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는 왜 신경숙을 옹호하는가
경향신문 | 박송이 기자 |
입력 2015.09.05. 15:04
가을호 통해 표절 아님을 시사… 백낙청 편집인도 SNS 통해 옹호성 글
창비 비상임 편집위원이기도 한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15년 전의 일을 뼈아파했다.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정문순 문학평론가는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창비 주간이었던 최 교수는 그때 제대로 비평이 이뤄졌다면 15년 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5년 전에 정문순 평론가의 글이 인터넷에서만 잠깐 논란이 되고 종이매체나 문단 내에서는 봉쇄가 돼 논의가 더 확산되지 않았다. 그때 논의가 제대로 되면서 비평이 제 역할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지연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비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건 자책이다.” 15년 후, 소설가 이응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설>이 <우국>을 표절했다고 다시 한 번 주장한다. 두 번째 문제제기의 파장은 첫 번째와는 달랐다. 표절 논란은 뜨거운 이슈가 됐다.
15년 전 문제제기 때 소홀히 넘겨지난 8월 말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가 출간되면서 작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다시 재점화되고 있다. 표절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6월 일부 표절 가능성을 인정했던 창비는 이번 가을호 ‘책머리에’서는 에둘러 표절이 아님을 시사했다. “저희는 그간 내부 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가가 ‘의식적인 도둑질’을 했고 출판사는 돈 때문에 그런 도둑질을 비호한다고 단죄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는 판에서 창비가 어떤 언명을 하든 결국은 한 작가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합류하거나 ‘상업주의로 타락한 문학권력’이라는 비난을 키우는 딜레마를 피할 길이 없었기에 저희는 그동안 묵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백영서 편집주간의 글이 지난 입장발표에서 오히려 후퇴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됐다는 것은 표절을 의미한다. 거기에 작가의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작가 본인만 알 수 있다. 표절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데, (이를 무의식적 차용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창비의 대응은 문학동네의 대응에 비교돼 더 비판받고 있다. 9월 1일 문학동네는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를 통해 독자에게 사과했다. 편집위원인 권희철 문학평론가는 서문에서 “신경숙의 <전설>이 미시마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문제제기는 15년 전에 한 차례 있었다”며 “한 번 제기된 문제를 소홀히 넘긴 것에 대해서 어떤 평론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문학동네는 강태형 대표이사를 포함해 남진우, 류보선, 서영채, 신수정, 이문재, 황종연 등 1세대 편집인들이 10월 주주총회를 통해 물러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문학동네 1세대가 퇴진함으로써 다른 실리를 챙기는 것이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지만, 편집인들을 전원 교체하는 위험을 감수한 것은 그만한 비용을 지불한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문학계 관계자는 “문학동네 1기 사장과 편집인 전원이 사퇴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든 기득권을 내려놓은 것이고 큰 모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조직의 안정성을 담보로 건 것이다. 사회적인 공분을 수용하라고 하니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편집인 전원 사퇴와 대비그러나 창비는 문학동네보다 몸이 무겁다. 문학계 관계자는 “남들이 이만큼 나갈 때 겨우 이만큼 나갈 정도로 창비는 지금 스텝이 꼬여 있다. 문학동네는 사장과 편집위원이 전원 사퇴함으로써 더 이상 논쟁할 게 없어졌다. 창비 안에서 토론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훨씬 늦고 있다”고 말했다. 스텝이 꼬인 것은 첫 대응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출판계에서는 15년 전에는 논란의 불씨가 금방 꺼졌던 것이 이토록 빠르게 널리 파급된 이유를 SNS에서 찾는다. 출판 관계자에 따르면, 창비는 처음 이응준 작가가 언론 인터뷰를 했을 때만 해도 이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이다”라며 신 작가의 표절을 전면부인했던 1차 대응은 이러한 사내 분위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SNS를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지자 창비는 다음날 사과 입장을 발표한다. 내부조율 없이 보도자료를 냈다는 데 대한 사과였다. 첫 번째 대응이 부적절하면서 SNS를 타고 독자들의 분노가 높아졌고, 작가 신경숙을 상습표절 작가로 조롱하는 분위기가 높아졌다. <창작과 비평> 가을호의 책머리에는 표절 논란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작가를 지켜야 한다는 논조가 더 강하게 읽힌다.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출판사 창비가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곧 권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7일에 처음 문제제기가 되고 두 달 반이 지났다. 창비가 계간지에서 충분히 정면으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었을 텐데, 가을호에 보면 실제 내용은 외부 토론회에서 나온 글 세 개를 청탁해 갖다 붙인 정도다”라며 “출판사가 특정 저널을 갖고 있다고 저널이 출판사의 기관지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공기로서의 저널이 특정 출판사에서 나온다면 선전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그 잡지에서 발굴한 작가나 평론가들 사이에서 자체적인 세습과 폐쇄성이 만들어지면서 비평이 봉쇄된다.”
백낙청 창비 편집인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문학권력 논란 사그라들지 않을 듯
표절에서 시작한 창비의 문학권력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창비는 내년에 50주년을 맞는다. 백낙청 <창작과 비평> 편집인은 지난 5월 내년에 50주년을 맞아 편집인을 사퇴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창비에서는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변화의 시도를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만 들려온다. 백낙청 편집인이 물러선다고 해도 예정된 수순이지 표절 건과는 관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최원식 교수는 민주화 이후 창비의 두 가지 위치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저항의 거점이고 또 하나는 책임을 나눠야 할 자리다. 이번에 불거진 표절 논란은 창비가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제대로 서 있는지를 묻고 있다. 백낙청 편집인은 지난 8월 31일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썼다. “표절 소프트웨어도 학술논문이 아닌 문학작품의 경우에는 그대로 믿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말이란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말을 가장 섬세하고 정교하게 구사하는 언어예술인 문학에서는 소프트웨어를 돌려서 나오는 일치율보다 그러한 단어들이 작품 전체의 일부로 어떤 효과를 내고 의미를 구성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백낙청 편집인의 이 같은 글에 대해 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씁쓸하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창비가 그 창비인가, 창비는 여전히 표절이라고도 표절이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고 그저 논란의 중심에 있고 싶어한다. 논란 속에 여전히 큰 출판사로 남기 위해서 말이다. 백낙청 편집인이 문학은 정교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비겁한 말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는 정교한 게 아니라 명료한 문제다.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다, 표절을 했냐 안 했냐인데 이 단순한 문제를 대하는 변명이 길다.”
김영사와 쌤앤파커스 ‘스캔들로 얼룩진 출판계’
한 출판 관계자는 10여년 전쯤 일을 떠올렸다. 새해를 맞아 신년회가 열렸다.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강유 김영사 회장이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의 내용이 이상하게 흘렀다. 내용은 박은주 사장이 그동안 열심히 일만 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모여 있던 직원들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박은주 사장의 표정은 사색이 됐다. 한 출판 관계자는 이미 그때부터 김강유 회장과 박은주 전 사장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5년 출판사 비채가 처음 차려졌을 때도 비채를 두고 말이 많았다. 비채는 현재 김영사의 임프린트(출판사 내의 독립된 브랜드)지만, 설립 당시에는 독립된 출판사였다. 출판계에서는 비채가 설립됐을 때부터 박 전 사장이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았다. 그만큼 김 회장과 박 전 사장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기간 또한 오래됐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다툼이 경영권 다툼으로 비화돼 드러난 것은 10년이 지난 2015년 7월이었다. 그간 김 회장과 박 전 사장의 관계는 일시적으로 봉합되기도 했지만 일시적이었을 뿐 언제든 서로가 등을 돌릴 수 있는 상태였다. 한 출판 관계자는 “책은 다른 제품들과 달리,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오랜 세월 경영권 다툼과 돈 문제로 얼룩진 김영사에서 나온 책들이 과연 어떤 정신으로 만들어졌을지를 생각하면 씁쓸하고 아쉽다”고 말했다. <안철수의 생각> <정의란 무엇인가> <먼 나라 이웃나라>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등 각종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며 모범적으로 성장을 해왔다고 평가받아온 출판사의 경영권 다툼을 보는 출판계의 한숨은 깊다. 박 전 사장은 김영사에 재직한 1984년부터 2003년까지 20년간 김 회장이 주도한 법당에서 숙식을 하며 월급, 보너스, 주식 배당금 등 28억원을 바쳤다고 폭로하며 김 회장을 350억원 규모의 배임과 횡령,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출판 관계자들은 김영사 파문은 출판계의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판계에서 8년을 일한 30대 출판인은 출판업계가 다른 문화산업보다 전근대적인 구습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출판은 영화 등 다른 문화산업에 비해 자리잡은 시기가 늦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공개적인 운영이 덜 되다 보니 소규모 전통이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오너의 영향력이 막강하며 개방적이고 투명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노조가 있는 출판사 또한 흔치 않다. “노조는 경영자의 마인드가 노조 친화적이 아닌 이상 싸워서 만들기는 힘들다. 이직률이 높아서 조직화가 어렵고 만들려다가 금방 없어지기도 한다.”
구조가 바뀌지 않고 오래된 관습이 계속되다 보니 사건이 한 번씩 불거질 때만 문제가 제기될 뿐 이후에 개선되는 것은 없다. 지난해 9월 쌤앤파커스는 상무가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SNS를 통해 폭로돼 논란이 됐다. SNS에서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사장과 상무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회사가 매각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쌤앤파커스는 이후 폐쇄적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 관계자는 “거기는 지금 사장이 누군지 업계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로 폐쇄적 경영이 강화됐고, 외부와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현재 출판사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변화의 계기보다는 위기의 심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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