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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일 시집 『밭 만들기』(2019): 농본주의자 農本主義者의 귀거래사 歸去來辭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7. 19. 15:00

농본주의자 農本主義者의 귀거래사 歸去來辭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1.

 

김건일 시인은 2020년 9월 작고하기 전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첫 시집『풀꽃의 연가(1984)』를 시작으로『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1987),『꿈의 대리 경작자』(2006),『 꽃의 곁에서』(2006) 와 생전 마지막 시집『밭 만들기』(2019)를 상재한 바 있다. 월간『시문학』1973년 11월호에 이원섭, 조병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시력詩歷을 비춰볼 때 다섯 권의 시집은 과작寡作이라고 보여진다.

 

오랜 기간 동안 ‘광화문 사랑방 시낭송회’를 이끌고,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한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그의 과작이 문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온 것에 연유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시인의 과작이 시적 감성의 고갈이나 작품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인의 삶 자체가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생활 그 자체를 시로 인식한 까닭에 지면을 통한 발표에 연연해 하지 않은 태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김건일 시인이 추구한 자기 정체성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이야기한다면 ‘땅’과 ‘흙’에 대한 경외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연의 무심한 정직함 – 노자 老子의 무위자연 無爲自然-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로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감히 김건일 시인을 농본주의자로 칭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은 시집『밭 만들기』를 중심으로 시인이 이뤄낸 문학적 성취를 더듬으면서 추모의 마음을 함께 전하는데 그 뜻이 있다.

 

2.

 

농본주의를 쉽게 정의내리기는 힘들다. 농업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는 원천임에도 농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기 시작한 때는 근래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토지를 소유하고, 자급자족을 넘어 농산물을 상업적 이익을 남기는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을 때 농자農者는 비로소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게 된다. 또 다른 농업의 특성을 살펴본다면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정주 定住와 결실을 위한 기다림, 자연재해를 피하고자 하는 염원을 지녀야 하는 겸손이 필요한 지난한 일이 농사 짓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김건일 시인을 농본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땅’과 ‘흙’에 대한 경외심을 행동으로 실천한 그의 삶이 부富의 창출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작詩作을 통해서 농심農心을 표현하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워도 내가 외롭고

배가 고파도 내가 고프고

눈물이 나도 내가 눈물이 난다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심는다

내가 잘 곳은

내가 짓는다

내가 입을 것을

내가 만든다

 

내가 딛고 있는 곳

나와 제일 가까운 곳

내가 태어난 곳

 

땅은 나의 애인

땅은 나의 형제

땅은 나의 어머니

 

땅은 부드러운 가슴

손을 대면 땅은 가슴을 열고

전율하며 모든 것을 벗는다

땅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면

몸에는 따뜻한 온기가 돌고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벌떡 일어선다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하여

땅을 힘차게 끌어안고

땅에다 나의 씨를

묻는다

 

-「땅 · 2」 전문

 

 

시 「땅 · 2」는 농본주의자의 진심을 드러낸 김건일 시인의 대표작으로 여길만한하다. 땅의 소유는 부富를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값어치 있는 땅을 가지기 위해서 노심초사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땅의 가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만물이 한 뿌리에서 나온 만물동근 萬物同根의 원천이라는데에 있다. 시「땅 · 2」는 이러한 땅의 궁극적 의미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진정한 농본주의자는 피상적 자연 예찬이나 숭배가 아닌 뿌린 대로 결실을 맺고자 하는 노력자勞力者의 자세를 지닌 사람이다. 시인의 ‘땅’에 대한 인식은 ‘땅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면 / 몸에는 따뜻한 온기가 돌고 /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 벌떡 일어’ 서게 하는 삶의 에너지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을 떠나 다시 귀향을 결심한다. 땅을 밑천으로 삼아 ‘ 대학을 마친 후 / 농촌문학을 한다고 / 창원군 동면 본포리에 가서 마을 이장을 하면서’( 「밭 만들기」 2연)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지금도 해소되지 않는 것이 농업을 통해 충분한 생활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상할 수 없는 자연 재해로부터 빚어지는 손실과 공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득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 공부를 위해 / 고향을 떠나서 서울로 왔다’(「이웃들」 부분 ) 고 술회한다. 그럼에도 그는 ‘시골의 풍경을 좋아해서 / 산과 개울과 밭이 있는 / 넓고 넓은 땅을 구하고 싶’( 「꿈 만들기」 1연 부분)은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시인은 농본農本의 이념과는 배치될 수도 있는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주식을 산다. ‘주식 값이 오르면 / 내 꿈도 오른’ (「꿈만들기」 3연 참조)다는 일념으로 나름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김건일 시인에게 있어서 부의 성취는 장심이사들의 욕구인 집안을 일으키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려는데 있지 않다. 그에게는 변하지 않는 땅과 흙에 대한 항심 恒心이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못 보던 달

못 보던 별

못 듣던 풀벌레 울음

강원도의 밤엔 볼 수 있다

들을 수 있다

 

여름인데도

초가을 같은 강원도의 밤

에어컨도 필요없는

서늘한 강원도의 밤에

창으로 달을 보며

잠들어 본다

 

밤에 밤에 밤에

숲의 내음이

코로 스며들어서

집에 있는데

숲 속에 있는 것 같다

 

인생말년에 복을 받았다

맑은 공기 맑은 물 조용한 쉼터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 79

해발 700고지 붉은 집에서 얻었다

 

- 「강원도의 밤」 전문

 

시 「강원도의 밤」은 온갖 경쟁과 위험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도시생활자가 꿈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낭만으로 가득찬 전원생활의 수채화로 그려진다. 시인 스스로가 술회하듯이 ‘인생 말년에 복’을 받은 귀거래사로 읽혀지기도 한다. 그런데 시인이 마련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 79 / 해발 700고지 붉은 집’은 편안하게 자연을 노래 할만한 곳이 아니다. 1261미터 태기산 남쪽 6번 국도가 봉평으로 넘어가는 곳이 삽교리이다. 이 높고 깊은 산골에, 교통 또한 여의치 않은 그 곳에 김건일 시인은 부의 증식을 염두에 두고 단지 전원생활의 쉼을 위해서 땅을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겨우내

둔내면에는 겨울내 가보지 못하다가

경칩날을 맞아

부랴부랴 둔내면으로 향한다

 

-경칩날 둔내면에서 1연

 

‘내가 먹을 것은 / 내가 심는다’(「땅 ·2」참조)는 땅에 대한 경외심과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는 노동에서 비롯되는 수행의 일과를 실천하기 위함이 시인의 신조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곳에 약초를 심었다. 그가 평생의 일터인 한약방은 시인의 자부심이었고 ‘죽을 사람도 살리는게 약초라네 / 신비하고 신비해서 / 약초를 시만큼 사랑하네 ...(중략)...친구들이여 아파서 / 아무데서도 고치지 못한다면 / 김건일 시인을 찾아오게 / 안아프게 고쳐들릴께’( 시「약초」부분)라고 약초에 대한 사랑과 병자病者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마음과 일맥상통 한다. ( 시「사랑으로 고친다」 참조). 이 마음은 나를 둘러싼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애로, 더 나아가서 이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김건일 시인은 작고하기 전까지 그 마음 밭에 가서 수고로우나 즐거운 노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2시간 간격으로 샤워를 하여

몸의 피로를 풀어야 하는데

계속 4시까지 풀을 뽑고 5시 40분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집에 도착하니 10시 경 얼굴이 부었다고 야단이다

풀독이 오른 모양이다

셀레스톤 지 연고를 발랐다

손도 풀물이 들어 새카맣고

발뒤꿈치도 시큰거린다

눈두덩이 벌겋게 부었다

노숙자 같다나

그래도 기분은 매우 좋음

 

- 「작물들의 표정」 후반부

 

 

3.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건일 시인의 생활관은 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직설적이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체의 어법을 구사하였다. 심상운 시인은 이를 요약하여 ‘사실성과 직설적인 언어에 담긴 진정성의 시세계’ (시집 『밭 만들기』해설)라고 규정했다. 말하자면 시는 ‘모든 사람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일관된 시인의 시론과 일치하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의 양식樣式과 구조構造는 때로는 현학적으로, 때로는 무정형의 의식의 흐름으로 분화되었음에도 김건일 시인은 시류에 연연하지 않고 뿌린 대로 거두고 즐거운 노동으로 땅과 흙에 경배하는 의식을 시로 체화하는 마음을 버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시는 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는 만진다고

갈도 닦는다고

호령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열심히 살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생활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섬광처럼

전광석화처럼

탄식처럼

깨달음처럼

나도 모르게

꽃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

 

- 「시 」전문

 

「시 」는 김건일 시인의 시론을 적확的確하게 표명한 시이다. 시인의 생활관과 한 치의 틈도 없이 일치하는, 인위人爲가 아닌 무위無爲의 독백, 절대 절명의 절규가 시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심상운 시인은 시인 김건일의 시론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

 

시 쓰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땀 흘리며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시가 ’꽃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런 그의 시론은 시는 진실한 삶속에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인이 되기 전에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의 예술성보다 시인의 삶의 진정성을 깨닫게 하는 시론이라고 생각한다.

 

 

이와같 이 김건일 시인은 다섯 권의 시집을 통해서 때묻지 않은 농심을 바탕으로 사랑의 영역을 시로 구현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즉, 지행합일 知行合一이 시와 시인의 뼈대가 됨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들에 핀 그대를 보네

산에 핀 그대를 보네

이슬 머금은 그대

분 바르지 않은

그대를 보네

 

​따뜻한 햇볕을 보듬은

때로는 달빛에

머리칼이 흘러내린

바람에 나부끼는

그대의 모습

 

​그대의 눈동자 속으로

들어가네

향그러움 뿐인

그대 눈동자

손을 뻗어 손을 뻗어

끝없는 부드러움

속으로 빠져드네

 

- 「풀꽃의 연가」 전문

 

 

꽃이 피면

말은 하지 않지만

가슴 속에서

당신이 살아서

꽃이 피면 당신이 아닌가 하고

꽃의 곁으로 갑니다

그 눈꽃 같던 꽃나무 아래서

둘이서 걸어가던

그 시절은 지나가고

언제 다시 우리가 만날지는 모르지만

꽃의 얼굴로 당신은 살아서

가슴에 가슴에 당신이 핍니다

 

-「꽃의 곁에서 ·1」 전문

 

 

이 두 편의 시는 시집 『풀꽃의 연가(1984)』와『 꽃의 곁에서』(2006) 의 표제시이다. 시인은 등단한 지 십 년이 지나 『풀꽃의 연가』를 상재 했고, 그리고 20년 후에『 꽃의 곁에서』를 발간했으며 마지막 시집 『밭 만들기』에 「꽃의 곁에서」연작시 7편을 수록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꽃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사랑은 단순히 완상 玩賞의 대상이 아님이 분명하다. 시 「풀꽃의 연가」에서 보이는 분 바르지 않은 그대‘가 함축하고 있는 염결한 존재는 「꽃의 곁에서 ·1」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저 너머로 사라지거나 아니면 이 자리에 부재한 존재로, 그리움의 대상으로 현현 顯現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 두편의 시에 그대와 ‘당신’은 시인에게는 나를 둘러싼 측은한 모든 사람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수신修身’의 근거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보다 7세가 적은 아내가

나보다 더 늙어 보여서

고생을 많이 시킨게 마음이 아프다

 

- 「아내와 걷기」 부분

 

외손녀는 인도인의 피를 받은 딸의 딸이다

 

- 「외손녀」 부분

 

아들은 남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것이 어머님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겠습니다

 

- 「어머니 ·2」 부분

 

위의 열거한 시들은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진솔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존경하는 선배 소설가를 추모하는 시 「형님 잘가소서」, 외조카 성악가 조수미를 자랑스러워하는 시 「핏줄」, 약초를 통해 장모님의 건강을 회복시켰다는 시 「사랑으로 고친다」 등에서 시인의 전방위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찾아보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 먼 태평양 건너 타국의 자연재해를 안타까워하며 다음과 같은 충일한 마음을 던져 놓는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지먼

살아 있을 동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

 

- 「허리케인이 미국을 강타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

 

한 마디로 시인에게 있어서 꽃으로 상징되는 ‘그대’와 ‘당신’은 시인의 삶을 굳건하게 지탱해준 사랑의 에너지였던 것이다.

 

 

4.

 

간략하게나마 시집 밭 만들기를 중심으로 김건일 시인의 시 세계를 살펴보았다. 김건일 시인은 시 시를 통해서 시는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일상어와 직설적 어조 語調를 통해 사람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언명했다. 이와 같은 시론은 언행일치, 지행합일의 인격의 수양과도 맥을 같이 하여야 함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회고하건대, 김건일 시인은 모교인 건국대학교 최초의 문학 써클인 ’건국 문단‘을 창립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후배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한 예로 김건일 문학상을 제정하여 오만환, 곽효환, 김선주 동문을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으나 아쉽게도 그 뜻을 이어가지 못함이 안타깝다. 자신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후학들의 앞 길을 밝혀주고자 했던 그 열정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세평世評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외로운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신 뒷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료 시인의 추모시를 읽으며 김건일 시인의 영면을 기원한다.

 

 

시인 김건일

 

윤제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일구던 詩농사

풍작을 거두자고

 

언제나 소년처럼

세상 모두를 가진 혈기

불꽃으로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