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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노래방이에요…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니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9. 11. 22:34

"詩는 노래방이에요…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니까"

입력 : 2015.09.10 03:00

'비유의 달인' 이성복 시인, 詩論集 3권 한꺼번에 출간
"내가 잘나서 시 쓰는 것 아냐… 시가 흘러나오는 水路일 뿐"

“독자들이 껌 씹듯이 시를 음미하기 위해 휴대하기 좋은 판형으로 만들었다”며 시론집 세 권을 낸 이성복 시인.
“독자들이 껌 씹듯이 시를 음미하기 위해 휴대하기 좋은 판형으로 만들었다”며 시론집 세 권을 낸 이성복 시인. /박해현 기자
"시는 도서관이 아니고 노래방이에요.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하세요. 시는 질문하는 것이고, 중심을 돌아보는 것이고, 자기를 괴롭히는 거예요."

1980년대 이후 한국시를 대표해 온 이성복 시인(63)이 시론집(詩論集) 세 권을 한꺼번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냈다. 시인이 30년간 대구 계명대 문예창작과에서 한 시창작 강의록을 모았다. 그는 "내가 뭐 잘나서 한 수 가르친 게 아니라 제자들과 대화한 내용"이라며 "원래 쓰레기통에 갈 것들이었지만, 어찌하다가 가을 이삭 줍기 하듯이 모았다"고 밝혔다. 시인의 강의 내용을 제자들이 묻지도 않은 채 2000년대 초부터 인터넷에 하나둘씩 올린 것을 3년 전 명예퇴직한 시인이 뒤늦게 알곤 다시 모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강의록을 '시인, 독자, 언어, 대상'이란 큰 주제 아래 정리해 세 권으로 나누면서 각 권 형식도 달리했다. 첫 권 '극지(極地)의 시'는 산문집이지만, 뒤를 잇는 '불화(不和)하는 말'은 이야기 시(詩) 형식이고, 마지막 '무한화서(無限花序)'는 아포리즘 471개로 꾸며졌다.

이성복 시인은 비유의 달인으로 이름이 높다. '시가 아닌 것으로 시를 논하고, 시로 시가 아닌 것을 논한다'며 시와 삶으로 하여금 비유의 통로를 오가게 한다. 가령 그는 시를 '아픈 새끼발가락'에 비유한다. "우리 몸의 작은 말단이지만 그게 고장이 나면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축구와 순교(殉敎)에 빗댄다. "축구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할 때 동료가 공을 차고 나머지 선수들이 스크럼을 짠다. 옛날 로마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원형경기장에서 순교할 때 동료 교인들이 격려의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시를 쓰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사 앞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해 스크럼을 짜는 게 아닐까." 그의 비유는 끝이 없다. "골프에서 백스윙할 때 한쪽 팔을 팽팽하게 펴고 손가락에 힘을 빼고 다리를 이용해 몸을 움직이고 채를 던지는 것처럼 시인은 시의 대상을 꽉 붙잡지 않은 채 기승전결(起承轉結)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 그는 필드엔 1년에 어쩌다 한 번 나갈 처지이기 때문에 연습장에서만 10번 채로 스윙을 하며 시학(詩學)을 다듬었다고 한다.

이성복 시인은 "시인이 잘나서 시를 쓰는 게 아니다"며 "샘물 입구에서 물이 흘러나오듯이, 시인은 시의 수로(水路)일 뿐"이라고 한다. 그는 "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라고 단언한다. 시는 '수레 앞에 맞선 사마귀'와 같다는 얘기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인'하는 것. 그거라도 안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그렇게 실패한 시를 왜 독자가 읽어야 하느냐고 묻자 "시는 편하게 살려는 사람에게 실패를 가르쳐주면서 불쌍하게 만들고 잠 못 들게 하는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