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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시집 『낯선 곳 그리고 설렘』: 만유일체의 지혜를 묻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0. 13. 16:03

만유일체의 지혜를 묻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旅行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인류의 시조들이 저 아프리카를 떠나 보다 나은 생존의 터전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여정도 여행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거나 성지를 찾아가는 종교적 순례, 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동移動도 여행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만큼의 두려움을 안고 겪어보지 못한 환경과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는 여행은 예기하지 못했던 문화의 충돌과 혼융을 경험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행은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행운(?)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먼 곳, 먼 길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된 것은 교통수단의 발달과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주어진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으로 여러 나라의 풍경을 보여주는 여행가. 여행작가들이 등장하고 있고 몇 년 간의 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상에서 사진이나 영상 따위로 다른 고장의 풍물을 보여주는 랜선 여행LAN線 旅行이 방송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추세에까지 이르고 있다. 여행의 목적도 다양해져서 예전처럼 관광지 유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스킨 스쿠버나 열기구 타기, 등반 등의 레저 활동, 피서避暑와 피한避寒을 위한 장, 단기 여행 등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여행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보다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보다 깊이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활력소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이 몇 장의 사진으로 남거나 머리 속에만 간직되는 추억담으로 휘발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사진첩으로, 여행기로 그들이 향유했던 시간의 발자국을 남기고자 한다.

 

그런 생각을 지니고 해외여행 붐이 일어나기 전부터 사진기를 들고 기꺼이 도전의 발걸음을 내딘 사람이 바로 김광진 시인이다. 시인은 이 시집이 나오기 전에도 시와 사진을 담은 시집을 상재한 바 있으며, 이번 시집 『낯 선 곳 그리고 설렘』은 여행의 소회를 사진과 시로 엮은 완결판으로 볼 수 있다.

 

여행의 출발

 

『낯선 곳 그리고 설렘』의 독특한 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김광진 시인이 젊지 않은 나이에 먼 거리 여행을 시도한 심적心的 동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 낯선 곳을 가려하는 것이며, 왜 낯선 곳으로 떠남에 설렘을 갖게 되는가.

 

하고 싶은 일 하시게

그 일이 무엇이든 하시게

자식, 잡은 꾼 놓으시게

품 떠날 때 내 소유는 아니었네

친구, 누구든 만나시게

나는 누구의 맘에 든 적이 있었던가

사랑, 가슴 뜨거울 때 하시게

좋은 사랑 하시게나

여행 일단 출발부터 하시게

가고 싶은데 가시게나

 

걸친 옷 벗고 장자의 나비되어

훨훨 날아보시게나

 

- 『보시게나』 전문

 

위의 시에는 ‘왜 먼 여행을 떠나야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한 마디로 장자莊子의 나비,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시인은 꿈꾸고 있는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삶의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나’라는 존재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 가서 ‘나’를 풀어 놓는 자유를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여행의 일반적인 목적인 휴식과 관광과는 다른 차원의 의식儀式을 치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레서 김광진 시인의 『낯선 곳 그리고 설렘』의 남다른 특성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어느 한 나라의 한 장소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광대한 대륙의 이곳저곳을 순례하는 긴 여정으로 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일본, 중국, 태국, 인도, 코커서스, 남미, 아프리카로 이어진 여정은 그야말로 강행군이라고 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낯선 곳 그리고 설렘』에 수록된 사진들은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시에 덧붙여지는 일종의 삽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시집의 무게 중심은 낯선 자연과 낯선 사람들과의 조우를 통해 받아들여진 의식意識의 변화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낯선 사람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게 된 까닭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그 적응의 과정에서 축적되는 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며 풍습이 다른 까닭으로 말미암아 각 민족, 국가의 정체성idendity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시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일부분을 살펴보겠다.

 

빙관 료칸 여관

소채 야채 채소

 

...중략 ,,,

 

가만히 두었으면

하나였겠다.

 

한국, 중국, 일본은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는 나라들이다. 웬만한 식자 識者들이면 표기된 단어를 보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겠는데- 잠시 머무르는 숙소, 음식에 곁들여 먹는 식물 – 발음이 다르고 문자의 배열이 다르다. 이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자의성恣意性 때문에 그런 것으로서 당위의 명쾌한 규칙이 없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단지 언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풍습이나 문화에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한번 따거라 하면 가족이 된다’(「중국은」부분)는 언명을 보자. ‘따거’는 대가大哥, 즉 형님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한번 따거라 하면 가족이 된다’의 의미는 한 번 친근함을 느끼게 되어, ‘따거’로 상대방을 부르게 되면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지금도 그러한 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인들의 따뜻한 사람 맞이 풍습을 시인이 체험한 것임은 틀림이 없다. 이 표현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인간관계를 비추어 볼 때 멀기는 하여도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겠는가. 좀 더 외연을 넓혀서 또 다른 나라 인도와 인도의 인접국가 네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상한 나라」와 「이상한 나라 네팔」은 우리의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에 대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싯다르타가 태어나고

힌두교를 믿는 나라

소를 숭배하면서

소고기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

...중략...

 

국민소득 이천 불에

외국인에게 병원비 공짜인 나라

 

- 「이상한 나라」 부분

 

인도는 대다수 국민이 힌두교를 믿는다. 그런데 인도는 세계적 종교인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생애를 마친 곳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는 불교와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받아들아며 아직도 불가촉천민이 천대받는 나라 – 「뉴잘페구라의 교통사고」 참조 – 소를 숭상하여 먹지도 않으면서 소고기를 수출하고, 소득은 낮으면서 외국인에게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인도에서는 일상적인 규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시인은 의아해 한다. 인도의 인접국가인 네팔은 또 어떠한가.

 

9를 1이라 하고

6을 7이라 하는 나라

맞으면 고개를 가로 젖고

틀리면 고개를 끄덕이는 나라

 

- 「이상한 나라 네팔」 앞 부분

 

시인은 이쯤에서 생활의 방식을 놓고 문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가를 깨닫는다.

 

사람으로 가는 길을 묻다

 

시인은 다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남미에 발을 딛고 인디오를 만난다. 원주민인 인디오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서양의 외래인들에게 빼앗기고 약탈과 멸족의 수모를 견디며 여전히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국의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카렌족은 외부와 단절된 채 원시 상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청정한 고산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오래 살지 못하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인도를 여행하면서 한 여인을 만난다. 열네 살에 시집을 와서 스물 셋에 과부가 된 후 남편의 죽음이 자신의 죄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하루 14시간을 기도를 해야 한다. 그렇게 마흔 아홉 살이 되었는데 벌써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시 「과부마을」의 이야기이다.

 

단편적으로 살펴본 여러 나라의 사람들의 삶에서 많은 집단과 어울려 살아도 힘들고, 도덕과 윤리가 숨 쉬는 사회에서도 삶의 질곡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시인은 목격한다. 코끼리를 학대하여 그림을 그리게 하고 관광객들에게서 수입을 얻는 이야기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통하여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시인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거둘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어울려 사는 삶에 기울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렇게 토로한다.

 

사람들은 더불어 살아야 하나 보다

지지고 볶으며 부대끼며 살아야 하나 보다

울고 웃으며 사랑하며 미워도 하며

그렇게 살아야 하나 보다

 

- 「고산족」 마지막 연

 

시인은 고민한다. 행복한 삶의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차이’를 넘어 ‘다름’을 수평적 관계로 놓을 때 상생의 평화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글의 서두에 올려둔 「보시게나」를 다시 상기해보면 자신의 마음을 가두는 사슬 같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 자유의 길임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쯤에 오게 되면 시인은 세렝게티에 닿는다. 동물의 왕국에 등장하는 그 세렝게티에서 시인은 굴레와 자유 사이에서 방황하는 실존과 부딪친다. 다소 긴 시이기는 합지만 읽어보기로 한다.

 

세렝게티와 맞닿은 응고롱고로

어린 루탕카가 키우는 염소 한 마리가

탈출을 했다

 

더는 매를 맞거나 젖을 빼앗길 일도

팔려가거나 죽임을 당할 걱정도 없었다

소년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끝없는 풀밭에서 배불리 먹고

뛰어다녔다

 

혼자서

 

목줄이 있는 한 함께 할 친구는 없었고

누구도 멍에를 풀어줄 수 없었다

자기를 지킬 힘도 없었고 밤이 무서웠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감싸주는

소년이 그리웠지만 돌아갈 수도 없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만

말없이 떠 있었다.

 

- 「굴레」 전문

 

이 시야말로 『낯선 곳 그리고 설렘』을 관통하는 삶에 대한 시인의 질문과 대답이 새겨져 있다. 문명과 야생 사이, 구속과 자유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굴레를 벗어던지고 약육강식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멍에에 묶인 채 한 평생을 안식의 세계에 머무를 것인가?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진다.

 

 

카주라호에서 그들은

알레르기로 기절한 나를

저승으로 가는 나를

돌려세웠다

처음 보는 나를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는 나를

묻지도 않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 「고마운 인디아」 부분

 

카주라호Khajuraho는 미투나 상 – 남녀간의 성행위를 조각한-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힌두교의 목표 중에 하나가 까마kama-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인데 이는 다산多産을 통해서 노동력을 증대하려는 의도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가 지닌 통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시인은 그곳에서 위급한 상황에 처했던 모양이다. 『낯선 곳 그리고 설렘』의 인디아편에 많은 시들에서 보이듯이 더럽고, 삐끼들이 호시탐탐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인도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죽음 직전까지 간 자신을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살려준 것에 감동을 받는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 깃들어 있는 이 이타심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믿어야 할 덕목이며 이 이타심이 발휘되는 순간 삶의 멍에는 누군가가 내게 씌운 굴레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묶은 사슬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과 소생蘇生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의 기억이 시인에게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그들은 시인과 눈을 맞추며 기쁜 웃음을 나누지 않았을까? 목숨을 살렸다는 기쁨, 죽지 않고 살았다는 기쁨이 인간이 지닌 또 하나의 만국 공통어 웃음으로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이 웃음이야말로 그 어떤 말보다도 위력이 큰 상생의 언어가 아니었을까? 이를 기억하는 시가 여기에 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으며 공유할 내용이 전혀 없는 어린 아이와의 만남을 그린 시.

 

오라 공원에서

만난 다섯 살 소녀

 

맑은 눈

천진한 얼굴

예쁜 미소

 

웃어주니

 

가던 길 돌아

다시 온다

눈 맞추자

우리가 되었다

 

- 「소통」 전문

 

일본 북해도 삿뽀로 공원에서 만난 다섯 소녀와의 만남이 ‘눈 맞추자 / 우리가 되었다’는 절구絶句로 탄생되었다. 평범하지만 한 순간의 웃음과 눈맞춤이야말로 소통의 지름길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여행을 마치며

 

김광진 시인의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집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차이를 넘어서서 낯 선 사람들과의 다름을 인정하고 기나긴 여정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설렘을 마음에 가득 채우고자 함이었다. 누구에게 자신의 여행 이력을 뽐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진을 통해 낯 선 풍경을 자랑스럽게 보이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낯선 곳 그리고 설렘』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유의지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의 몸인 것을 체득하고자 하는 만행 萬行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김광진 시인은 그의 여정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여행에는 시가 없다

낯 선 곳의 행복한 외로움과

씹고 싶은 고독만 있을 뿐

 

- 「시 여행」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