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서의 업적 외에 다카미 준 하면 빠짐없이 거론되는 게 ‘일본근대문학관의 아버지’라는 점이다. 2차대전 패전 후 어수선한 분위기가 진정된 1961년, 다카미는 일제시대와 패전, 전후 복구 와중에 수많은 문학 관련 자료와 유품이 사라지고 잊히는 것을 더이상 방치하지 말자고 각계에 호소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이토 세이(1905~1969)·이노우에 야스시(1907~1991) 등 유명 문인과 출판사·신문사들이 호응하고 나섰다. 모금 운동이 벌어졌고, 전국에서 자료 기증이 줄을 이었다. 1963년 순수 민간단체 ‘재단법인 일본근대문학관’이 출범해 다카미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1965년 8월 16일, 도쿄 고마바 공원 부지에서 문학관 건물 기공식이 열렸다. 말기 식도암과 싸우던 다카미는 “허풍만 떨고 일을 다 마치지 못해 죄송하다”는 병상 메시지를 보내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그는 기공식 다음날 숨졌다. 2년 뒤인 67년 4월 건물이 완공돼 개관식과 함께 다카미 동상 제막식이 거행됐다.
요즘 전국이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열기에 휩싸여 있다. 국립문학관은 8월 시행될 문학진흥법에 따라 국비 450억원을 들여 2020년 개관한다. 16개 광역시·도의 지자체 24곳이 서로 자기 지역에 짓겠다고 신청서를 냈다. 경쟁률 24대 1이다. 단체장과 의회, 문인들이 다투어 유치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시민 상대 서명운동이 활발하다. 덕분에 일반인도 대한민국의 문인·문학 관련 지식이 갑자기 풍부해졌다. 김동리·박목월의 고향이 경주시라는 것, 고려·조선에 걸쳐 제주도에 유배 간 문인이 266명이나 된다는 것, 천상병·이원수는 창원시에서 자랐고 통영시는 유치환·김춘수·박경리를 낳았다는 것, 장흥군은 이청준·송기숙·한승원의 고향인 데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국제상을 받은 한강(한승원의 딸)의 ‘문학적 DNA’까지 품고 있다는 것 등등. ‘향수’의 정지용 시인이 충북 옥천군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 전 서울 은평구에서 살았다는 깨알지식까지 덤으로 얻어들었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문학진흥법의 일등공신은 시인이기도 한 도종환 의원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몇가지 쟁점이 불거졌다. 국립문학관의 성격과 향후 문학정책에 큰 영향을 끼칠 ‘문학진흥정책위원회’의 법적 지위 문제도 그에 포함된다. 국회 상임위(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국립문학관을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문체부 산하 정부기관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문학진흥정책위에 대해서도 집행 기능을 가진 상설기관으로 하자는 의견이 강했다. 문체부는 정부기구 증설과 예산 부담에 대한 행자부·기재부의 반대와 정부의 위원회 축소 원칙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작년 11월 26일 교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당시 이종훈 의원이 한 말이다. “제가 만약에 도(종환) 의원님이라면 저는 이것을 국가 소속기관으로 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도리어 문체부가 국가 소속기관으로 하자고 주장할 것 같아서 되게 혼돈스러웠어요. (중략) 저는 이 국립문학관이 관료화되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의미일까. 경제학자인 이종훈 의원 입장에서는 문학을 잘 아는 이들이 국립문학관을 장관 휘하 ‘국가기관’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게 의아했던 것이다. 문학, 나아가 문화예술의 본령인 창의성·자율성·독립성에 지목한 그의 발언이야말로 죽비처럼 정곡을 찔렀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의원들의 ‘현실론’에도 당연히 근거가 있지만, 이종훈 전 의원의 원칙론은 앞으로 문학계가 두고두고 되씹어볼 가치가 있다.
국립문학관의 바람직한 모습에는 무심하면서 어느 지자체가 450억원을 따먹느냐에 온통 매몰된 지금 풍경은 분명 비정상이다. 우리 국립문학관의 탄생 과정은 전형적인 관(官)주도, 하향식, 하드웨어 위주였기에 민(民) 주도, 상향식, 소프트웨어로 시작한 일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금도 일본근대문학관이 관에서 받는 것은 공익재단법인으로 인정(2011년)된 데 따른 법인세 감면 혜택 뿐이다. 이사·평의원(評議員)은 전원 무보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관청과 세금에 의지하면 반드시 반대급부를 떠안게 마련이다. 국립문학관의 역사적 탄생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운 이유다. 지금부터라도 문학계가 잘해야 한다.
노재현
중앙일보플러스 단행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