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양해원의 말글 탐험

우리말 같지 않은 憲法 조문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27. 14:39

[양해원의 말글 탐험]

우리말 같지 않은 憲法 조문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09. 03:09
 
 
 

볼만했다.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을 어기지 않나, 사람인 국회의원 수를 반올림(사사오입·四捨五入)하지 않나.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기도 했다. 3연임도 모자라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한 시절도 있었으니. 그렇게 아홉 번을 뜯어고쳤건만, 우리 헌법이 여전히 몸에 딱 맞지는 않는 모양이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27조 ①항이다. 헌법 전체에 이 ‘에 의하여’만 66번 나온다. ‘에 의한’ 10번 ‘에 의하지’ 6번 ‘에 의한다’ 1번…. ‘~에 의하다’ 구문(構文)이 합쳐서 83번이다. 영어와 일본어 영향이라 그런지 남의 옷 입은 느낌이다. 판에 박힌 말투가 따분하기도 하다. 살짝 달리 쓰면 어떨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게 법률에 따라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흔히 이렇게 ‘~에 따라’로 하면 될 것을. 얼마든 다르게 할 수도 있다.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정하는 대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비밀선거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검사가 신청하여 법관이 발부한’처럼 바꿔보자. 길이는 짧아지고 뜻은 뚜렷해진다. 제106조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를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지 않는 한’으로 쓰면, 전혀 다른 듯한데 훨씬 구체적이다. 일본어를 직역(直譯)한 ‘~에 있어서’도 거북하다. 역시 우리가 오래전부터 쓰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에서 제법 사라졌나 싶었는데, 하필 헌법에 야무지게 도사려 있다. 대체로 ‘근로조건에 있어서’를 ‘근로조건에서’ 식으로 바꿀 때 자연스럽다.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위기에’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직무를 집행하며’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서→비상사태(일) 때’같이 표현할 수 있다. 헌법은 이 말고도 까끌까끌하기가 이루 헤아리기 버겁다. ‘중대한 군사상 기밀·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 급·포로·군용물에 관한 죄중’처럼 띄어쓰기도 무시하고, 쉼표 자리에 가운뎃점을 넣은 무신경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치적 의미에 무게 두느라 공들여 다듬어야 할 글임을 지나친 탓이다. 시나 소설에서만 우리말을 빚는 것은 아닐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