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여행·독서… 소설가의 삶을 말하다
입력 : 2015.10.05 03:00 | 수정 : 2015.10.05 07:36
[김훈·배수아·김탁환 산문집]
'라면…' 음식 통한 정서적 교감
'처음…' 세 차례의 몽골 여행기
'아비…' 책 핵심 담은 독서일기
김훈의 산문집은 200자 원고지 400장 분량의 신작 산문을 비롯해 절판된 기존 산문집에서 고른 에세이들로 구성됐다. 이 책의 백미(白眉)는 '밥'을 주제로 한 제1부에 있다. 책 제목이 된 '라면을 끓이며'는 라면, 짬뽕, 짜장면, 김밥처럼 허름한 식당에서 먹는 음식을 다룬다.

김훈은 한국인의 라면 사랑을 관찰하며 '라면에 인이 박인 생존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낀다. 1963년 처음 라면이 등장하자 배고픈 한국인은 라면을 '공손하게' 먹었다. 살림살이가 나아져도 라면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김훈은 '라면은 한국인의 정서적 토양의 기층에 착근되었다'고 했다. 그는 라면 시장의 팽창 배후엔 '빈부 양극화와 인간 소외'가 있다고 했다.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라면은 어느덧 서민의 일용 양식이 된 것. 김훈은 라면의 허위도 간파한다. 라면은 인공 상품인데, 라면 광고는 천연의 맛을 강조해 소비자를 유혹한다. 그러나 김훈은 라면을 끊지 못한다. 그는 나름대로 라면 끓이는 비법을 깨쳤다고 한다. 라면의 인공성을 줄이고 끓이는 사람의 개별성으로 천연의 맛을 꾸며낸다는 것. 그러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눈을 팔다가 라면이 끓어 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고 탄식했다.
배수아의 산문집은 세 차례에 걸친 몽골 여행을 담고 있다. 배수아는 도저히 저항하지 못할 운명의 힘에 이끌려 몽골로 떠났다고 했다. 그러나 배수아는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고 했다. '여행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도피'였고, 특별히 흥미로운 사건도 없었다는 것. 그러나 이 책을 펼치면 몽골 곳곳의 풍경 사진과 함께 작가가 대자연 속에서 얻은 단상이 쉼 없이 전개된다. 자연 속에서 사물은 사람의 오감을 활짝 열어주고, 전설은 사람의 상상력을 한없이 넓혀준다. 배수아는 스스로를 이 책의 저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얼굴들로 이루어진 나의 또 다른 장소로 향하는 여행이자 동시에 한때 나의 육신을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돌과 쇠를 찾아가는 여행'의 동반자로서 여행을 회상하기 때문이다.
김탁환의 산문집은 독서 일기 모음집이다. 그는 원래 고전문학 연구자였다.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을 다룬 역사 소설도 써왔다. 그의 독서량은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방대하다. 그에게 책 읽기는 곧 생활이다. 그의 독서일기는 책의 핵심을 포착해 얻어낸 생각의 흐름을 간결하게 전개한 글로 꾸며졌다. 이 책 제목은 조선시대 때 어느 선비가 소설을 좋아한 딸이 시집을 가게 되자 '임경업전'을 꼼꼼히 필사해서 전해줬다는 일화에서 따왔다. 그 필사본처럼 진정한 작가의 글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가 돼야 한다. 김탁환은 "그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써내려가면 돼"라고 한 헤밍웨이의 말을 되새기며 늘 설익은 기교에 부끄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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