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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작가들이 자신의 권리를 말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3. 9. 13:58

 

한국 문학 작가들이 자신의 권리를 말하다

임지영 기자 입력 2020.02.2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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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김금희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와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 이후 '저작권 갈취와 문학계 전반의 부당한 관행'에 대한 고발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IN 조남진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놓여 있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문학사상사는 올해의 이상문학상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고 박완서 작가는 1981년 ‘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해 수상 연설문에서 그는 자녀가 받아온 상장에 비유해 수상의 기쁨을 전했다. ‘대수롭지 않은 척 저만큼 밀어놓았다가도 아이들이 안 보는 데선 잘 챙겨 소중하게 간수해’놓은 상은 자녀 모두 어른이 된 이후에도 ‘비밀스러운 기쁨과 자랑이 돼주고 있다’면서 “이 상 역시 제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소설 쓰는 일에 바치는 수고에 지쳤을 때, 그 일이 허망하고 허망해서 망막해졌을 때 꺼내 볼 겁니다. 그때 그것은 한가닥 빛으로든, 모진 채찍으로든, 저에게 큰 용기가 되어줄 겁니다”라고 말했다. 작가에게 문학상이 어떤 의미인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는 1977년 1회 대상 수상작으로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을 선정한 이래 문예지와 정기간행물에 발표된 작품 중 심사를 거쳐 매년 대상과 우수상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2월5일 문학사상사는 올해 이상문학상을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초였고, 김금희 작가가 저작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지난 1월4일 김금희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상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수상 작품의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해야 한다는 조항, 작품을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고 다른 단행본에 수록될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계약서 수정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경험을 밝혔다. 이후 이상문학상이라는 게 알려졌고 최은영·이기호 작가 역시 같은 이유로 우수상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문학사상사 측은 직원 실수로 대상의 계약조건이 우수상에도 포함됐다고 해명했으나 공식 입장 발표는 지연됐다. 1월31일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윤이형 작가가 ‘작가를 그만둔다’고 선언했다.


윤이형 작가에 따르면 그는 1년 전 이상문학상 대상 수락 및 합의서에 서명했다. 내용은 김금희 작가가 밝힌 바와 같다. 발표 당일 작가론과 작품론을 써줄 작가와 평론가를 직접 섭외해 청탁했고 마감 기한은 10일 정도로 급박했다. 작가는 수상소감과 문학 자서전을 쓰고 수상작을 퇴고했으며 그 과정에서 세 차례 문제 제기를 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전통 있는 문학상의 권위를 의심케 하는 증언이 이어졌다. 그는 대상 수상 이전에도 세 차례 우수상을 받았지만 문제가 된 계약서를 받은 적이 없었다. 문학사상사의 전 직원에 따르면 부당하다고 생각한 직원들이 막을 수 있을 때는 막고, 막지 못하면 우수상 작가에게 문제의 계약서가 전달됐다. 저작권을 풀어달라고 하면 풀어주고 아니면 그대로 두었다.

왕성하게 활동 중이던 작가의 절필 선언에 동료 작가들은 충격에 빠졌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김금희 작가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생각을 멈춘 상태’라고 근황을 전했다. “이해가 잘 안 간다. 사과하고 고치겠단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황당한 일이라 바로 문제 제기를 했고 바로 받아들여질 줄 알았다. 윤 작가님이 그런 선택을 한 게 마음이 안 좋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도 약속된 단편소설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왜 작가들이 수치심과 자괴감 느껴야 하나

최은영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예술은 자기 자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직업으로서의 일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소설이 자신의 일부분인데 그걸 잃고 사는 건 너무 큰일이다. 절필의 이유 역시 본인이 아니고 출판사의 부당함 때문이라는 게 화가 난다. 작년에 우수상을 받아 자책했다.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작가의 잘못이 아닌데 절필을 결심하신 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기호 작가도 분노했다. “작가들의 문제 제기 때문에 소중한 작가가 수치심과 자괴감까지 느끼는 상황에 온 게 아닌가 싶어 무기력한 상태다. 왜 애꿎은 작가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각종 문학상 수상 경험이 있는 작가들에게도 이상문학상의 저작권 요구는 낯선 경험이다. 최은영 작가의 경우 현대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의 우수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지난해에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았지만 관련 조항이 있는지 몰랐다. 뒤늦게 발견했다. “있는 줄 알았으면 작년에도 안 받았을 거다. 작년과 달랐던 건 이번엔 구두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설명을 듣고 안 한다고 바로 거절 메일을 보냈다. 작년엔 설명 없이 동의서만 왔다. 읽지 않은 게 잘못일 수 있지만 그런 내용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작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가 확산됐다. 트위터 계정이 없는 작가들도 이번 일로 계정을 만들었다. 황정은 작가는 ‘윤이형 작가님의 피로와 절망에 그리고 절필에 책임을 느낍니다. 고통을 겪고 있을 수상자들에게 연대하고 싶습니다. 문학사상사는 이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더는 작가들에게 떠밀지 마시고 제대로 논의하고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해주십시오’라고 썼다. 조해진 권여선 최은미 김이설 장류진 박상영 오은 천희란 작가 등도 동참했다. 구병모 작가는 SNS를 통해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 당시 약정서든 계약서든 받은 적이 없고 3년 양도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을 랜덤으로 해온’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갓 등단한 작가들도 힘을 보탰고 독자들은 불매운동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2월4일 문학사상사는 입장문을 냈다. 사과와 함께 시정 의지를 밝혔다. 대상 수상작의 ‘저작권 3년 양도’에 관한 사항을 ‘출판권 1년 설정’으로 정정하고 표제작 규제 역시 수상 1년 뒤부터는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소한의, 문학상 운영을 감안한 부득이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뒤늦게 우수상 수상작은 제한이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저작권과 관련해선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문학상을 운영했다’며 인식 부족을 통감한다고 전했다. 경영 악화로 직원들이 대거 퇴직해 수습이 원활하지 못했다고도 해명했다.

작가 당사자들은 다시 한번 실망감을 드러냈다. 최은영 소설가는 트위터를 통해 ‘편집부 직원들이 대거 퇴사하여 진행 과정에 대한 파악이 늦어졌다는 말은, 결국 진행 과정에 대한 책임이 직원들에게 있었다는 식의 책임 회피’라고 지적하고 ‘저작권 인식 부족이 아니라 저작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갈취하려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김금희 작가는 이상문학상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길 바라지만 앞으로 수상자, 수상 후보, 심사 대상 어디에도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문학사상사가 이상문학상과 관련해 저작권으로 문제를 빚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9년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는 문학사상사가 이상문학상 수상자들에게 상금만 지급했을 뿐 출판권 설정 계약 등을 체결하지 않은 채 작품집을 출간하고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냈다. 당시 문학사상사는 출간 3년 이후의 저작권료를 배상했다. 대상 작가로는 김승옥, 이청준, 조세희 등을 비롯해 수상 당시 ‘한가닥 빛’으로 기쁨을 말하던 박완서 소설가도 있었다. 임홍빈 문학사상사 회장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 제도는 문학의 위상을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언급했다. 저작권에 대해 예민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저작권뿐만 아니라 문학계 전반의 부당한 관행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박서련 작가는 등단 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을 필사할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언젠가 받고 싶은 상이었고 독자로서도 충격이 크다. 윤이형 작가가 등단 당시 심사위원이었고 단행본의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박 작가에게 이번 일은 자음과모음 신인상을 둘러싼 논란과도 무관하지 않다. 올해 자음과모음은 제10회 중단편 신인문학상의 상금 500만원을 선인세로 지급하기로 했다가 2018년 당선자인 박선우 작가의 문제 제기 후 내용을 정정했다. “신인상의 경우에는 선인세를 상금으로 주는 일이 없는데 미등단 예비 작가로서 더 당황스러울 것 같았다. 저작권 등 관행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느끼던 차에 이번 일이 터졌다.”


박상영 작가도 ‘저작권 편취와 재고 떠안기’를 요구하는 계약서를 종종 받아들었다고 고백했다. 반품된 책을 인세에서 제하거나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은 앤솔로지 단행본을 계약할 때 수년 동안 저작권이 귀속된다는 식의 요구사항이 있었다. 신인으로 지면이 절실해 받아들였다가 뒤늦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되는 경우다. 그는 “신인들 가운데 불공정 계약을 체결하고도 잘 모르고 지나갈 때가 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해선 “나도 작품집을 보며 자란 세대고 수상 작가 중 훌륭한 분들이 많아 상 자체를 비판하는 게 불편하다. 대중들에게 이런 식의 투쟁이 어떻게 비춰질지 고민도 없지 않지만 파행적인 운영을 그냥 두면 앞으로도 작가의 권리를 지키는 게 힘들어질 것 같아 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학계의 불공정한 관행은 계속해서 지적되어왔다. 2017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인권침해소위원회에서 수집한 사례에 따르면 자사에서 출간한 소설을 해외에서 번역 출판하며 저자의 동의를 얻지 않거나, 작가의 의사를 묻지 않고 출판사끼리 저작권 사용료를 주고받기도 했다. 원고료를 묵은 쌀로 지급하거나 문예지 정기구독으로 대체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등단 5년 미만의 작가에게는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청탁서에 명기한 경우도 있었다.


1984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부터 모아온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이번 일을 겪으며 독자의 게으름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젊은 소설가의 움직임이 자극이 되기도 했다. 아동문학계에도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가 저작권 소송으로 분투 중이다. “2020년을 시작하며 이런 문제가 부각되었다는 게 인상적이다. 옛 독자들과 지금의 독자들은 감수성이 다르다. 권리에 예민하고 작가의 권리가 곧 내 권리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나 감수성이 달라지는 지형에 와 있는 것 같다.” 2020년 현재,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한국 문학 작가들이 SNS로 자신의 권리를 말하고 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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