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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이름을 가진 詩人 "난 운동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0. 5. 21:03

3개의 이름을 가진 詩人 "난 운동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입력 : 2015.10.05 03:00 | 수정 : 2015.10.05 07:35

[자전 소설 '양철북' 낸 이산하]
고교시절 전국 백일장 휩쓸어…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되기도

성장 소설 ‘양철북’을 낸 이산하 시인 사진
성장 소설 ‘양철북’을 낸 이산하 시인. /이명원 기자
시인 이산하(55)는 지금껏 세 이름으로 살아왔다. 본명은 이상백이고, 필명이 이륭과 이산하, 둘이었다.

이상백은 부산 혜광고 재학 중 '학원' 문학상을 비롯해 고교생 공모전에서 잇달아 수상했다. 당시 그의 라이벌이었던 대구 대건고 재학생이 오늘날 안도현 시인이다. 이상백은 경희대에 문예 장학생으로 입학한 뒤 일간지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늘 아깝게 탈락했다. 그는 80년대 초 젊은 시인들이 만든 '시운동' 동인지를 통해 시인 '이륭'으로 등단했다. 신비주의 소설가 박상륭을 흠모해서 정한 필명이었다. '시운동'은 오늘날 명상가로 이름이 높은 류시화를 중심으로 몽상의 시학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륭은 1987년 필명 '이산하'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제주 4·3 사건을 좌파의 시선으로 폭로한 장시 '한라산'을 발표해 1년 가까이 도피 끝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가 이듬해 석방됐다.

이산하가 성장소설 '양철북'을 양철북 출판사에서 냈다. 고교생 글쟁이로 필명을 떨치던 시절을 회상한 자전소설이다. 주인공 '철북이'가 시인의 분신이다. '철북이'가 실존 인물인 스님을 만나 유랑하면서 삶과 세상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소설의 80%는 체험이고, 나머지는 소설적 구성을 위한 허구"라고 했다.

이 성장소설에서 주인공 소년은 조숙한 책읽기에 탐닉한다. 최인훈의 '광장'을 비롯한 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도서들도 독파한다.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을 읽곤 "김지하 같은 시인이 되겠다"는 꿈도 키운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처럼 소시민 의식을 타파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산하는 성장소설 뒷부분에 '한라산' 필화 사건 때의 고초를 요약했다. 그는 조총련의 고위 간부가 낸 '제주도 피의 역사' 번역본을 읽고선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처음 깨달은 뒤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장시(長詩) '한라산'을 잡지 '녹두서평'에 발표했다. 공안 당국과 문단이 모두 벌컥 뒤집혔다. 이산하는 지명수배됐고, 문단에선 "이산하가 도대체 누구야? 고정간첩 아니야?" 하며 두려워했다.

이산하는 "내가 체포된 뒤 민주화 인사를 돕던 변호사나 문인 중에서 아무도 나를 위해 참고인 진술을 하려는 이가 없었다"며 "나는 운동권의 '뜨거운 감자'였다"며 웃었다. 당시 그를 취조한 검사는 황교안 국무총리라고 한다. 이산하는 출옥 이후 제주 4·3 관련 운동에는 일절 간여치 않았다. "제주 4·3 단체에서 몇 번 초청했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앞으로 제주도 사람들이 할 일"이라는 것. 이산하는 '한라산'에 대해 "다급해서 표현이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잘 썼다"며 웃은 뒤 "그걸 감히 무슨 마음으로 썼는지"라며 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