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20] 그때그때 다른 띄어쓰기
대통령 선거 2년 만에 집권당 참패, 그것도 사상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 의회 권력 다툼은 그렇게 결판났다. 여권이 얼마나 한심하면 그 어이없는 야당 후보들도 국회의원 된단 말인가. ‘민심은 천심’이 실감 나는 한 주였다. 1년하고 두 달 만에 정식 당대표를 두 번이나 갈아치웠으니 거덜나지 않을 리가. 더 샛길로 빠지기 전에 각설(却說)하고….
‘결판나다’ ‘거덜나다’는 붙여 쓰는데 ‘실감 나다’는 한 단어가 아니라 띄운다. 명사가 동사 ‘나다’와 만나 똑같은 꼴이건만, 무슨 근거로 이렇게 가를까. 뜻은 비슷해도 ‘결딴나다’와 ‘고장 나다’로 달라진다. ‘야단’은 ‘나다’와 합쳐지는데 ‘난리’는 떨어져야 한다. ‘땀나다, 진력나다’는 한 살림을 차렸지만, 비슷한 ‘눈물, 싫증’은 ‘나다’와 한 식구가 되지 못하니, 모를 일이다.
근거가 뚜렷해서 잠깐 따져보면 헷갈리지 않을 띄어쓰기도 있다. ‘똑같은 운동해도 여성이 효과 더 좋아.’ ‘운동하다’라는 동사가 있으니 이렇게 쓰는 게 옳을까? 여기서는 ‘운동’이 ‘하다’와 합친 게 아니라 ‘똑같은’이라는 관형어의 꾸밈을 받으므로 ‘운동(을) 해도’로 띄워야 한다. 형용사나 관형사 같은 관형어는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을 꾸미지 용언(동사, 형용사)은 꾸밀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일하고 욕먹는다’도 마찬가지. ‘일하고’ 자체는 한 단어인 동사니까 붙일 수 있지만, 여기서 ‘일’은 ‘좋은’이라는 관형어 뒤에 왔으므로 ‘좋은 일(을) 하고’처럼 띄어 써야 옳다. ‘첫 우승한 그해’ ‘재미난 공부하자’도 ‘첫 우승(을) 한 그해’ ‘재미난 공부(를) 하자’가 맞는다. 아니면 ‘처음으로 우승한’ ‘재미나게 공부하자’처럼 부사어+용언 형식으로 바꾸든가.
“더 낮은 자세와 더 유연한 태도로 더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 총선거로 혼쭐난 대통령이 이렇게 반성했다. 더 낮은 자세, 더 유연한 태도로 정말 바꿀 수 있을까. 잘못된 문장 구조 바꾸듯 수월하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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