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 흰 구름 / 나호열 덧없이 흘러가는 구름이 덫으로 내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숨어도 슬픈 사랑 들키고야마는 제비꽃처럼 저 푸른 하늘에 드러나고야 마는 비밀편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다가 어느새 눈물 뚝뚝 흘리기도 하다가 잘 다듬은 문장을 북북 문질러 놓는 우리는 바람을 사랑하..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1.17
아침에 전해준 새 소리 아침에 전해준 새 소리 / 나호열 죽지 않을 만큼만 잠을 잔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죽지 않을 만큼만 꿈을 꾼다 죽지않을 만큼만 말을 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걸어간다 그래야 될 것 같아서 누군가 외로울 때 웃는 것조차 죄가 되는 것 같아서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아, 그러나, 그러나 모..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1.15
깃발 깃발 / 나호열 더 멀리 보려고 키 세우는 나무 위에 휘어질듯 새 한 마리 날아와 앉았다 내 마음의 깃대 위에 조용히 깃발로 다가선 사람이여 풀죽은 어깨는 보기 싫지만 마음을 묶어 활짝 핀 웃음은 보기 좋지만 세찬 바람에 펄럭이는 그 얼굴 상할까 오늘은 깃대를 조금만 내려야겠다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1.11
너에게로 가는 길 / 나호열 너에게로 가는 길 / 나호열 곧바로 달려가야 한다 우회전, 직진, 좌회전, 우회전, 우회전, 작진, 좌회전, 직진, 우회전, 직진, 좌회전, 직진, 좌회전, 우회전, 직진, 좌회전, 우 회전, 직진, 좌회전하자마자 우회전, 좌회전, 좌회전, 직진, 좌 회전, 우회전, 직진, 좌회전, 역순으로 되짚을 수 없..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1.09
풀씨의 생애 풀씨의 생애 / 나호열 한 가마니의 그리움으로도 몇 년 양식을 삼을 수 있고 항아리에 가득한 기다림만으로도 평생을 살 수 있겠다 바람 많이 부는 날 그리움 한 짐 물동이 하나 닫힌 문 앞에 그저 부려놓고 갈 수는 없어 헌화하듯 헌화하듯 뿌리며 가는 이 아! 되돌아가야 할 곳은 등 뒤에..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1.05
장엄한 숲 / 나호열 장엄한 숲 / 나호열 언제 눈 비 온다고 피한 적이 있나요 언제 마주 오는 사나운 바람에 맞서지 않은 적 있나요. 한 사람의 하늘을 우러를 수 있도록 한 걸음도 비켜서지 않는 나무는 팔들을 위로 뻗치고 늘 고개를 땅으로 떨구어야 합니다. 머리 위에 둥지를 튼 새들은 때가 되면 멀리 떠..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1.03
침향枕香 / 나호열 침향枕香 / 나호열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길을 만든다 집 없는 풀벌레들이 가을을 이룬다 흔적 없이 사라진 타인들 박하향으로 은은히 녹으며 문 닫힌 입 속에서 침묵의 뒷맛을 세월 속에 놓아주고 있으니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29
만월滿月 만월滿月 / 나호열 마음에 등을 달아 놓으려다가 그만 바람결에 끈을 묶어 놓았다 헤진 솔깃 기울 수 있을 만큼만 한 팔 뻗쳐 문 여밀 수 있을 만큼만 불 밝혀 놓으면 길고 모진 밤도 서럽지 않아 너울대는 그림자도 친구가 되지 바람 따라 날아가 버린 등은 저 혼자 차올라서 고개 마루턱..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28
초봄 부근 / 나호열 초봄 부근 / 나호열 모닥불이 지펴졌던 자리 빈 소주병 몇 개 뒹굴고 잿더미를 헤치며 잡초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내겐 꽃이란 없어 칼날의 몸짓으로 푸른 팔뚝을 내젓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점령해버릴 공터에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그을린 나무들처럼 모닥불에 얹혀졌던 언 손의 너울..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26
꽃다발을 든 사내 / 나호열 꽃다발을 든 사내 / 나호열 시든 꽃을 든 사내가 네거리 고장난 신호등 앞에 서 있다 꽃이 저렇게 말라가며 검게 변하는 것은 햇살이 너무 강렬하거나 그가 너무 오래 걸어왔기 때문이다 저 보라색 꽃다발은 지금 사내의 팔에 담겨 있지만 그는 들판을 헤매며 자신의 치장을 위해 꽃을 꺾..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24
청동화로靑銅火爐 청동화로靑銅火爐 / 나호열 이 세상 가장 낮은 땅, 강 하루 뻘밭에 금가고 깨진 청동화로가 가슴에 강과 바다를 가득 품고 있었다. 스스로 어떻게 뜨거워질 수 있었겠는가 그대가 말없이 태우던 잿빛 문장이 한 번 더 불길로 일어나 그 불길을 누르고 또 누르던 그대의 눈물이 없었다면 뜨..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22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 나호열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 나호열 출렁거리는 억 만 톤의 그리움 푸른 하늘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혼자 차오르고 혼자 비워지고 물결 하나 일지 않는 그리움의 저수지 머리에 이고 물길을 찾아갈 때 먹장구름은 후두둑 길을 지워버린다 어디에서 오시는가 저 푸른 저수지 한 장..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20
축약縮約의 나날 축약縮約의 나날 / 나호열 닿기도 전에 손 내밀기도 전에 그가 돌아갔다 밤길 때문은 아니었는데 발자국 소리만 남겨두고 그가 돌아갔다 목소리에도 어둠이 묻어나고 몸을 터는 침엽수의 꿈이 말 한 마디마다 성에로 엉겨붙어 하고픈 말들은 빈칸으로 남겨 두었다 우리는 축약의 괴로움..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19
비어 있는 그릇 / 나호열 비어 있는 그릇 / 나호열 기다리는 시간은 길다 너무 멀다 수평선에 고개를 내민 햇살을 두 손에 담아 그대에게 보내면 은은한 달빛으로 길을 만들고 그대가 등불 대신 보내준 별빛은 빛나는 아침의 말씀 하얀 소금으로 남는다 우리의 그릇은 그렇게 비어 있다 우리는 언제나 허기지는 그..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17
인터넷이 가르쳐 준 그리움 / 나호열 인터넷이 가르쳐 준 그리움 / 나호열 메일이 없습니다 받은 편지함에는 편지가 없다 받을 편지는 이미 도착했는데 받은 편지함에는 편지가 없다 받을 편지는 이미 읽었는데 몽글몽글 하얀 수국 꽃잎 같은 글씨 보이지 않고 받은 편지함에는 편지가 없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동구 밖으로 ..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201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