구두 고흐의 <구두>라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암스테르담이 생각난다. 시내 곳곳을 연결하는 운하들, 그 사이를 떠다니는 작은 유람선들, 안개 자욱한 유람선에 늙은 한 쌍의 남녀가 램프 불에 서로의 얼굴을 비추어보고 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한 사람이 웃으면 같이 웃고,.. 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2009.01.01
해돋이 해돋이 다시는 아침에 눈 뜨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간절하게 아침이 오지 않기를 기도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어도 예쁜 악마같이 해는 솟아오른다 눈을 가린다고 햇빛을 막을 수 없고 저녁과 새벽 다음에는 어김없이 아침이 온다 어느 사람은 바다에서 어느 사람은 높은 산정에서 불끈 솟구치..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9.01.01
무정한 세상 무정한 세상 권채운 보여 주시죠. 나는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서 심사위원들을 무구한 눈길로 바라본다. 내 눈길 저 편에는 궁금해서 몸살이 나는 청중이 있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갑자기 청중 속에서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지른다. 나는 미동도 않는다. 이봐요 김성택 씨, 연기를 하라니..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09.01.01
잼 잼 ․ 전 예 숙 ․ 소설가 지원은 의자에 앉자마자 컴퓨터부터 켠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판매 상담원 어플리케이션 화면이 물결무늬 춤을 추며 열린다. 지원은 화면 상단 우측에 자신의 이름과 내선번호가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깊은 숨을 내쉰다. 백여 명의 상담원들 중에서 가장 ..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09.01.01
청기와 암자 청기와 암자 김경 그믐날 밤이다. 어둠은 하늘만 분간하기 어려울 뿐, 경내는 그 어느 대낮보다 더 밝다. 요사채의 방문이 열리면서 황색 행자복 차림의 여행자(女行者)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소리 없이 배롱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줄줄이 대웅전을 향한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좁장한 계단은 금세 황..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09.01.01
한 해의 위로 - 어느 학생의 편지 안녕하세요, 교수님, 한학기동안, 교수님 강의를 열심히 들었던 환경응용화학부 05학번 김다영 입니다. 철학사상의 이해라는 과목이, 학부 마지막 학기에, 의미있는 수업을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수강정정기간에 수강신청 했던 과목인데,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여느 전공과목보다, 더 유익하고 즐거운.. 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2008.12.30
알곤퀸 파크 Algonquin Park 알곤퀸 파크 Algonquin Park 나 호 열 알곤퀸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세시간 쯤 걸리는 곳에 있는 자연공원이다. 서울 면적의 서너 배쯤 되는 넓이에 이천 오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호수와 삼 백 마리의 늑대, 이 천 마리의 검은 곰과 무스가 서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곳을 설명한다는 것.. 길 따라바람따라(여행기) 2008.12.27
시와 산문의 경계 시와 산문의 경계 우리가 글을 쓰면서 무심코 지나가는 상식적인 생각중의 하나가 시와 산문의 구별이다. 글의 길고 짧음을 구별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고, 시와 산문의 기능적 요소를 놓고 가름을 하기도 하며 다루고 있는 주제의 복합성 여부로 시와 산문을 나누기도 한다. 시의 요소가 언어의 압.. 내가 쓴 시인론·시평 2008.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