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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236] 우리는 지금 어디 해당할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2. 12. 16:14

[양해원의 말글 탐험]

[236] 우리는 지금 어디 해당할까

 

입력 2024.12.05. 23:54
 
 
 
 

“매일 배구 중계방송을 보는 편인데, 여자 배구만이 가진 아기자기함이 있어 흥미롭다.” 어느 영화배우가 여자 배구 깎아내리는 말을 했다고 비판받자 사과했단다. ‘아기자기’ 때문이라는데. 사전을 보니 ‘여러 가지가 오밀조밀(솜씨나 재간이 매우 정교하고 세밀함) 어울려 예쁜 모양’ ‘잔재미가 있고 즐거운 모양’이라나. 왜 문제인지 잘 모르겠으니 통과! 이어지는 기사에서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온라인에서는 해당 발언이 성차별적이고 여자 배구를 비하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해당(該當) 발언? ‘무엇에 관계되는 것. 어떤 범위나 조건 따위에 바로 들어맞음’이 ‘해당’이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여기서는 관계나 범위, 조건 따질 것 없이 바로 ‘그것’이니까 ‘그(이) 발언’이 마땅하지 않은가. 굳이 ‘해당’을 쓰려거든 ‘이 발언이 성차별에 해당하고’ 하면 되겠지. ‘체질량 지수 25.1이면 종전 기준으로 비만에 해당한다’ 같은 문장에나 어울리는 말이 아무 데서나 튀어나온다.

‘복지부는 해당 사건의 진상을 확인 중이라며’ ‘해당 법안은 여전히 국회 소관 위원회 심사 단계’ ‘병원에서 난동 부린 사람은 해당 병원 환자로 알려졌다’…. 모두 ‘이 사건’ ‘이 법안은’ ‘그 병원’으로 써야 옳다. ‘축구 대표팀 감독은 앞으로 해당 구단 동의 없으면’에서는 ‘소속 구단’이 들어맞겠다.

 

쓰임새에 문제없는 ‘해당’이지만 종종 안 써도 괜찮을 때가 있다. ‘점주는 중개 수수료의 9.8%에 해당하는 1960원과 배달비를 빼고’ ‘전 직장과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현장 이탈에 해당하지 않아’ ‘이런 경우 형사소송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같은 표현이 그렇다. ‘중개 수수료의 9.8%인 1960원’ ‘현장 이탈이 아니야’ ‘불법행위이므로’처럼 쓰면 매끄럽지 않을까.

안 그래도 편치 못한 나라가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대통령 탄핵 사안에 해당하는지 티격태격 아수라장일 테지. 이러다 지옥문 구경할까 두렵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