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쓴 시인론·시평 197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소외 疏外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소외 疏外 나호열 1. 『문학과 의식』(2019년 봄 호)에 실린 열 다섯 편의 시들은 우리 현대시가 펼치고 있는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현재 간행되고 있는 몇 몇 잡지들은 그들의 편집 방향에 따라, 보다 밀도 있는 편향성을 지니고 그들만의 독자층을 확대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 독자들의 시 읽기의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시류 詩流를 보여주는 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독자들이 시를 가까이 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어보게도 한다.『문학과 의식』에 실린 시들은 각양각색의 시풍을 보여주면서도 커다란 하나의 주제로 집약할 수 있어 (화이부동和而不同)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개관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

김승수 시집 『그대와 사는 이유』: 탈 속에 숨은 삶의 애환을 해학諧謔으로 풀다

탈 속에 숨은 삶의 애환을 해학諧謔으로 풀다 나호열 시인· 문학평론가 1. 자의든, 타의든 탈을 쓰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한 사람의 진면목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그저 오가는 푸념이 아닌 까닭은 사회생활에서 관계의 중요성이 증대될수록 위장僞裝 - 화장이나 옷매무새, 어투 같은 – 의 필요성도 함께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한 때 ’고객이 왕이다.’의 의미가 이윤을 창출하고 기업이나 기관의 이미지를 높이는 기준이 되어 소비자를 응대하는 사람들에게 감정노동 感情勞動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상식이 되던 때가 있었다. 사전적 의미에서 감정노동은 실제적 감정을 속이고 전시적 감정으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으로서..

이효시집 『당신의 숨 한 번』: ‘숨’과 ‘쉼’의 풍경을 읽다

해설 ‘숨’과 ‘쉼’의 풍경을 읽다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1.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기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며,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적奇跡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인과의 법칙을 넘어서서 이루어지는 것, 어떤 절망적 상황이 순식간에 극복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기적이 필요하지 않는 평온한 삶이다. 기적이 요구되지 않는 삶, 언제든 쉬고 잠잘 수 있는 집이 있고,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양식糧食이 비축되어 있는, 어찌 보면 판에 박힌 쳇바퀴를 돌리는 삶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장현두 시집『몰래 보는 영화』: 만물萬物이 추구芻狗임을 배우는 시

跋文 만물萬物이 추구芻狗임을 배우는 시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장현두는 누구인가 나에게 시인 장현두는 늘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이다. 몇 년 전 시를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 얼굴을 비쳤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 이후 본 적이 없으니 얼굴도 희미한데 어느 날엔가 느닷없이 고구마 한 박스가 배달되어 충청도 괴산 땅 주소가 적혀 있어 어리짐작으로 귀촌歸村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이번에는 몇 년간 필진으로 참여했던『산림문학』의 지면을 통해 그가 시인으로 등단했음을 알 수 있었고, 이윽고 이번 여름에는 백 편의 시를 묶어 내게로 찾아왔던 것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이런 것인가! 시집『몰래보는 영화』의 첫 독자가 되어 다시 시인 장현두의 면면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 어찌 남다르지 않겠는가...

정빈 시집 : 『칸나의 독백』: 시간의 향기를 사랑으로 담다

跋文 시간의 향기를 사랑으로 담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1. 우리는 삶의 가치를 의미하는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고해 보였던 규범이나 의식이 그 쓸모를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몰라도 남과 여의 차별적 의식이 무너지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전통적 관혼상제冠婚喪祭도 점차 현실과 거리가 먼 의식儀式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 세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욜로 YOLO (you only live once )라는 신조어가 이제는 더 이상 새삼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욜로 YOLO를 직역하면 ‘너의 인생은 한번 뿐’이므로 불투명한 미래에 기대를 걸기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힘을 기울이겠다는 요즘의 2,3..

은월 김혜숙 시집 『끝내 붉음에 젖다』:시공 時空을 꿰뚫는 생명의 길을 묻다

시공 時空을 꿰뚫는 생명의 길을 묻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들어가며 『끝내 붉음에 젖다』는『어쩌자고 꽃』(2018)에 이은 은월 김혜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대체로 우리는 첫 시집을 통해서 시인이 지향하는 세계관이나 시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욕구의 징후를 살펴보게 되며, 그 이후 두 번째 시집에서는 그런 징후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일군의 시인들은 자신의 세계관이나 삶의 지침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길을 걸어가고, 또 다른 시인들은 끊임없이 새로움 – 시법이나 인식-을 추구한다. 이 두 개의 길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일관된 의식으로 그 변화에 맞서는 일도 가치 있는 일이며, 그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존재의 의..

임승훈 시집『꼭 지켜야 할 일』:임서기 林棲期를 지나가는 생명의 응시

跋文 임서기 林棲期를 지나가는 생명의 응시 나호열 시인· 문학평론가 1. 나이가 들어갈수록 입말에 ‘어느덧’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소년은 쉽게 늙고 공부는 어려워 시간은 빨리 지나가니 가볍게 여기지 말자(소년이로 학난성 일촌광음 불가경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라거나 주마간산走馬看山과 같이 세월의 빠름을 인식하게 될 때 누구나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그 시간들을 반추反芻하게 된다. 어느 사람은 그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슬픔의 각인으로 되새김하고 또 어느 사람은 뿌듯한 성취의 기쁨에 취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남을 수밖에 없는 아쉬움의 여운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삶이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임승훈 시인의 첫 시집『꼭 지켜야 할 일..

곽성숙 시집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일상의 남루襤褸를 풀어내는 무위無爲의 시

일상의 남루襤褸를 풀어내는 무위無爲의 시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1. 곽성숙 시인의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 원고가 도착할 즈음, 우연하게도 두 편의 평론을 읽고 있었다.「이제 시론을 갱신할 때가 되었다」『예술가』, 김유중 202년 봄호와 「한국시의 미래를 묻다」『시와 문화』, 박명순 2022년 봄호가 그것들인데, 다행스럽게도 그 글들은 시집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의 전모全貌와 의의意義를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두 편의 글은 오늘의 한국 현대시의 양상을 살펴보고, 앞으로 바람직한 시의 진로를 진단하는 것으로서 마침 곽성숙 시인이 지향하는 시의 지형을 견주어보고 시집이 지니고 있는 독창성을 쉽게 찾아내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이 두 편의 주장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제 시론..

김미선 시집『바위의 꿈』:잊음과 잃음 사이의 섬을 이야기 하다

잊음과 잃음 사이의 섬을 이야기 하다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1. 음계의 낮은 도 음音과 솔쯤 그 사이를 흐르는 진양조의 강물, 스물스물 코끝을 스치는 솥밥 익는 냄새, 나뭇가지 끝에서 빗방울 하나가 마악 떨어지려는 그 순간, 손닿을 듯해도 끝내 잡히지 않는 무지개...... 이 단상들은 모두 김미선 시인의 시집 『바위의 꿈』을 일별하고 난 후에 남는 조각조각의 인상들이다. 그의 시편들은 무거운 듯 가볍고, 웃음인가 했더니 어느새 슬픔이 배어있는 미소를 보여준다. 이렇게 『섬으로 가는 길』(2007),『닻을 내린 그 후』(2016)에 이어 6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시집인 『바위의 꿈』이 펼쳐놓은 시간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이윽고 우리는 저녁 어스름, 길이 끝나는 곳의 외딴 집에 다다르게 된다...

서혜경 시집 『야생의 강』:발효된 시간의 프롤로그

발효된 시간의 프롤로그 나호열 · 문화평론가 망각의 힘 망각忘却은 삶의 슬픈 에너지다.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우리의 일상도 맑았다 흐려지는 법인데 잊고 싶은 것은 잊혀지지 않고, 잊지 않으려 해도 잊혀지고마는 사람이나 사건은 시간이라는 강물에 쓸려나간 듯, 오롯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에게 완벽한 망각은 있을 수 없다. 느닷없이 어느 순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들이나 사라졌던 사람들이 기억의 문을 두드려 슬픔을 다시 들어올리고, 정처없는 기쁨으로 춤추게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망각의 틈새를 뚫고 솟아오른 기억들은 최초에 마주했던 기쁨이나 슬픔과는 그 결이 다르다. 올해 피어나는 꽃들이 지난 해의 그 꽃이 아닌 것처럼 시간의 풍화風化로 사실과 왜곡되거나 아니면 한결 승..

장갑생 시집 『이슬은 영원하다』: 대자적 존재 對者的存在의 자아 찾기

대자적 존재 對者的存在의 자아 찾기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1. 우리가 ‘존재’를 이야기 할 때 ‘ ~이다’와 ‘~ 있다’라는 두 개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여기서의 우리는 사유하는 기능을 가진 인간 일반이기 때문에 ‘존재’를 묻는 행위는 일종의 표현 욕구에 다름 아니다. ‘어디에 있다’는 장소성과 그 장소에 위치하는 ‘무엇이다’라는 발화發話는 그 존재를 드러내는 의식이면서, 무비판적인 본능에 충실한 것일 수도 있다. 어째든 이렇게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능력은 아니다. 수컷 사슴의 뿔이나 공작의 화려한 날개, 암컷에 잘 보이기 위한 바우어 새의 집짓기 등도 자신의 존재를 보다 강열하게 알리기 위한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일반이 지닌 사유의 능력은 자신을 비추는..

김정희 시집『비켜 선 너에게 안부를 묻다』:화해와 소통으로 가는 서정抒情의 길

화해와 소통으로 가는 서정抒情의 길 나호열 시인∙문화평론가 시인의 길 예술가의 재능이 천부적天賦的이라는 주장은, 범인凡人이 미처 가닿지 못한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일 때 예술의 위의威儀가 빛나는 것이라는 말과 뜻이 닿는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의 정의는 문화의 발전에 따라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혼성모방이라 일컬어지는 장르 간의 혼융, 더 나아가서 창작자의 경계 또한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의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향수享受의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다시 보고 마음에 닿아도 놓치는 것이 있다, 그것을 찾아가는 여행길’이라고 자신의 시 쓰기를 피력한 김정희 시인의 말은 굳이 상상력에 기반한 독특하고 강열한 창조가 아니더라도 얼..

박남주 시집 『존재의 이유』:순수를 향해 걸어가는 여정旅程의 시

순수를 향해 걸어가는 여정旅程의 시 - 사랑은 인생의 괴로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김동길 나호열 시인∙문화평론가 1. 박남주 시인의 시집 『존재의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의 얼개를 가지고 있다.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한 노년老年에 대한 탐구가 그 하나이며, 또 하나는 그 노년의 삶에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의 항구성恒久性에 대한 질문이다. 시詩가 감정의 표현을 넘어 예지叡智 혹은 통찰의 높은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스스로 살아있는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할 것인데 『존재의 이유』의 100여 편에 이르는 시편은 삶의 예지를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으로 읽을 때 그 면모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해방 이후의 혼란과 625전쟁의 전후로 ..

김기용 시집 『해지는 세상도 꽃이 핀다』:수처작주隨處作主의 상생相生을 묻다

跋文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상생相生을 묻다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시인이란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보다 쉽게, 보다 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 워즈워스, 코울리지 1. 바야흐로 우리는 삶의 행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믿었던 가치들, 비판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던 시절로부터 참 멀리 온 것이다. 한 두 가지 예를 들면 입 밖으로 발설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웠던 동성애나 천륜을 어기는 것으로 비판받던 비혼非婚과 이혼의 증가는 불합리한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본연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다양성의 시대, 가치의 혼융渾融과 통섭通涉의 사유를 지향하는 오늘의 삶은 복잡미묘한 가치의 ..

윤혜숙 시집 『손끝 체온이 그리운 날』:일상 속에 숨은 익살의 시

일상 속에 숨은 익살의 시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1. 윤혜숙 시인의 시집 『손끝 체온이 그리운 날』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클레오폰은 일상생활에서 취재한 일종의 서사시를 쓰면서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을 모방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한 구절을 상기하게 하는데, 이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 남편과 같은 친족이거나 조금 멀다 해도 몇몇의 친구, 아주 드물게 병원에 입원하며 잠시 같은 병실에서 마주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의 만남에 국한된다 – 시 「병원생활」 참조. 또한 이 시집에 펼쳐진 공간은 농촌으로서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아직 훼손되지 않은 공동체 삶의 미덕과 농경農耕의 느릿한 아름다움이 깃들여져 있는 곳이다. 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