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214

[504] 처세십당 (處世十當)

[정민의 世說新語] [504] 처세십당 (處世十當)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1.31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초연거사육법도(超然居士六法圖)’에 ‘처세십당(處世十當)’, 즉 처세에 있어 마땅히 갖춰야 할 열 가지 태도를 제시했다. 첫째는 습기당제(習氣當除)다. 습기는 오래도록 되풀이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젖어든 좋지 않은 버릇이다. 무의식중에 되풀이하는 좋지 않은 버릇은 끊어 제거해야 한다. 둘째는 심행당식(心行當息)이다. 마음과 행실은 차분히 내려놓아야 한다. 바쁘게 열심히 살더라도 가라앉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는 제악당단(諸惡當斷)이다. 나쁜 생각, 악한 행동, 못된 습벽은 단호하게 결단해서 딱 끊어야 한다. 넷째는 중선당행(衆善當行)이다. 좋은..

[503] 약교지도 (約交之道)

[정민의 世說新語] [503] 약교지도 (約交之道)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1.24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유비의 처소에 손님이 왔다. 거침없는 담론이 시원시원해서 유비가 넋을 놓고 들었다. 제갈량이 불쑥 들어서자, 손님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객에 대한 칭찬을 잔뜩 늘어놓았다. 제갈량이 대답했다. “제가 손님을 잠깐 살펴보니, 낯빛이 흔들리고 마음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습니다. 시선을 내리깔고 곁눈질도 자주 하더군요. 삿된 마음을 안으로 감추고는 있지만 간사한 형상이 이미 밖으로 새어 나옵니다. 틀림없이 조조가 보낸 자객일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 유비가 급히 사람을 보내 그를 잡아오게 했다. 그는 벌써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난 뒤였다. ..

[502] 선담후농 (先淡後濃)

[정민의 世說新語] [502] 선담후농 (先淡後濃)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1.17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당지계(唐志契)가 ‘회사미언(繪事微言)’의 ‘적묵(積墨)’ 조에서 먹 쓰는 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화가는 먹물을 포갤 줄 알아야 한다. 먹물을 진하게도 묽게도 쓴다. 어떤 경우는 처음엔 묽게 쓰고 뒤로 가면서 진하게 한다(先淡後濃). 어떤 때는 먼저 진하게 쓰고 나서 나중에 묽게 쓴다. 비단이나 종이 또는 부채에 그림을 그릴 때 먹색은 옅은 것에서 진한 것으로 들어가야 한다[由淺入濃]. 두세 차례 붓을 써서 먹물을 쌓아 나무와 바위를 그려야 좋은 그림이 된다. 단번에 완성한 것은 마르고 팍팍하고 얕고 엷다. 송나라와 원나라 사람의 화법은 모두 먹물을 쌓아서..

[501] 초화계흔 (招禍啓釁)

[정민의 世說新語] [501] 초화계흔 (招禍啓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1.10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기(尹愭·1741~1826)가 자신을 경계하여 쓴 ‘자경(自警)’이다. “아아, 이 내 몸을 묵묵히 돌아보니, 성품 본시 못난 데다 습성마저 게으르다. 속은 텅 비었는데, 어느새 늙었구나(于嗟儂, 默反躬. 性本憃, 習以慵. 中空空, 奄成翁). 입은 아직 뚫려 있고 혀도 따라 움직여서, 아침저녁 밥을 먹고 쉼 없이 말을 한다. 가슴 속을 펴 보여 되는 대로 내뱉는다(口尙通, 舌則從. 飧而饔, 語不窮. 發自胷, 出多衝). 공부를 버려두고 경계하지 않는다면, 나중엔 두려워서 용납될 곳 없으리니, 어이해 틀어막아 그 끝을 잘 마칠까(縱着工, 罔愼戎. 後乃?, 若無容. 曷..

[500] 좌명팔조 (座銘八條)

[정민의 世說新語] [500] 좌명팔조 (座銘八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1.03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새해의 다짐 삼아 송나라 청헌공(淸獻公) 조변(趙抃)의 좌우명 중 8자로 된 8조목을 소개한다. ‘선유문(善誘文)’에 나온다. 첫째는 "일에 무심해야 마음에 일이 없다(無心於事, 無事於心)"이다. 일을 건성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욕심 없이 하라는 말이다. 담담하고 무심하게 일에 임하니 집착이나 번뇌가 사라진다. 둘째는 "여러 가지 나쁜 말을 듣더라도 바람이나 메아리쯤으로 여긴다(聞諸惡言, 如風如響)"이다. 남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칭찬을 들을지 욕을 먹을지보다,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을 앞세우라. 셋째는 "남이 혹 ..

[646·끝] 눈을 감고 보라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의 世說新語] [646·끝] 눈을 감고 보라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10.28 03:00 경주 황룡사 정문의 이름은 우화문(雨花門)이었다. 불에 타 퇴락한 뒤에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공간이다. 최자(崔滋·1188~1260)는 ‘보한집(補閑集)’에서 당시 우화문의 황량한 풍광이 지나던 이들을 모두 애상에 빠뜨렸다고 썼다. 학사 호종단(胡宗旦)이 이곳에 들렀다가 문기둥에 적힌 최홍빈(崔鴻賓)의 시를 보았다. “고목엔 삭풍이 울며 부는데, 잔물결에 석양빛 일렁이누나. 서성이며 예전 일 떠올리다가, 나도 몰래 눈물로 옷깃 적시네(古樹鳴朔吹, 微波漾殘暉. 徘徊想前事, 不覺淚霑衣).” 빈터엔 고목만 서 있고, 그 위로 황량한 삭풍이 울며 지난다. 연못 위를 비추던 석양빛이 잘게 흔들린다..

[645] 뒷간거리의 가무락조개

[정민의 世說新語] [645] 뒷간거리의 가무락조개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10.21 03:00 백석 시 ‘가무락조개’는 모시조개의 다른 이름이다. 시는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로 시작된다. 빚을 못 얻고 되돌아오는 길, 팔리지 않은 채 그대로 놓인 뒷골목 시장의 가무락조개를 보며 시인은 “가무래기도 나도 모두 춥다”고 했다. 그다음 구절이 이상하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여기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그’가 시의 바른 해독을 방해한다. 가무래기 이야기를 하다가 ‘그’를 말했으니, 주어가 그인지 내 마음인지 파악이 어렵다. 가무락조개가 어떻게 걸어가나? 그걸 보고 내가 우쭐댈 수 있나? 찾..

[644] 굳고 곧은 갈매나무

[정민의 世說新語] [644] 굳고 곧은 갈매나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10.14 03:00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백석은 1936년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로 부임했다.(왼쪽) 조선일보에서 발행한 월간지 '여성' 3권3호(1938년3월)에 실렸던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삽화는 당대의 전설적 삽화가·장정가이자 출판미술의 개척자인 정현웅의 그림이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은 쓸쓸한 시다. 남신의주 유동의 박시봉이란 목수 집 문간방에 부쳐지낼 때 썼다. 삿(삿자리)을 깐 추운 방에 틀어박혀 슬픔과 한탄 같은 것들이 모두 앙금이 되어 가라앉을 때쯤 해서 창호문을 치는 싸락눈 소리를 듣다가 그는 이렇게 되뇐다. “나는 이런 저녁에는 ..

[643] 말 주머니를 잘 여미면 허물도 없다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의 世說新語] [643] 말 주머니를 잘 여미면 허물도 없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10.07 03:00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78세 나던 1664년에 주부 권념(權惗)이 편지를 보내 윤선도의 과격한 언행을 심하게 질책했다. 윤선도가 답장했다. “주신 글을 잘 보았소. 비록 일리는 있다 하나 어찌 매번 이처럼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시는가? ‘주역’에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이 없다(括囊無咎)’고 했고, 전(傳)에는 ‘행실은 바르게 하고 말은 겸손하게 한다(危行言遜)’고 했소. 자기에게 잘못이 없어야 남을 비난한다는 것이 지극한 가르침이긴 하오. 하지만 내가 이를 했던 것은 선왕의 남다른 예우를 추념하여 지금의 전하께 보답하고자 해서,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지..

[642] 무성요예(無聲要譽)

[정민의 世說新語] [642] 무성요예(無聲要譽)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9.30 03:00 이상황(李相璜·1763~1841)이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갔다. 어둑한 새벽 괴산군에 닿을 무렵, 웬 백성이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혀 꽂고 있었다. 수십 보를 더 걸어가 새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히더니 다시 이를 세웠다. 이렇게 다섯 개를 세웠다. 어사가 목비(木碑)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무언가?” “선정비(善政碑)올시다. 나그네는 저게 선정비인 줄도 모르신단 말씀이오?” “진흙칠은 어째서?” 그가 대답했다. “암행어사가 떴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방이 저를 불러 이 선정비 열 개를 주더니, 동쪽 길에 다섯 개, 서쪽 길에 다섯 개를 세우랍디다. 눈먼 어사가 이걸 진짜 선정비로 여..

[641] 만리비추 (萬里悲秋)

[정민의 世說新語] [641] 만리비추 (萬里悲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9.23 03:00 민둥산억새축제. 산의 이름처럼 정상에는 나무가 없고, 드넓은 주능선 일대는 참억새밭이다. “바람 급해 하늘 높고 잔나비 파람 슬픈데, 물가 맑아 모래 흰 곳 새들 날아 돌아오네. 가없이 지는 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다함 없는 장강은 넘실넘실 흘러온다. 만리에 가을 슬퍼 늘 나그네 되었으니, 백년 인생 병 많은데 홀로 대에 오르누나. 고생으로 터럭 셈을 괴롭게 한하노니, 쇠한 몸 탁주 술잔 새롭게 멈춘다네(風急天高猿嘯哀, 渚清沙白鳥飛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두보의 절창 ‘등고(登高)’ 전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바..

[640] 우두마면 (牛頭馬面)

[정민의 世說新語] [640] 우두마면 (牛頭馬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9.16 03:00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능엄경(楞嚴經)’을 본떠 의림도인(義林道人)에게 불교의 폐해를 말한 글이 있다. ‘증의림도인효능엄경(贈義林道人效楞嚴經)’이 그것이다. 그중의 한 단락. “의림이여! 이제 세간을 살펴보면 선악에 대한 보답이 일정치가 않아 끝내 허망한 데로 돌아가고 말았다네. 부처가 열반에 든 뒤 오랜 세월이 쌓인지라 정신이 신령치 않아, 들어도 알지를 못하기 때문일세. 천당에 줄지어 선 염라의 여러 관원들은 사적인 청탁을 들어주며 몰래 뇌물을 받고, 소 대가리같이 생긴 나찰(羅刹)과 말의 낯짝을 한 나졸들은 조종하고 기만함이 오로지 뇌물의 많고 적음만을 따른다네. 저승의 ..

선모신파(鮮侔晨葩)

[정민의 世說新語] [639] 선모신파(鮮侔晨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9.09 03:00 추사 김정희의 현판 글씨 '선모신파(鮮侔晨葩)'. 20009년 당시 서울 관훈동 우림화랑이 근대 고서화 작품 140점(글씨 55점, 그림 75점)으로 '묵향천고(墨香千古)-신록의 향연' 전을 열 때 공개된 사진. /우림화랑 글씨도 글씨지만 적힌 내용에서 쓴 사람의 학문과 품격을 만날 때 더 반갑다. 어떤 작품은 필획에 앞서 글귀로 먼저 진안(眞贋)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추사의 ‘선모신파(鮮侔晨葩)’ 현판을 보았을 때 그랬다. 찾아보니 이 구절은 진(晉)나라 속석(束皙)의 ‘보망시(補亡詩)’ 연작 중 ‘백화(白華)’ 시의 제3연에 들어있다. “백화의 검은 뿌리, 언덕 굽이 곁에 있네. 당당한 ..

[638] 이장선위 (易長先萎)

[정민의 世說新語] [638] 이장선위 (易長先萎)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9.02 03:00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중 ‘춘명일사(春明逸史)’를 읽다가 ‘화훼물리(花卉物理)’란 글에서 마음이 환해졌다. 그 내용은 이렇다. “봄꽃은 꽃잎으로 지고, 가을꽃은 떨기로 진다. 꽃잎으로 지는 것은 열매가 달리고, 떨기로 지는 것은 열매가 없다. 열매가 있는 것은 씨로 싹이 트고, 열매가 없는 것은 뿌리에서 나온다. 잎이 두꺼운 것은 겨울에 푸르니 동백의 종류이고, 잎이 큰 것은 일찍 시드니 오동의 종류이다. 나무가 큰 것은 잎이 작으니 홰나무의 종류이고, 넝쿨로 나는 것은 열매가 크니 박과 외의 종류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열매가 없으니 모란의 종류이고,..

[637] 해상조로(薤上朝露)

[정민의 世說新語] [637] 해상조로(薤上朝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8.26 03:00 ‘해로(薤露)’는 한위(漢魏) 시기의 만가(挽歌)다. 상여가 나갈 때 영구를 끌면서 사람들이 함께 부르던 노래다. 초한(楚漢)의 쟁패 중에 제나라 대부 전횡(田橫)은 따르는 무리 5백인과 함께 바다 섬으로 들어갔다. 한고조 유방이 그를 부르자 어쩔 수 없이 낙양으로 나오다가 30리를 앞에 두고 굴욕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섬에서 그를 기다리던 무리 5백인이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모두 따라서 죽었다. 사람들이 이들의 넋을 달래려고 부른 노래가 바로 ‘해로’다. 해(薤)는 백합과의 다년생 초본인 염교를 말한다. 노래는 이렇다. “염교 잎 위 아침 이슬, 어이 쉬 마르는가? 이슬이야 마른대도 내일..