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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쓰는 존재… 늘 안으로 탐독, 밖으로는 탐색하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3. 17. 17:07

 

 

쓰는 존재늘 안으로 탐독, 밖으로는 탐색하죠

 

박선희 기자 입력 2020-03-17 03:00수정 2020-03-17 03:00

 

산문집 펴낸 문정희 시인 인터뷰

 

 

과감한 액세서리를 즐겨 착용하는 문정희 시인의 실버링 중 하나는 멕시코 탁스코를 여행할 때 한국 입양아 출신 주인에게서 샀다. 그는 모든 반지에 다 기억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시인의 감각이란 건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문정희 시인(73)의 대답은 이랬다. “안으로는 탐독, 밖으로는 탐색.” 그가 최근 펴낸 산문집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이 산다’(민음사)는 그중 탐색에 관한 이야기다.

 

시인은 20여 년간 프랑스 낭트에서부터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마케도니아 테토보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시인으로 초청받은 수많은 이국 도시를 여행했다. 낯선 언어와 환경 사이에서 예민하게 포착한 경험과 감각은 그의 안목과 취향이 됐고, 시가 됐다. 그는 문학은 인간이고 인간은 결국 자유라며 “‘시인 살기에 관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산뜻한 필치로 그려지는 매력적인 여행기는 그래서 그의 진솔한 시작(詩作)노트이기도 하다.

 

어떻게 가는 곳마다 사건이 생기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그의 여행기는 흥미진진한 일화가 넘친다. 분홍색 넥타이를 풀어 즉흥 선물을 한 워싱턴 낭독회의 노신사나, 넝마 위 스카프를 칭찬하자 가져라며 던져준 델리의 걸인 이야기는 만남의 신비를 위트 있게 전한다. 뉴델리의 빈부 격차에 깊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당장 녹물 나오는 초청 숙소는 견디기가 어렵고, 10년 치 퇴직금을 공항에서 잃은 기내 네팔 근로자의 절망에 몰입하면서도 이륙 후 쏟아지는 졸음까지 이기진 못함을 고백하기도 한다.

 

요지 야마모토, 헬무트 랭 등 아방가르드 패션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글은 특히나 재밌다. 시인은 작가가 패션에 대해 말하기엔 경직된 사회였지만 내겐 책만큼 옷이 많다고 말했다. 철칙은 똑같은 건 싫다는 것. 강남 명품거리에서 독특한 직조의 코트를 사 입었는데 알고 보니 목욕가운이었던 일이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 옷을 입고 잡지 화보까지 찍은 일화는 시인의 유쾌한 개성을 잘 보여준다.

 

 

작가의 옷차림을 투우사의 옷이라 칭하며 창작열을 고무시키는 작가의 스타일에 대해 논의하는 이 글은 빈곤, 고통 등 무거운 주제에만 눌려 있던 한국 문학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다.

 

과일 따위에 스위트란 단어를 쓸 순 없다는 시인 아도니스나 필터 없는 프랑스 담배 지탄을 즐겨 피우던 김환기 화백의 아내 김향안 여사와의 파리 데이트도 인상적이다. 옥타비오 파스, 심보르스카 등 탐독으로 걸러진 다른 문인의 촌철살인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이 긴 탐색의 끝에 시인은 어디에 도착했을까. 그는 쓰는 존재라고 말했다.

 

지금껏 투사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인생과 문학의 미완성과 불안감을 통렬히 수긍하게 됐어요. 나이가 아니라 탐색으로 얻게 된 감각이에요. 쓰는 존재, 그거면 된 거예요.”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