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부근 / 나호열
모닥불이 지펴졌던 자리
빈 소주병 몇 개 뒹굴고
잿더미를 헤치며 잡초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내겐 꽃이란 없어
칼날의 몸짓으로 푸른 팔뚝을 내젓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점령해버릴 공터에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그을린 나무들처럼
모닥불에 얹혀졌던 언 손의 너울대는 그림자
무심하게 지나가다가
무심하지 않게 되돌아 선 자리
아, 나는 불이었다
예쁜 가슴에 살며시 얹히는
그런 꽃이 되고 싶었는데
다가오지마 팔을 내저을수록
붉은 장미의 화염이었다고
달려오는 사람아
오늘은 불길을 낮추어
그 옆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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