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185

[621] 마이동풍 (馬耳東風)

[정민의 世說新語] [621] 마이동풍 (馬耳東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5.06 03:00 | 수정 2021.05.06 03:00 마이동풍(馬耳東風)은 봄바람이 말의 귀를 스쳐도 반응이 없다는 뜻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 하늘이 높아지면 말이 살찐다고 한 걸 보면, 말은 아무래도 봄보다는 가을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Oh!컷] 제주도 서귀포시 가시리 풍력발전소 인근에서 마스크를 쓰고 조랑말을 탄 사람들이 노란 유채꽃밭에서 봄을 만끽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이백(李白)은 ‘답왕십이(答王十二)’에서 “북창에서 시를 읊고 부(賦)를 지어도, 만 마디 말 물 한 잔의 값도 쳐 주질 않네. 세상 사람 이 말 듣곤 모두 고갤 저으리니, 봄바람이 말의 귀에 부는 것과 같구나(吟詩作賦北窗裏..

[620] 미음완보 (微吟緩步)

[정민의 世說新語] [620] 미음완보 (微吟緩步)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4.29 03:00 | 수정 2021.04.29 03:00 김나영 시인의 새 시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를 읽다가 시 ‘로마로 가는 길'에 눈이 멎는다. “천천히 제발 좀 처언처어어니 가자고 이 청맹과니야. 너는 속도의 한 가지 사용법밖에는 배우질 못했구나. 여태 속도에 다쳐 봤으면서 속도에 미쳐 봤으면서, 일찍 도착하면 일찍 실망할 뿐….” 정미조씨의 신곡 ‘시시한 이야기'를 다시 포개 읽는다. “앞서 가는 사람들 여러분, 뒤에 오는 사람들 여러분. 어딜 그리 바삐들 가시나요. 이길 끝엔 아무것 없어요, 앞서 가도 별 볼 일 없어요, 뒤에 가도 아무 일 없는 걸요. (중략) 가다 보면 결국은 알게 되지. 아..

순사고언 (詢事考言)

[정민의 世說新語] [619] 순사고언 (詢事考言)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4.22 03:00 | 수정 2021.04.22 03:00 1728년 12월 7일, 숭문당(崇文堂)에서 영의정 이광좌(李光佐) 등이 영조를 모시고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진강(進講)했다. 이날의 주제는 ‘변인재(辨人才)’ 즉 ‘성현이 인재를 살피는 방법(聖賢觀人之法)’에 관한 내용이었다. 본문을 읽은 뒤 시독관(侍讀官) 김상성(金尙星)이 말했다. “요순 시절에는 네, 아니오의 사이에도 절로 옳고 그름의 뜻이 있었습니다. 아랫사람의 말이라도 옳으면 네라고 했고, 윗사람의 말이라도 그르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옳으면 네라 하고 그르면 아니라 하여, 아첨하여 빌붙어 따르는 뜻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임금이 유념하겠다..

[618] 신진대사(新陳代謝)

[정민의 世說新語] [618] 신진대사(新陳代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4.15 03:00 | 수정 2021.04.15 03:00 신진대사(新陳代謝)의 ‘진(陳)’은 해묵어 진부(陳腐)하다는 뜻이다. 신(新)은 ‘renewal’로, 신진은 진부한 묵은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사(謝)는 ‘시들다’ ‘떨어진다’이고, 대(代)는 ‘replace’이니, 대사는 시든 것을 싱싱한 것과 대체한다는 뜻이다. 묵은 것을 새것과 교체하고, 시든 것을 신선한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신진대사다. 신체는 신진대사가 원활해야 건강하고, 조직은 신진대사가 순조로워야 잘 돌아간다. 묵은 것이 굳어 피가 도는 길을 막으면 혈전이 된다. 막히다 어느 순간 터지면 큰일 난다. 낡은 사고로 자리만 차지해 호령..

금입옥사 (金入玉謝)

[정민의 世說新語] [617] 금입옥사 (金入玉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4.08 03:00 | 수정 2021.04.08 03:00 출근길에 내부 순환로를 타고 마장 나들목을 내려설 때면 날마다 달라지는 청계천변 화려한 색채의 향연에 눈이 그만 어지럽다. 올봄은 꽃이 순차적으로 피지 않고 폭죽 잔치 하듯 여기저기서 펑펑 터진다. 순서도 계통도 없이 조급하다. 답답하기만 한 세상 표정과는 정반대다. 노산 이은상은 “진달래 피었다는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지 못하고”라고 썼다.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몸을 연 뒤 목련과 철쭉이 뒤를 이어야 할 텐데, 어느새 라일락까지 동시다발로 뛰어들어 세상이 온통 꽃잔치를 열었다. 올봄 꽃은 ..

폐시묵양 (閉視默養)

[정민의 世說新語] [616] 폐시묵양 (閉視默養)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4.01 03:00 | 수정 2021.04.01 03:00 윤증(尹拯·1629~1714)이 제자 이번(李燔·1657~1704)에게 준 편지, ‘여이희경(與李希敬)’이다. “눈병으로 고생하는 것이 비록 상중(喪中)에 으레 있는 증상이나, 마음 써서 조치하지 않을 수가 없네. 눈을 감고 묵묵히 수양하는 것 또한 한 가지 방법일 것일세. 내가 늘 이것으로 일단의 공부로 삼고 싶었지만 능히 하지 못해 괴로우니, 마음을 응축시켜 가라앉히는 공부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네. 매번 부끄럽게 여기다가, 이번에 대략 말해 보는 것일세.” 상주가 우느라 눈이 짓물러 눈병이 생겼다. 요즘이야 눈약 몇 번 넣고 약 먹으면 걱정할 일이 ..

유유문답 (兪兪問答)

[정민의 世說新語] [615] 유유문답 (兪兪問答)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3.25 03:00 | 수정 2021.03.25 03:00 위백규(魏伯珪·1727~1798)의 ‘존재집(存齋集)’에 ‘연어(然語)’란 글이 있다. 매군(梅君), 즉 인격을 부여한 매화와 나눈 가상 대화록이다. 토막의 문답이 길게 이어졌는데, 대화 규칙은 누가 먼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대답은 ‘유(兪)’ 한 글자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兪)는 ‘네’라는 긍정의 대답이다. 말을 꺼낸 사람이 허튼 말을 하면 대화가 끝난다. 위백규가 말한다. “살길이 많은 자는 사는 것이 죽을 맛이다. 군자는 사는 이유가 한 가지일 뿐이어서 사는 것이 즐겁다(生之路多者, 其生也死也. 君子之所以生者一而已, 故其生也樂).” “네.” ..

성경익륜 (誠敬翼輪)

[정민의 世說新語] [614] 성경익륜 (誠敬翼輪)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3.18 03:00 | 수정 2021.03.18 03:00 1748년 7월 14일, 황경원(黃景源)과 임순(任珣), 이의경(李毅敬) 세 신하가 사도세자를 모시고 시강(侍講)을 막 마쳤을 때였다. 세자가 갑자기 물었다. “계방(桂坊)은 집이 어디요?” 이의경이 엎드려 대답했다. “강진(康津)입니다.” 세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글 뜻을 그대가 잘 풀이해 일깨워주니 마음으로 깊이 훌륭하게 여기오. 감사의 표시요.” 한 폭의 종이를 꺼내 내시에게 전달하게 했다. 세자가 친필로 쓴 자신의 시였다. 시의 내용이 이랬다. “가장 즐거운 중에 책 읽기가 즐겁고, 천금이 귀하잖코 덕행이 귀하다네(最樂之中讀書樂..

물가유감 (勿加惟減)

[정민의 世說新語] [613] 물가유감 (勿加惟減)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3.11 03:00 | 수정 2021.03.11 03:00 생각 다산이 상추에 밥을 싸서 먹자, 객이 “싸서 먹는 것과 절여서 먹는 게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하고 물었다. 다산이 대답했다. “이것은 내가 입을 속이는 방법입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어 목숨을 연장합니다. 맛난 등심이나 생선 요리도 입에만 들어가면 바로 더러운 물건이 되고 말지요. 목구멍에서 삼켜 내리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사람들은 더럽다고 침을 뱉습니다. 정력을 다하고 지혜를 모두 쏟아 뒷간을 위해 충성할 필요가 있나요?” 아무리 맛난 음식도 일단 입에 들어가면 더럽고 추한 물건이 된다. 먹다 뱉은 음식을 누가 먹으려 들겠는가? 그러니 맛난 음식..

무용순후 (務用淳厚)

[정민의 世說新語] [612] 무용순후 (務用淳厚)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3.04 03:00 | 수정 2021.03.04 03:00 1575년 9월, 선조가 하교했다. “교격(矯激)한 사람을 쓰지 말고, 순후한 사람을 쓰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勿用矯激者, 務用淳厚之人, 可也).” 교격은 스스로 바르다고 믿어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태도다. 임금은 원리원칙을 따져 좌충우돌하는 과격한 사람 말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사람을 원했다. 김계휘(金繼輝)가 한마디 했다. “순후한 사람을 쓰고 과격한 사람을 배척하려 하는 것이 옳은 말이기는 하다. 다만 임금이 이러한 뜻에 지나치게 주안을 두면, 부드럽게 아첨하는 자가 순후하다는 이름을 얻고, 강직한 사람은 과격하다는 비방을 받게 되니, 그 해..

매인열지 (每人悅之)

[정민의 世說新語] [611] 매인열지 (每人悅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2.25 03:11 | 수정 2021.02.25 03:11 다산의 ‘열수문황(洌水文簧)’에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평소 조정에서 바른말로 남의 미움 산 일을 두고, 다산이 자신에게 빗대 말한 글이 있다. “다만 정직한 도리로 섬기매, 임금 또한 기미에 저촉됨을 근심하셨네. 어찌 모든 사람이 좋아함을 얻으랴만, 내 스스로 삼감에 소홀하였지(惟以直道事也, 上亦憫其觸機. 安得每人悅之? 臣自忽於吹虀).” 자신은 늘 곧은 도리로 임금을 섬겼고, 그 곧음이 자꾸 비방을 부르는 것을 임금 또한 안타까워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기뻐하는 것을 얻을 수야 없겠지만, 자신도 좀 더 조심하고 삼갔어야 했다고 잠깐 숙였다...

부유의상(蜉蝣衣裳)

[정민의 世說新語] [610] 부유의상(蜉蝣衣裳)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2.18 03:51 | 수정 2021.02.18 03: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차운(次韻)’ 4수 중 제3수다. “산에 기댄 낡은 집이 바로 나의 고향인데, 꽃나무로 이웃 삼은 침상이 편안하다. 곤경 처해 형통하니 길 얻었음 알겠고, 삶 기뻐함 미혹 아니니 어긋난 길 부끄럽네. 저물녘 노는 하루살이 의상이 화려하고, 맑은 날에 나는 황새 편 날개가 길구나. 작고 큰 것 살펴보매 성품 각기 정해지니, 몇 사람이나 휘파람 불며 높은 산에 있을는지. (依山廢宅卽吾鄕, 花木爲鄰穩著牀. 處困猶亨知得路, 悅生非惑恥乖方. 蜉蝣晩戲衣裳麗, 鸛鶴晴飛翅翮長. 細大看看各定性, 幾人孤嘯在崇岡.)” 나이가 들어도..

마이불린(磨而不磷)

[정민의 世說新語] [609] 마이불린(磨而不磷)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2.11 03:00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오래된 벼루를 노래한 ‘고연가(古硯歌)’의 한 대목이다. “굳은 재질 천지의 빼어난 기운 다 뽑았고, 속은 비어 만물 변화 모두 받아들인다네. 온전한 덕은 갈고 물들임 시험해볼 수 있고, 고요한 그 모습은 구르고 옮김 아예 없다(剛材儘挺一元秀, 虛中欲涵萬物變. 德全自可試磨涅, 容靜未必從輾轉).” 단단한 벼루 돌에 천지의 빼어난 기운이 단단하게 뭉쳐 있다. 하지만 속이 텅 비었으므로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것이 온전한 덕의 모습이다. 연지(硯池)에 맑은 물을 붓고 먹을 갈면 어느새 진한 먹물로 변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면서도 벼루는 묵직..

백년양조 (百年兩朝)

[정민의 世說新語] [608] 백년양조 (百年兩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2.04 03:00 어무적(魚無迹)이 「신력탄(新曆嘆)」에서 새해의 덕담을 적었다. “내 소원은 3만 하고 6천의 긴 날들이, 인간 세상 두 번의 아침저녁 되었으면. 봄꽃이 한번 피어 천년 동안 붉어 있고, 가을 달 한번 비춰 천년 내내 환했으면. 요순(堯舜)의 얼굴이 지금껏 아직 곱고, 주공(周公) 공자 머리카락 여태까지 검었으면. 아침엔 토계(土階) 위서 군신(君臣) 화합 소리 듣고, 저녁엔 행단(杏壇) 곁의 공부하는 모습 보리. 1년에 황하 물이 두 번쯤 맑아지고, 3년마다 반도(蟠桃) 열매 자주자주 익었으면. 태산을 안주 삼고 구리 기둥 젓가락 삼아, 푸른 바다 술통에다 북두칠성 국자일세. 애오라지 만백..

옥작불휘 (玉爵弗揮)

[정민의 世說新語] [607] 옥작불휘 (玉爵弗揮)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1.28 03:00 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 낙양령으로 있을 때 일이다. 옥 술잔을 꺼내 귀한 손님을 접대했다. 관기(官妓)가 실수로 하나를 깨뜨렸다. 문언박이 화가 나서 죄 주려 하자, 사마광(司馬光)이 붓을 청해 글로 썼다. “옥 술잔을 털지 않음은 옛 기록에서 전례(典禮)를 들었지만,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지니, 과실이 있더라도 이 사람은 용서해줄 만하다(玉爵弗揮, 典禮雖聞於往記. 彩雲易散, 過差可恕於斯人).” 문언박이 껄껄 웃고 풀어주었다. 이 말은 ‘예기'의 ‘곡례(曲禮)’ 상(上)에 “옥 술잔으로 마시는 자는 털지 않는다(飮玉爵者弗揮)”고 한 데서 나왔다. 옥 술잔에 남은 술을 털려다가 자칫 깨뜨리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