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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自身’의 바른 용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7. 10. 15:27

[양해원의 말글 탐험]

‘自身’의 바른 용법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16. 03:10
 
 
 

거기가 거기일 줄이야. 후배 늦장가 축하하러 간 곳은 한때 예식장의 대명사였다. 그 ‘목화’는 어디 가고, 설디선 라틴어, 그것도 합성어로 이름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오직 기시감(旣視感)이려니 할 수밖에. 이곳만 그런 게 아니니 새삼 투덜거릴 일도 못 된다.

 

~웨딩, ~컨벤션, ~타워, ~스퀘어, ~하우스, ~가모, ~티움, ~블레스, ~몽드, ~펠리체, 더~, 아베~ …. 어쩌다 우리말이래야 끝자락에 달라붙은 '귀족' 정도다. 이름만으로는 대체 어느 나라 예식장인지 모르겠다. 외국 영화, 특히 어릴 적 보던 배우 얼굴이며 이름처럼 현란하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현란(絢爛)이 아니다. 정신 못 차릴 만큼 어지러운 현란(眩亂)….

 

이렇게 티라도 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말은 엉큼하게 한글로 차려입고 제법 행세한다.

'김정은은 북한 권력층을 해임하거나 숙청하는 이른바 '공포정치'를 통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해 왔다. …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한 고위 간부와 주민 340명을 공개 총살하거나 숙청하는 반인륜 행위를 자행했다.'

 

'자신의'를 빼고 읽어보자. 그런다고 김정은 아닌 다른 누구의 권력 기반으로 읽히지 않는다. 장성택도 다른 사람의 고모부일 수 없다. 두 사람 관계가 잘 알려져서가 아니라 우리말 씀씀이가 그렇기 때문이다. 하면 이 '자신'(自身)은 왜 들어갔을까. 일반적으로 소유 주체를 꼭 드러내야 하는 영어의 영향임이 분명하다.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한 대만인'이 있다. '소개'(紹介)라는 말을 쓴다면야 '자신'을 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냥 '채식주의자라고 밝힌 대만인' 하면 '자신'도 필요 없고 간결하다. 어느 쪽이 더 우리말다울까.

 

'자신이 예상했던 질문 하나가' '자신의 35번째 생일을 맞는다' '자신의 거취를 밝힌 것은 처음' '합동 연설에서 자신의 정견을 밝혔다' …. 싹 다 필요 없는, 아니 쓰지 말아야 할 '자신'이다.

 

필요한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활에만 전념하면 되는 개인전과는 달리 단체전은 …' 같은 문장에서는 있어야 말이 된다. 다만 '자신의' 대신 그냥 '자기'(自己)라고 쓸 때 더 자연스럽다.

자신(自身)을 아껴야 우리말이 더 반짝인다. 자신(自信)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