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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슬픔 2008

너에게 묻는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4. 11. 23:42

너에게 묻는다  

 

유목의 하늘에 양 떼를 풀어놓았다

그리움을 갖기 전의 일이다

낮게 깔려 있는 하늘은 늘 푸르렀고

상형문자의 구름은 천천히 자막으로 흘러갔던 것인데

하늘이 펄럭일 때마다

먼 곳에서 들리는 양떼 울음을 들었던 것이다

목동이었던 내가 먼저 집을 잃었던 모양이다

잃었거나 잊었거나 아니면 스스로 도망쳤던 그 집

아마도 그 집은 소금이 가득했던 창고

아버지는 비와 눈을 가두어 놓고 바다를 꿈꾸었던 것인지

밤새 매질하는 소리 들리고

눈과 귀 그리고 입을 봉한 소금처럼 우리는 태어났던 것

유목을 배우고 구름의 상형문자를 배웠으니

하늘이 바다이고 바다가 하늘인 것 또한 알 수 없는 일

내가 잠깐 이 생의 언덕 위에 올라 발 밑을 내려다 볼 때

울컥 목젖이 떨리면서

깊게 소금에 절여 있던 낱말을 뱉어낼 수 있었던 것

여기에 없는,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았으나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고 믿어버린 약속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강열한 햇볕 속에 태어나 그 햇볕으로 사라져가는

소금 등짐을 지고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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