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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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청동화로靑銅火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0. 22. 23:44

청동화로靑銅火爐 / 나호열

 

 

이 세상 가장 낮은 땅, 강 하루 뻘밭에 금가고 깨진 청동화로가 가슴에 강과 바다를 가득 품고 있었다.

 

 

스스로 어떻게 뜨거워질 수 있었겠는가

그대가 말없이 태우던 잿빛 문장이

한 번 더 불길로 일어나

그 불길을 누르고 또 누르던

그대의 눈물이 없었다면

뜨겁게 달구어질수록 조금씩 뒤로 물러앉아

뜨개질을 하거나

아주 슬픈 소설을 읽어 가는 눈빛이 없었다면

겨울의 긴 바람, 유리처럼 부서져 내리는

별들이 가슴에 가득 차면

영혼의 깊은 샘물을 길어올리듯이

조심스레 가슴을

말 못하고 태워 버린 재들을 비워주던

그 손길이 없었다면

그러나 싸늘히 식어가는 일은 오직 나만의 일이었기에

조금씩 금가고 깨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뛰어들어가

스스로 식어가기를 기도했는지 모른다

 

엎드린 채로

지상에서 가장 낮은 땅 끝과

가장 깊은 바다가 시작되는 뻘밭에 누워

지금 청동화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