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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改憲한다면 문장도 손봐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15. 14:10

[양해원의 말글 탐험]

改憲한다면 문장도 손봐야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02. 03:09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중략)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이다. 341자 163단어를 한 문장으로 엮었다. 200자 원고지 2장이 넘으니, 다 옮기면 이 난(欄)의 근 40%를 채운다. 안 그래도 말 많은 헌법이 서두부터 참 길다. 걸리는 게 이뿐이면 좋겠는데….

 

헌법 전문(全文)은 1만4286자. 여기에 관형격조사 '의'만 429번 나온다. 전체 어절(語節)이 4401개이니, 띄어쓰기 열 번에 한 번꼴이다. 대통령제답게 87번 나오는 '대통령' 비할 바가 아니다. 다른 음절(하 405, 한 402, 에 367, 는 363, 다 354번)도 싹 제쳤다. 단지 많아서 문제라면야. 제69조를 보자.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상투적으로 관형격조사를 붙이는 일본어 투가 짙다. 엄숙하고 매끄러운 맛도 떨어진다. 우리말 토씨 '의'는 가려 쓰지 않으면 군더더기인 탓이다. 한번 다듬어 보자.

 

〈대통령은 취임할 때 다음처럼 선서한다. "나는 헌법을 지키고 나라를 보위하며 평화적 조국 통일과 국민의 자유·복리 증진 및 민족문화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 직책을 성실히 해낼 것을 국민께 엄숙히 다짐합니다."〉

여섯이던 '의'는 이렇게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일부 표현을 바꾸니 길이도 준다.

 

흠을 들추면 이뿐이랴. 제72조와 제130조는 맞춤법을 틀렸다. '국민투표에 부칠/부쳐'를 '붙일/붙여'로 쓴 것이다. 제53조 중 '법률은 (중략)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는 어법에 안 맞는다. '발생하다'가 자동사(自動詞)라, '효력이 발생한다'거나 '효력을 발생시킨다'고 써야 하니까. 그나마 이 정도에 그쳐 다행이랄 만큼 '의'는 도드라지게 걸린다.

고치느니 마느니 시끄러운 헌법. 손볼 양이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형식도 표현도 깔끔하게, 나라의 기틀답게.

#양해원의 말글 탐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